그 곳 사람들은 우리의 즉흥 이디엄이 자신들의 것과 판이한 데 많이 놀라는 듯 했다. 바로 '배틀'이 아니라 '배려'를 중심 가치에 놓는 즉흥 어법 때문이다. 여기서 배려란 상대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소리도 내는 연주 자세를 뜻한다. 당시 우리가 현지 언론으로부터 받은 평에서 "인간적 친밀함", "음악적 예의", "태도(attitude)가 좋은 트리오"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그들은 뭔가 다른 걸 보았던 모양이다. 외국 무대의 경험이 축적돼 가면서 나는 그들이 즉흥이라고 할 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치열하고도 빠른 인터플레이, 흥미 같은 것을 그들은 즉흥 무대의 가치로 두는 것이다.

우리는 뚜렷한 리더 없이 돌아가며 테마를 제시한다. 주제가 좋으면 '이야기'는 당연히 길어진다. 순간의 느낌으로 우리는 파악한다. 그 대화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도 물론 있다.

년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런던 재즈 페스티벌 포르투갈의 베이스 주자 카를로스 비카와의 악연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와의 즉흥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는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다 끝나고 무대에서 나와도 혼자 남아 계속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분풀이라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러더니 호텔서 마주쳐도 아는 체도 안 하는 것이었다. 즉흥 무대를 함께 해 보면 연주자 개개인의 인간성을 훤히 알게 된다.

사토 마사히코는 특이한 케이스다. 대가답게, 그는 다 받아준다. 상대 뮤지션을 위해, 그가 그만둬야 할 지점을 만들어가면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쪽의 임프로바이저들은 양보하는 법이 없다. 그들과의 즉흥은 100% 실패다. 그 사람들은 즉흥을 싸움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즉흥은 어떨까? 최선배(트럼펫), 강은일(해금), 박창수(피아노) 같은 사람들과의 즉흥 연주는 사실 한 곡을 넘기기 힘들다. 그들과의 연주는 솔직히, 상당히 두렵다. 이 문제에 대해 사토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먼저 대화의 대전제로 응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 다음 단계가 동조다. 즉 당신의 음악을 이해한다는 신호다.

반격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에도 나름의 경험 법칙에 거의 본능적으로 따른다. 바로 배려다. 다시 말해 우회적으로 인정해 주면서 언쟁과 갈등을 유도한다. 우리는 평상시의 항심(恒心)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주종 관계(응답)도, 친구 사이(동조)도, 독립의 천명(반격)도 아닌 것이다.

단 나는 반격을 승부욕의 산물로 보는 사토와는 달리, 반격에도 배려가 개입될 수 있다고 본다. 즉흥의 핵심적 개념인'배려'란 무수히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그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 없다면 '반주'의 차원을 넘어설 수 없다.

2006년 헤이리에서 주말마다 무대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 곳의 조촐한 무대를 선생은 매우 반겼다. "무척 행복하다", "오늘 우리 트리오 사운드에 하늘로 가는 천국문이 열리는 것 같어." 그 곳 공연 뒤, 늘상 선생을 집 앞까지 모셔 드리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며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음악은 솔로로 듣는 게 가장 정확한 이해의 길이다. 비록 세계적 뮤지션들과의 협연 덕에 선생의 이름을 높이긴 하지만, 그게 독자적이고 완벽한 그의 음악 세계로 가장 확실히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거기에 미연과 나는 들러붙기도, 빠지기도 하는 셈이랄까. 우리는 진득하게, 상대에 대해 베푼다. 그 같은 배려 없이는 안 된다.

일본에 우메즈 가즈도키라는 프리 재즈 색소폰 주자가 있는데,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선풍적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다. 팝적인 테마, 빠른 전환 같은 재주가 대단하다. 재치 있게 속도감을 내며 뽐내듯 하는 프리 재즈는 단박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영혼의 구원을 지향하는 선생의 프리 뮤직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는 사람일 것이다.

그 같은 괴리의 구도에서 나는 선생과 객석의 중재자 노릇을 한다. 양측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싶으면 새로운 리듬을 제시해 패턴 반전을 가져오는 식이다. 귀에 얼른 들어오는 굿거리 장단 같은 것도 그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음악적 궁극과도 연관 있다.

선생이 즉흥의 정수를 향해 길을 걸어왔다면 나는 즉흥의 확장에 궁극의 목표가 있다. 2011년 2월부터 짝수 달 마지막 월요일마다 창무포스트극장에서 펼쳐 오고 있는 '고수 푸리(Gosu Free)'는 현재 나의 도달점이다. 선생은 물론 시인, 화가 등 전방위적 예술가 20여명이 펼치는 즉흥 무대다. 나는 기본 테마를 짓고 지휘를 맡는다. 지휘란 게 별건 어니고, 현장에서 연주 신호를 주는 정도다.

정정배, 손성제, 임달균, 이도현, 오중배 같은 악기 연주자들과 연극 배우 김현아, 가수 말로 등등이 참여하는 그 자리는 뭐랄까, 프리 뮤직 하는 사람의 책임감 같은 거다. 내가 기획하고 극장을 빌려 해나가도 있는 그 자리를 만드는 데는 회당 대략 300만원이 소요된다.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꾸려오고 있는 자리다.

2010년 쉰 살을 넘기며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나이로 접어들었음을 절감했다. 내 몫을 실현하고 싶다.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주머니를 열라는 말도 있잖은가. 나야, 음악 주머니를 열기로 한 셈이다. 동료, 스승, 후배를 위해 음악의 장을 만들 생각이다. 비록 경조사비는 못 낼 지라도 즉흥의 기회와 경험을 넓혀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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