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는 흔해빠진 것들이 이 섬에는 없다. 농작물 심을 만한 논밭 한 뙈기도 없다. 산등성이의 코딱지만한 학교도 문 걸어 잠근 지 이미 오래. 파출소, 우체국 따위의 관공서는 애당초 없었다. 병원이나 보건소는 고사하고 약국도 없어 이따금 행정관청에서 비상 의약품을 날라다준다. 그래도 섬사람들은 질병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산다.

그러나 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이 섬에는 있다. 낮이면 눈이 시릴 만큼 파란 하늘이 내리비치고 밤이면 보석처럼 박힌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해 돋는 동녘 수평선을 마주한 모래밭은 발자국 남기기조차 송구스러울 만큼 곱디곱다. 맑고 푸른 바다에는 온갖 물고기와 해산물이 자라고 수풀 우거진 산 속에는 갖은 약초와 나물이 지천이다. 긴 말 필요 없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다. 마음의 평안을 갈망하는 도시인들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아늑한 안식처다.

이 섬은 다름 아닌 굴업도(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서해 저 멀리 조용히 숨어 지내던 낙도였다. 1991년 전문가 조사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민 수가 가장 적어 반발을 무마하기 쉽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1994년 12월 핵 폐기장으로 선정되면서 비로소 바깥 세상에 얼굴을 내민 섬이다. 그러나 이듬해 활성 단층(지진대)이 발견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핵 폐기장 건설이 백지화되었다. 그 후 국제적인 누드촌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다시금 이목을 끌다가 잠잠해졌다.

굴업도는 그 모든 아픔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듯싶었다. 태고연한 섬의 정취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느 대기업이 골프장과 콘도 등을 비롯한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이미 굴업도의 땅 가운데 98%를 사들였다. 이 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갈 듯 고운 모래

덕적도와 굴업도를 오가는 나래호
배를 두 번 갈아타는 긴 항해 끝에 부두에 내리면 소형 트럭들이 늘어서서 반긴다. 예전에는 경운기였는데 달라진 모습에 다소 당혹스럽다. 짐은 트럭에 싣고 사람은 쉬엄쉬엄 걸어 작은 언덕을 넘으면 산기슭에 오순도순 자리한 마을 정경이 가슴을 평화롭게 감싼다. 한때는 스무 가구 가까이 살았다지만 이제는 네 가구뿐이다.

예전에는 땅콩으로 풍족했던 섬이지만 중국산이 밀려들어오면서 땅콩 농사를 접었다. 1970년대에는 민어 파시가 열릴 정도로 민어가 많이 잡혔으나 그것도 옛말. 그래서 요즘에는 민박 수입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래도 쌀 말고는 섬 안에서 다 자급자족이 되니 먹고 살 걱정은 없다.

마을 남쪽에 굴업(큰말)해수욕장이 있다. 면적 1.71㎢의 작은 섬치고는 엄청난 규모의 모래밭이다. 길이는 400여 미터, 썰물 때 너비는 300여 미터로 웬만한 학교 운동장 10여 개를 합친 넓이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는 살짝 입김만 불어도 휙 날아갈 듯 무척 곱다. 섬의 토질이 세사토(細沙土)이니 만큼 백사장 모래가 고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아늑한 바닷가에 사람은 드문드문. 이만큼 호젓하고 한적한 해변도 드물다.

해변 뒤로는 부드러운 산자락이 둘러쳐 있고 백사장 양끝에는 암벽과 갯바위가 늘어서서 푸근한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목섬이 손에 잡힐 듯하고 저 멀리 수평선 언저리에는 세 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바위섬이 아스라이 떠서 정취를 돋운다. 선단여라는 이 바위섬에는 애틋한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오누이의 애틋한 전설 어린 선단여

옛날 굴업도 남쪽 백아도에 늙은 부부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부모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외딴섬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오빠는 배낚시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름 모를 섬에 흘러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여인은 십여 년 전 헤어졌던 여동생이었다. 이 기구한 운명을 안타깝게 여긴 하늘은 선녀를 내려보내 그간의 사정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들이 헤어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고집을 부리자 노한 하늘은 오빠와 동생, 마귀할멈에게 번개를 내리쳐 목숨을 앗아간다. 그 후 이곳에는 3개의 바위섬이 솟아올랐고, 이를 애통해 하던 선녀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선단(仙丹)여'라는 이름이 붙었다.

굴업도의 동쪽 지역을 목기미 또는 목구미라고 하는데 마을은 오래 전에 텅 비어 빈집만 남았다. 굴업도 본섬과 목기미를 잇는 잘록한 모래톱은 사리의 만조 때 간혹 바닷물에 잠기는데 그때는 목기미가 본섬과 떨어진 또 다른 섬이 된다.

목기미로 건너가는 초입에 작은 모래산이 있다. 가파른 모래 언덕 위로는 울창한 숲이 모자인 양 걸쳐 있고 그 너머 저편은 바위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소중한 모래산이다. 곱디고운 모래임에도 아무리 거센 폭풍이 불어도 허물어지지 않는다니 더욱 신비롭다.

# 찾아가는 길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덕적도로 온 다음, 덕적도 진리항에서 굴업도행 배로 갈아탄다. 굴업도에 먼저 들를 경우에는 50분 남짓, 지도-울도-백아도를 거쳐 빙 돌 때는 2시간 이상 걸린다. 평일에는 하루 1회, 주말에는 하루 2회 운항한다. 운항 시간 문의1577-2891(고려고속훼리).

이제는 네 가구만 남은 굴업도 마을
# 맛있는 집

굴업도산장(032-831-7273)은 매점과 민박, 식당을 갖추고 있다. 시골백반, 토종닭, 염소구이(예약 필수), 골뱅이무침, 감자부침, 부추전 등 다양한 토속 음식을 내고 직접 채취한 자연산 더덕으로 담근 더덕주도 일품이다.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굴업도 특산물을 총동원한 한정식(시골백반 특상)이라는데 값이 좀 비싸서인지 찾는 이는 별로 없다고 한다.


오누이의 애달픈 전설이 어린 선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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