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47개 계열사(7개 상장사)에 매출 29조3,000억원, 영업이익 7,605억원, 재계 서열 13위를 기록한 그룹이 있다. 고(故) 구인회 LG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2003년 독립해 만든 LS다.

신뢰에 기반한 형제경영으로 시작한 LS는 분가 직후부터 사촌경영으로의 변화를 모색해왔다. 세 명예회장은 각자 아들들에게 계열사를 경영토록 했고 지금까지 그 과정은 순조롭게 이뤄져 왔다. 그리고 지난해 말 사촌경영의 틀이 완전히 자리잡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계기는 LS 2세 경영진 중 가장 젊은 구자은 LS전선 사장이 가져왔다. '젊은 용' 구자은 사장이 LS의 빠르고 간결한 조직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MBA 출신의 중국통

구자은 사장은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베네딕트대 경영학 학사,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구 사장이 나온 시카고대 MBA는 최태원 SK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등 재계 큰 별들의 산실로써 자유경쟁 원리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그룹 내 중국통으로 불리는 구 사장의 역량도 시카고대 MBA 배움의 토대 위에 쌓인 것으로 보고 있다.

구 사장은 1990년 LG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하면서부터 범LG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2년 LG전자로 자리를 옮겨 상해지사와 중국지역본부 근무 등 중국과 인연을 맺은 구 사장은 2004년 LS전선으로 이동, 중국지역담당ㆍ사출시스템사업부장ㆍ통신사업부장 등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구 사장이 실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LS니꼬동제련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 CMO) 부사장을 맡았던 구 사장은 지난해 말 마침내 LS전선 대표이사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 COO)를 맡으며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손종호 LS전선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각자대표를 맡으며 투톱체제를 구성한 것이다.

사장 되자마자 매출↑

구자은 사장이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은 이후 LS전선은 놀라운 속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 LS전선은 8조8,436억원의 매출과 1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각각 7조7,774억원, 2,547억원을 기록한 전년도와 비교해 매출은 소폭(13.7%)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2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548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1,720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아예 적자전환했다. 실적악화에 대해 LS전선 측은 계속된 기상악화로 주요 공사가 지연됐고, 수익성이 낮은 수주부문 매출 비중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LS전선은 612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이 135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중동을 겨냥한 고부가 초고압 케이블 매출이 본격화되고 국내에서는 일반전선에까지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LTE모멘텀으로 통신선 또한 호황을 맞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금융업계에서는 올해 LS전선의 영업이익을 6,329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완전한 턴어라운드를 이룬 셈이다.

올해 1분기 호실적은 구 사장이 LS전선의 최고운영책임자로서 맞이한 첫 성적표다. 물론 LS전선 실적호조의 공을 구 사장에게만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최고운영책임자가 기업의 정책결정 및 수행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라는 것을 감안할 때 경영인으로서 구 사장이 자질이 어느 정도 검증되는 계기였다고 충분히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으로는 최고 지분율

지난해 말 구자은 사장이 LS전선의 사장으로 승진했을 때 재계에서는 "당연한 결과이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LS 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열 LS전선 회장 등 사촌들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오래전인데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 사장은 이번에야 겨우 사장직에 오른 까닭이다. 구 사장의 늦은 승진으로 LS의 사촌경영체제 또한 그만큼 늦춰지게 됐다.

보수적인 범LG가의 특성상 사촌들보다 나이가 어린 구 사장의 승진이 늦은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바 있다. 이번에 사장에 임명된 것도 지난해 부친 고 구두회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더 이상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율과 그에 따른 영향력으로 볼 때 구 사장의 사장 임명은 분명히 늦은 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 사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주)LS의 최대주주다. 2008년 출범한 (주)LS는 LS전선(87.0%), LS산전(46.0%), LS니꼬동제련(50.1%) 등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어 (주)LS의 최대주주가 되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지주회사 (주)LS의 지분은 현재 구자홍 회장을 포함, 43명의 친인척들에게 골고루 분배돼있다. 이중 가장 많은 지분을 지니고 있는 것은 구 사장이다. 구 사장은 (주)LS의 주식 129만3,960주(4.02%)를 보유하고 있다. "(주)LS의 주식은 세 명예회장 가족 단위로 골고루 분배돼있는 터라 남자 형제가 없는 구 사장에게 많은 지분이 간 것"이라는 LS 관계자의 설명을 감안하더라도 적지 않은 지분율이다.

또한 구 사장은 부친이 명예회장으로 있었던 예스코의 최대주주(13.16%)이며 가온전선의 2대주주(4.80%)에 올라있기도 하다. 나이가 어리지만 구 사장의 그룹 내 영향력을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다.

확보지분에 기반한 구 사장의 영향력은 향후 예상되는 그룹의 계열분리 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LG로부터 떨어져 나온 LS는 고 구인회 LG 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구평회, 고 구두회 명예회장들이 만들었다. 그러다 각 명예회장의 아들들이 계열사의 수장에 오르고 지난해 고 구두회 명예회장이 작고한데다 구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마침내 사촌경영의 틀이 완성됐다는 평을 듣는다.

현재까지는 어떠한 징후도 없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사촌경영을 하는 여타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LS 또한 언젠가는 계열분리가 있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전력송배전ㆍ통신, 기계ㆍ부품, 에너지 등 주력 계열사들이 최근 소규모 M&A를 통해 빠르게 몸집을 키울 때마다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사세 확장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해외수주 이끌 예정

올해 LS전선은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난 성적표 이외에도 LS전선은 노후전력 교체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중동 국가부터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서 잇따라 프로젝트를 따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전선업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비수기로 꼽히는 1분기에서도 국내외 수주를 따내고 있어 향후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LS전선은 쿠웨이트 1억700만달러, 사우디아라비아 144만달러, 카타르 136만달러 등 올해 3월까지 총 1억1,000만달러(약 1,240억원)의 중동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단순히 케이블 제품을 납품하는 수준을 넘어 설치ㆍ시공까지 수행하는 턴키(일괄 수주) 방식이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총3,500만달러를 투자해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 바왈 지역에 전력케이블 공장을 준공하고 220kV급 전력케이블을 주력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LS전선이 이와 같은 수주실적을 세우는 바탕에는 구자은 사장을 비롯한 해외통들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흑룡의 해인 올해 1964년생 '젊은 용' 구자은 사장의 역할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