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3배 크기인 피지는 오랫동안 남태평양의 낯선 섬나라로 여겨져 왔다. 비티레부와 바누아 레부 등 2개의 큰 섬과 320여개의 부속 섬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피지의 수도인 수바는 원양어선들의 오랜 쉼터고 서쪽 난디는 관광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피지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카니발리즘'이라는 식인문화가 존재하던 미개한 섬이었다. 상점에 진열된 기념품인 '이쿨라'는 엽기스럽게도 사람고기를 먹을 때 쓰는 포크이고, 피지박물관에는 사람 관절을 꺾는 순서가 담긴 사진이 있다. 인구 80만의 외딴 섬에는 아직도 추장제도가 남아 14개 부락으로 구성된 대추장회의가 1년에 한 차례씩 열리고 있다.
원주민들의 낯선 의식들
피지에서는 옛 원주민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부족단위 생활을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세부세부'와 '카바'의식이라는 이색 풍습이 남아 있다. '세부세부'는 낯선 부락에 들어갈 때 허락을 청하는 의식으로 방문자들은 '얀고나'라는 뿌리를 부락의 추장에게 바쳐 적대감이 없음을 보여준다. 은 부락에서 손님을 형제로 맞이할 때 치르는데, '카바'라는 술을 돌리며 밤새도록 취하기도 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피지 사람들은 늘 해맑다. 멜라네시안 여인네들은 붉은 꽃잎인 '세니토아'와 흰 꽃잎인 '부아'를 귀에 꽂고 상냥하게 "불라"(안녕하세요)를 연발한다. 토요일에 열리는 장터에서 눈이 마주치면, 길거리를 거닐다가도 살갑게 "불라 불라"를 건네는 순진무구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남성들은 맨발에 정장으로 '술루'라는 치마를 입고 다닌다. 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맨발로 생활을 한다. 흰색, 보라색 교복으로 단장한 학생들이 신발은 없이 맨발로 거니는 생경한 풍경들이다.
마을을 벗어나 난디와 수바를 잇는 퀸스로드를 달리면 사탕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들판을 가로지른 작은 협궤는 사탕수수를 나르는 데 이용됐다. 100여년 간 영국지배를 받다 독립한 피지는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인도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전체 인구의 절반을 인도인이 차지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장집을 대신해 이제는 교회도 들어섰다.
영화의 배경과 휴양 천국이 된 섬
원주민들의 삶터를 벗어나면 피지의 섬들은 완연한 휴양지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피지에 관광 훈풍이 분 뒤로는 리조트로 변신한 섬에서 원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휴양의 천국으로 유명해지기 전,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피지에서는 인상 깊은 영화들이 일찌감치 촬영됐다. 브룩 실즈 주연의 '블루라군'은 난디 인근의 열도에서 찍었고 몬드리키섬은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무대였다. 섬뜩한 영화를 찍기도 했는데 나부아강은 '아나콘다 2'의 배경이었다.
열대의 바다는 난디 인근 아마누카 제도의 섬들로 향하면서 끝없는 환상으로 덧씌워진다. 수십여개의 섬들은 각기 개성을 갖춘 채 리조트로 개발되거나 요트를 타고 나서는 호핑 투어의 중간 기착지로 매력을 발산한다. 섬으로 향하면 남태평양의 푸른 산호바다에서 교감하는 구릿빛 커플들의 달콤한 밀애를 엿볼 수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피지까지 직항, 경유 항공편이 운항중이다. 난디에서 마나,보모 섬 등 휴양지는 경비행기로 10여분 걸린다. 에서 유람선으로는 1시간30분이면 닿을수 있다.
기타 정보=피지는 9월까지 건기, 10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수바는 1년의 절반 가량 비가 오지만 난디지역은 청명한 날이 많다.
나부아강 뗏목 트레킹을 위해서는 난디에서 수바를 오가는 코치버스를 이용한다. 난디 데라나우 선착장에서 360도 회전하는 초고속보트와 선셋 크루즈를 체험할 수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