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희생자인가, 자발적 순교자인가?

로젠버그 부부는 1953년 6월 19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간첩죄로 처형됐다.

재판을 맡았던 어빙 카우프먼 판사는 판결문에 "피고들의 죄가 살인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면서 "러시아(소련)에 원자폭탄을 넘겨준 행위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자의 공격을 초래했고, 그로 인해 이미 사상자가 5만명을 넘어섰다"고 적었다. 그러나 원자폭탄 제조 이론이 널리 알려진 상태였고 원자폭탄을 개발했던 과학자들은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혐의가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마침표를 찍었던 원자폭탄은 미국만의 전유물이었다.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당황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소련과 내통한 간첩을 색출했다. 원자폭탄을 연구했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가 간첩으로 적발됐고, 이 과정에서 육군 기계공이었던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도 언급됐다. 그린글래스는 1950년 7월 매형과 누나인 로젠버그 부부를 간첩으로 지목했다.

로젠버그 부부가 핵무기 제조 비밀을 소련에 넘겼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푹스와 그린글래스가 징역 15년 선고를 받은 것과 달리 로젠버그 부부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극단적인 반공주의 매카시즘이 극성이었던 시절 남편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공산당에 가입했었다는 사실은 눈에 띄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교황 비오 12세와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등이 구명 운동을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로젠버그 부부는 한국전쟁이 막바지였던 1953년 6월 19일 '자백하면 사면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한 채 전기의자에 앉아 목숨을 잃었다. "공산주의자 쥐새끼들에게 죽음을!" 처형 소식이 전해지자 백악관 앞에 모인 반공 시위대는 환호했다. 같은 시각 뉴욕에선 로젠버그 부부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간첩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던 그린글래스의 아내 루스 그린글래스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데이비드가 FBI와 뒷거래를 했을 거라는 추측이 돌았다.

로젠버그 부부는 양심을 지키려다 국가 폭력에 희생당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로젠버그 부부가 진보 세력 억압에 맞서 의도적으로 순교했다는 해석도 있다. 전설적인 소련 간첩 알렉산더 페클리소프는 1997년 워싱턴포스와 인터뷰에서 줄리어스에게서 산업정보를 넘겨받았으나 핵 관련 정보는 대단치 않았고 줄리어스의 아내 에설 로젠버그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로젠버그 부부 사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