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권 본격 등판을 앞두고 야권의 민주통합당 유력 주자들간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들은 대체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야권 단일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단일 후보 티켓을 차지하기 위해 민주당 주자들은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안 원장을 상대로 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러자 침묵을 유지하던 안 원장 측도 최근 반격에 나서는 등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안 원장을 둘러싼 야권 전쟁의 서막이다.

이해찬 대표가 불붙여

'안( 원장)의 전쟁'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최근 "안 원장은 이미 대선 출마가 늦었다"면서 "적어도 7월20일 전까지는 입당해서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면서 촉발됐다.

비록 이 대표가 "혹 원샷 경선이 아니면 당내 경선 후 단일화라는 투샷 경선도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안 원장의 입장 표명을 재촉하면서 시점을 못박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안 원장 측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대표가 포문을 열자 우상호 최고위원과 문성근 전 최고위원도 안 원장에게 민주당에 입당해 완전국민경선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안철수
장외의 안 원장 영입 문제를 놓고 상임고문과 경남지사 등 당내 주자들이 "미리 굽신거릴 필요가 있느냐. 내부 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각을 세운 데 이어 당 지도부 인사들마저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게 좋을 것"이란 훈수성 발언을 쏟아내자 대응을 자제하던 안 원장 측도 더 이상 참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안 원장의 대변인 격인 유민영 한림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19일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발언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근래 민주당 일부 인사의 발언은 안 원장에 대한 상처내기"라고 강력 반발했다.

유 교수는 "그런 발언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 것 생각하기 바란다"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신뢰를 만든다"고 밝혔다.

정중동의 자세를 유지하던 안 원장 측이 발끈한 것은 정국이 빠르게 대선국면으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민주당 인사들의 비판성 발언이 잇따르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하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안 원장은 요즘 정치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유 교수는 물론 강인철 변호사 등 핵심 참모들과 주로 전화나 이메일로 논의하는 약식 회의를 거의 매일 한다고 한다. 이번에 유 교수의 공개 반응도 이 논의과정에서 정해진 것임을 감안하면 안 원장이 이해찬 대표 등의 발언에 몹시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유 교수는 20일 "이해찬 대표를 포함해 누구를 특정했던 건 아니며 서로의 영역과 결정을 존중해달라는 충고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 대표가 "안 원장 측과 얘기해봤는데 아직 태도 결정도 안돼 있더라"고 말한 게 안 원장을 자극했을 것이란 해석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의 한 측근은 "어떤 남자(안 원장)를 짝사랑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신(민주당)을 사랑해달라는 상황인데, 그 남자는 아직 사랑할지 결정도 못했다"고 현재의 상황을 묘사했다.

문재인
안 원장 측의 이 같은 공개 반발에도 민주당 주자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 따라 안 원장을 향한 '어르기' '달래기' '때리기' '치켜세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안 원장 한 명 대 민주당 전체의 '1대 다(多)'구도의 입씨름이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孫, 金, 丁 "때려야 산다"

안 원장에 대한 접근법은 야당 주자 별로 조금씩 다르다. 때리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 주자도 있고 어르고 달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주자들도 있다.

유력주자를 공격하는 게 낫다는 쪽은 아무래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낮은 후보군 쪽이다.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안 원장을 깎아 내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는 한결같이 안 원장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자신과 안 원장 간 경쟁구도를 설정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시발점은 경남지사였다. 김 지사는 13일 "한 개인이 아무리 탁월해도 국정을 잘 이끌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소속 후보가 국정을 맡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안 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손학규
김 지사는 "거머리가 득실대는 논에 맨발로 들어가 모내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내가 농사를 지었으면 잘 지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그 사람이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그런 정치는 안 된다"며 "정치를 준비한 사람, 국민 속에서 정치를 익힌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안 원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어 고문은 강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그는 18일 "아무 실상도 없는 이미지만 갖고 공동정부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고문의 발언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무게 중심은 안 원장을 '실상 없는 이미지'라고 표현한 데 실려 있었다.

손 고문은 "우리가 바보냐. 컨텐츠가 이미지를 이길 것"이란 말로 민주당 후보가 안 원장과 단일화를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원장의 '발끈성' 반응이 나온 뒤에도 굴하지 않고 '안 원장 때리기'를 이어갔다. 21일에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의지는 본인의 깊은 고뇌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국민에게 어떻게 하면 당선될까, 어느 시점이 좋을까라는 계산으로 보여져서는 안 된다"고 안 원장의 정치 선언과 관련한 미온적 태도를 아프게 꼬집었다.

손 고문은 또 "안 교수를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민주당의 저력, 우리의 능력을 스스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안 교수를 불쏘시개에 비유한 것이다.

김두관
이어 정세균 고문도 뒤질세라 안 원장 공격 대열에 합류했다. 정 고문은 21일 "대선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국민에게 충분히 검증할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안 원장이 대선 후보가 됐을 때 국민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사전 노력의 시간이 있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정 고문은 이어 안 원장의 국정 운영 능력을 묻는 질문에는 "대통령은 경험과 지식, 경륜이 있어야 한다. 정치도 잘 해야 하고 국정도 알아야 하며 소통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적 입장을 이어갔다. 이들은 이처럼 안 원장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文 '선의의 경쟁' 전략

민주당 유력 주자 중에 상임고문은 안 원장을 접하는 방식이 다른 후보군과는 조금 각도가 다르다. 안 원장과의 공동정부론을 주창한 데 이어 20일에는 "민주당과 안 원장을 지지하는 분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관계"라고 말했다.

문 고문은 안 원장 측이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에 불편한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서로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며 안 원장 측의 반응도 그런 바람을 표출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비록 문 고문도 12일에는 "민주당이 힘을 모아 후보를 내면 지금의 지지율과 비교도 안될 것이며 안 원장에게 절대 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지만 이는 안 원장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민주당 후보로 올라서기 위한 자신의 PR 성격이 강하다.

종합해보면 문 고문은 안 원장과 경쟁적 위치에 서 있는 민주당 후보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서로가 선의의 경쟁자임을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과 안 원장에 이어 굳건히 3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안 원장과 대등한 정치적 역량의 소유자 임을 부각하면서 경남지사와 고문 등 당내 다른 주자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금 단계서는 안 원장을 쳐다보지 말고 그냥 우리 갈 길을 가는 게 옳다"며 "안 원장을 기다리다 민주당 후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 원장에 대한 구애 공세나 비난에 앞서 민주당 후보의 자생력을 스스로 높이는 게 우선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10월쯤엔 출사표 던질것" 전망
● 安 출마 선언 언제쯤…


염영남기자


원장은 아직도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종걸 최고위원은 "제3의 가설정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안 원장 세력이 합당해 야권 단일 후보를 선출하자"는 아이디어까지 제시했다.

그런데도 정작 키를 쥐고 있는 안 원장은 침묵 중이다. 안 원장은 9월부터 시작되는 2학기에도 서울대 일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의는 맡지 않더라도 제자들의 논문 지도 등을 도울 생각이라고 한다.

대변인 격인 유민영 교수는 "안 원장은 현재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고 7월쯤 출간될 책 원고를 검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 원장 주변에서는 정치권 본격 등판과 관련 더 이상 늦출 경우 국민적 검증을 피하려 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부담을 고려해 결단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과 아예 10월 이후로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야가 공히 런던올림픽(7월27일~8월12일) 기간 등을 고려해 각각 8월말이나 9월 등으로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미루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안 원장도 가급적 정치적 결단을 늦추면서 막판까지 상황을 엿보겠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처럼 안 원정의 결단이 늦어지자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선진통일당마저 "태도 결정을 분명히 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원복 대변인은 20일 "헌정사상 무소속 대통령이 나온 일이 없다"며 "안 원장은 뭔가 확실한 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여야 양당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힘들고 고난의 길이라도 선진통일당과 함께 하든지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안 원장의 침묵이 길어지자 그와 지역적 연고도 없고 이념적으로도 거리가 먼 선진통일당 마저 영입 의사를 타진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 형국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후보가 모두 확정되는 9월이 지나면서 이들의 언론 주목도가 떨어지는 10월쯤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11월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쳐 12월 대선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유력해 보인다"고 전했다.

여론조사기관인 TNS 코리아가 지난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전 위원장과 안 원장과의 양자 대결은 46.8%대 43.2%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야권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안 원장이 30.5%로 1위, 고문이 19.0%로 2위에 올랐고 이어 고문(10.6%)과 지사((4.9%),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4.4%)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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