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초입의 개망초 꽃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산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으로 알려진 곳만 해도 30여 군데에 이른다. 특히 강원도 정선군은 두 개의 백운산을 품고 있다. 정선군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882.5m)은 동강을 굽어보는 조망으로 유명한 곳이며,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에 솟은 백운산(1,426m)은 우리나라의 백운산 가운데 가장 높고 장엄한 산세를 자랑한다. 이제 국내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백운산 자락으로 떠나보자.

고한 백운산의 정상은 마천봉(摩天峰)이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구친 봉우리'라는 뜻이다. 백운산 마천봉 자락에는 여기저기 임도가 드리워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던 탄광 지대여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뚫었던 운탄길이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백운산 운탄길이 이제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의 명품 트레킹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하늘길은 백운산 자락을 빙 돌아 고한읍의 하이원호텔(골프장 지구)과 사북읍의 강원랜드호텔(카지노 지구)을 잇는 10km 남짓한 산책로다. 흔히 '정선 하늘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도중에 영월군 상동읍 지역을 상당히 길게 지나므로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어디를 기점으로 잡든 상관없지만 해발 1,131미터인 하이원호텔에서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다. 강원랜드 쪽에서 시작하면 오르막 구간이 길어 무척 힘들다.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산그리메의 장관

태백선(영동선) 열차를 타고 고한역에서 내린다. 고한역 앞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하이원호텔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탄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호텔 정문 앞에 이르렀다. 버스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잠시 걸으면 18번 홀 골프코스 입구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백운산 남쪽을 바라보며
안내도 앞에서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인 처녀치마길로 들어선다. 개망초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보통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보다 못한' 또는 '보잘것없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개망초의 경우는 다르다. 망초보다 오히려 꽃이 크고 아름다운 것이다. 한동안 개망초 꽃길이 이어지다가 우거진 숲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름인데도 선선한 울창한 숲길이다. 단풍나무가 많은 것으로 보아 가을 단풍도 퍽 고울 듯싶다.

하늘길 입구로부터 20여 분 후 김소월의 '산유화' 시비가 세워져 있는 전망3거리에 다다랐다. 전망대에 오르니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산줄기들이 겹겹이 이어지며 준봉들이 솟구쳐 있는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도종환 시인이 '벗 하나 있었으면'에서 표현했듯이 '산그리메'(산 그림자의 옛말)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망3거리에서 2분 후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얼레지꽃길이 오른쪽으로 드리운다. 얼레지꽃길을 거쳐 백운산 마천봉 쪽으로 가면 하늘길의 운치를 제대로 맛볼 수 없다. 넓은 하늘길을 계속 따른다.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완만한 내리막으로 바뀌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진달래 꺾으며 넘었던 화절령 꽃꺾기재

얼레지꽃길 입구에서 15분쯤 걸어 낙엽송길에 이르렀다. 하늘길 양쪽으로 빽빽하게 우거진 낙엽송들이 저마다 키 자랑을 하며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다. 노랗게 잎이 물드는 가을날의 낙엽송도 무척 아름다우리라.

화절령 광장의‘진달래꽃’ 시비
낙엽송길을 벗어날 즈음 산악자전거(MTB)가 힘차게 달려오더니 내 옆을 휙 스쳐 지난다. 급경사가 거의 없는 하늘길이야말로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최상급의 라이딩 코스일 것이다.

낙엽송길에서 50분 후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가 세워져 있는 화절령 광장에 닿았다. 정선 사북리와 영월 직동리를 잇는 고갯길인 화절령(花折嶺)은 봄철 산나물을 캐러 온 여인들이나 행인, 나무꾼들이 진달래꽃을 꺾으며 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꽃꺾기재라고 한다.

화절령 광장에서 왼쪽으로 가면 아롱이연못, 오른쪽으로는 도롱이연못이 있다. 아롱이연못은 웅덩이 수준으로 넓이가 작고 별다른 특징이 없으므로 그냥 지나쳐도 무방하다. 도롱이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의 지반 침하로 생긴 연못이다. 화절령 일원에 살던 광부의 아내들이 이곳에서 서식하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봄이면 도롱뇽이 알을 낳는 곳으로 노루와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샘터이기도 하다.

이후로는 별로 볼 게 없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화절령 광장에서 1시간쯤 내려오면 강원랜드 폭포주차장에 이른다. 하이원호텔 쪽 하늘길 입구에서 2시간 30분쯤 걸린 행복한 산책길이었다. 소나무 등 상록수가 별로 없고 활엽수 위주로 숲을 이룬 곳이니 만큼 가을철 단풍 보러 다시금 오겠다고 다짐해본다.

# 찾아가는 길

도롱뇽이 알을 낳는 도롱이연못
제천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태백 방면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강원랜드 입구를 지나 하이원호텔 입구에 닿는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버스나 태백선(영동선) 열차를 타고 고한이나 사북으로 온 다음 하이원리조트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 맛있는 집

고한에 있는 구공탄구이(033-592-9092)는 연탄불로 굽는 한우와 돼지고기로 유명하다. 한우에는 꽃등심, 갈비살, 주물럭 등이 있으며 돼지고기는 모둠구이, 생삼겹, 생목살, 항정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양념갈비 등으로 낸다. 매콤한 양념으로 졸인 돼지갈비에 떡을 곁들이는 양푼찜갈비도 인기를 끄는데 남은 양념을 이용한 볶음밥은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개망초와 어우러진 화절령 광장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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