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오냐, 대한국민 만세다."

세계챔피언이 된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는 정겨웠다. 어머니는 얼마나 기뻤던지 대한민국을 대한국민이라고 말했다.

홍수환은 1974년 7월 3일 새벽(한국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 챔피언이 됐다. 군인 신분이었던 일병 홍수환은 1회부터 강타자로 소문났던 챔피언 아널드 테일러에게서 다운을 뺏더니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라디오 중계를 듣던 국민은 열광했다.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됐던 홍수환은 어머니 황논성씨와 전화 통화가 방송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훗날 "방송이 되는 줄 알았다면 '어머님, 그동안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라고 말했을 텐데"라며 웃었다.

홍수환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권투 구경을 즐겼다. 부친이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자 소년 홍수환은 아버지에게 챔피언 벨트를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김기수가 196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챔피언이 되자 서울 중앙고 학생이었던 홍수환은 결국 손에 글러브를 꼈다.

홍수환은 비행기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 총 35시간을 여행한 끝에 더반에 도착했다. 지칠 대로 지친 홍수환은 테일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기술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다. 홍수환이 묵었던 호텔 사장은 테일러의 경기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건넸고, 지피지기(知彼知己)한 홍수환은 테일러의 장단점을 분석한 끝에 다운을 네 차례나 뺏을 정도로 완승했다. 훗날 권투계에는 테일러 진영에서 내분이 생겼다는 말이 돌았다.

어렵사리 허리에 찬 챔피언 벨트는 오래가지 못했다. 홍수환은 1975년 3월 멕시코 출신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에게 챔피언 벨트를 뺏겼고 1976년 10월 재대결했으나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 때문에 설욕하지 못했다. 당시 흥분했던 홍수환의 형 홍수일씨는 링 위에 올라 사모라를 때려 멕시코 권투계를 발칵 뒤집었다. 홍수환은 "멕시코 선수와 싸우는데 멕시코인이 주심을 봤다"면서 "WBA 감독관 코르도바가 무판정 경기라고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홍수환은 1977년 11월 파나마에서 엑토르 카라스키야를 '4전 5기'끝에 KO로 제압하고 초대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이 됐다. 한국인 최초로 두 체급을 석권한 홍수환은 50전 41승(14KO) 4무 5패란 기록을 남긴 채 한국 권투계 전설로 남았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