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세부대책 잇단 발표 "복지재원 증세 불가피"
중산·서민층서 적극 환영… '공정 경쟁'에 정책 중심
민주당선 '때리기' 나서 "내용상 재벌보호" 맹공
진보정책 챙기면서도 '중도세력 외면할까' 고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제민주화'를 핵심 화두로 꺼내 들었다. 경제민주화는 박 전 위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 이전부터 여야의 공통된 목표로 간주돼왔다.

하지만 여야를 통틀어 가장 보수적인 색채가 진하다고 평가되는 박 전 위원장이 대선 출마 선언 자리에서 첫 일성을 경제민주화로 내세웠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향후 대선 본선 과정에서도 박 전 위원장은 이 부분을 핵심 키워드로 삼을 것이 분명하고 이에 대한 후속 대책들도 속속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념적 중도층을 겨냥해 박 전 위원장이 좌클릭 전략으로 먼저 치고 나온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야권 주자들이다. 재벌 대기업을 공격하면서 중ㆍ소상공인 및 서민층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던 진보 진영의 단골 메뉴를 박 전 위원장이 선점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슷한 방향으로 정책을 내놓자니 뒤늦게 박 전 위원장을 쫓아가는 모양새가 되고 외면하자니 중도 진영의 지지세가 박 전 위원장 측으로 쏠릴 것이 우려되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많은 취재진이 건물 위에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박 전 위원장이 10일 경제민주화를 천명한 데 이어 새누리당에서는 11일 본격적으로 관련 세부 정책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5년 전에는 감세가 필요했으나 지금 복지 재원 때문에 일부 증세가 불가피하다"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주식 양도차익이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안내고 있는 것을 포함해 오랫동안 비과세로 감면 받는 부분을 조정해도 이젠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구체적인 예까지 들었다.

재계를 비롯한 고소득 층은 이 같은 박 전 위원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중산층ㆍ서민층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입장이다. 대선을 염두에 둔 야권 주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적 약자 지원 절실"

박 전 위원장은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정 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시'로 잡았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한 법 집행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대기업의 신규 순환 출자 규제 및 대기업 총수들의 사면 제한, 중소기업인 등 경제적 약자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복지 분야에서는 그간 주장해오던 생애 주기 별 맞춤형 복지제도를 확립하고 복지 수준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이끌어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내용을 살펴보면 재벌의 지배 구조 개선보다는 공정 경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재벌 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은 별로 실효성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나 대주주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 등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캠프 인사들도 야당의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포함한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일종의 '파괴적 경제민주화'에 가깝다고 말한다. 반면 박 전 위원장이 선보일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지배구조는 유지하되 권력 남용 등 불공정 행위나 주주들의 사익 추구 규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기업들이 동네 빵집이나 떡볶이집 등 중소기업 업종에 침투하거나 하청업자를 상대로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행위, 중소기업의 기술을 착취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단단히 회초리를 들고 나설 것을 천명한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과거엔 국가 발전이 국민 행복으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국가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강조했다. 성장을 위해 국가와 집단을 최우선시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국가와 공공 영역이 적절히 개입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도 쪽으로 좌클릭했다기 보다 아예 좌파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서 이를 외면한 채 공정 경쟁에만 주력하는 것은 본질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있다.

선명성 경쟁 가속화 될듯

민주당은 일단 강공 기조로 방향을 잡았다. 민주당은 박 전 위원장이 5년 전 대선 경선 당시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공약을 발표했는데 이제 와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것은'짝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새누리당 정책보다 더 진보적으로 좌클릭해 선명성 경쟁을 벌이려 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11일 "박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는 내용상 재벌을 보호하는 정책"이라며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를 세우자는 '줄푸세'를 주창한 분이 재벌 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건 허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줄푸세를 주관해온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이 캠프의 중심인데 어떻게 재벌 개혁을 할 수 있겠냐"고 꼬집기도 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도 '박근혜 때리기'에 가세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12일 박 전 위원장을 향해 작심한 듯 "간판만 경제민주화라고 달고 있다"며 "진정성 없는 사이비 경제민주화"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문 고문은 "박 전 위원장은 여전히 줄푸세를 주장하는데 줄푸세는 부자 감세하고 재벌 규제를 풀어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넘보도록 허용한 정책"이라며 "그 주장을 하면서 무슨 경제민주화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박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내용이 풍부한 것 같지 않다"며 "누구나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이 문제"라고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박 전 위원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공정거래법 등 6개 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경제력 집중 완화와 불공정 행위 엄단 등 재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면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들이다. 새누리당과 박 전 위원장이 내놓는 정책에 비해서는 조금 더 강도가 센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민주당은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에 당력을 모을 태세다. 이는 상위 10위 대기업집단의 모든 계열사에 대해 순 자산의 30%까지만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 및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정책은 허구라고 주장하면서 새누리당 정책 방향보다 좌측으로 더 방향을 꺾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중도층의 선택은 어느 쪽?

정치적으로 보면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왼쪽을 향해 진격 중이다. 오른 쪽 표심이야 박 전 위원장이 어떤 스탠스를 보이더라도 막상 대선에 임하면 다른 곳으로 분산될 리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중원을 향해 진보적 정책으로 일관되게 나아가면 대선에서 충분히 승세를 굳힐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민주화 방침 발표가 정책적 선점에 성공했다고 보면서 앞으로도 더욱 진보 성향 정책 발표에 힘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야권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집중 포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고민이 적지 않다. 야권 주자 입장에서는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좌측보다는 오히려 우측으로 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기 위해 더욱 좌측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진보 진영 표심이야 더욱 단단히 굳어질 것이 확실하나 문제는 중도 진영의 표심이다. 과연 이 계층에서도 민주당의 이 같은 진보적 선명성이 뛰어난 정책들을 미래를 위한 합리적 비전으로 판단하겠느냐 하는 부분에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산토끼를 잡으러 다녀도 모자란 판에 집토끼 단속만 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정가에서는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의 공세는 오른 쪽을 발판 삼아 외연을 넓혀가는 추세라고 보는 분석이 적지 않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박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일관적인 공격에 나서면서도 이념적 지지세 확산 전략 면에서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주춤거리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해 대선 전체의 그림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책 방향 면에서 보면 박 전 위원장의 선제 스트레이트 한 방이 민주당 주자들에게 뼈아프게 명중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 주자들이 어떻게 재정비해 반격에 나설지 궁금하다.

그런 와중에 야당 지지층 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소식이 하나 날아 들어왔다.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지지율이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보다 오차범위 내 우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리얼미터의 11일 조사에 따르면 문 고문의 지지율은 18.3%로 안 원장(16.1%)을 오차범위(±2.5%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안 원장이 정치적 행보를 자제하면서 지지율이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문 고문은 대선 출마 선언 이후 활발한 대외 활동에 나서고 있어서 지지율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38.8%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안 원장이 정치 참여 문제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이어져 유권자의 피로도가 쌓이고 관심도도 떨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주당 주자군 중에서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8일 출마 선언 이후 지지율이 5.5%로 급상승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3.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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