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결단이 임박했다.

안 원장의 정치 참여 선언이 계속 미뤄지면서 지지층이 적잖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안 원장의 지지율 정체 또는 하향세로 이어지고 있다. 3위권에 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도 일부 조사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원장의 위기다. 안 원장의 모호한 행보가 이어지는 사이 문재인 고문은 차근차근 점수를 벌면서 안 원장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15일 휴대폰 보유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주자 다자간 조사에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1.2%로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문 고문이 24.0%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20.0%로 3위로 밀려났다.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도 박 전 위원장이 41.2%를 1위를 고수한 가운데 문 고문이 17.9%로 2위, 안 원장은 15.7%로 3위로 내려 앉았다.

물론 리얼미터가 16일 발표한 야권 후보 단일화 가상 대결에서는 아직 안 원장이 40.5%의 지지율로 34.0%에 그친 문 고문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전 연령대에서 안 원장이 앞서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특히 젊은 층에서 안 원장의 우위 구도가 두드러졌다. 지지 정당 별 조사에서 대부분 안 원장이 앞섰으나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두 사람의 지지가 비슷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1일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경기 성남시 안철수연구소 사옥에서 열린 연구소의 사회공헌계획 발표 행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둘 간의 대결에서는 안 원장이 조금 우위를 보이고 있으나 다자 대결 조사에서 서서히 문 고문에게 추월을 당하는 추세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안 원장 입장에서는 비상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잠행을 계속하던 안 원장은 19일 드디어 정치 참여에 대한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았다. 자신의 저서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에서다.

안 원장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와의 대담집 출간과 함께 앞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계속하든,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아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대선 출마 의지를 분명히 밝히진 않았지만 보다 적극적인 대외 행보에 나서겠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실제 안 원장은 특히 저서 출간을 계기로 보다 활발한 사회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 원장은 18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출연한 적이 있는 SBS '힐링 캠프' 프로그램에 출연해 녹화를 마쳤다. 이 녹화분은 23일 방송된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된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출판사인 김영사 관계자들이 출입기자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있다.
안 원장은 "저를 지지하는 분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며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자신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경우 공개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의미다.

안 원장 측 유민영 대변인은 "안 원장은 적당한 시기에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생각이며 출간을 계기로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을 알리고 이야기를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이 책 서문에서 "기업 현장에서, 학교에서,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청춘콘서트를 포함한 대화의 자리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우리가 열망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그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이어 "내 딸을 포함한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우고 행복을 느끼며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사회를 이뤄 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런 토론과 고민의 결과들이 담겼다"고 적었다.

안 원장은 이 책에서 정치 참여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라는 제정임 교수의 질문에 그는 "제 인생에서 성공의 의미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며 "죽고 난 후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긍정적인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좋은 제도, 좋은 책, 바람직한 조직 등을 통해 세상에 흔적이 남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이와 함께 안 원장은 우리 사회의 과제로 '정의로운 복지국가'와 '공정한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또 일자리와 복지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선순환하는 복지를 표방하고 시대 상황에 맞춰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전략적으로 조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과 극빈층 등 취약 계층의 복지를 우선 강화하며 동시에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된 보육 분야에서는 국공립 보육시설에서 대상 아동 30%를 수용할 수 있도록 늘리도록 했다.

여야간 논란이 되는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재벌 확장과 이에 따른 시장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벌 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내부 거래 및 편법 상속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는 등 단점화 폐해 최소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벌 개혁의 저해 요인인 경제 범죄에 대한 약한 사법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상액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 임기 말이면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나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방안도 제시했다.

또 통일을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 봐야 하며 금강산, 개성관광 등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적었다.

2만여권 판매되자 희색

안 원장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이 당초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낼 계획이었지만 일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대담 형식으로 바꾼 것"이라며 "안 원장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정치·사회에 대한 비전 등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 측은 이번 책 출간을 통해 다시 한번 안 원장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져 지지율이 급반등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을 추월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안 원장을 위협하는 문 고문과는 다시 격차를 벌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청년 층을 중심으로 이 책의 내용이 회자되면 대선 출마 선언을 미루면서 다소 떨어진 지지세가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 19일 하룻동안만 이 책은 2만여권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안 원장 측은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이다.

책을 출간했지만 여전히 안 원장에 대한 대선 출마 여부는 물음표다. 하지만 대선 출마 선언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현재 야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안 원장에게 썩 유리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당초 런던올림픽(7월27일~8월12일) 기간이 끝나고 8월20일 새누리당 후보가 결정된 이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추이를 지켜보다 9월 말 야당 후보도 결정 나면 그 때 상황을 봐서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됐었다.

그런데 최근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안 원장의 하락세와 문 고문의 상승세가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안 원장의 출마 선언이 예상보다 앞당겨 질 것이란 관측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고 듣고 있다"며 "29, 30일 예비경선(컷오프) 이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본격화하는 8월 초가 안 원장의 출마 선언 시점으로 유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은 아직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정국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럼 출마 선언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타이밍이 언제일까.

일단 올림픽 기간을 피한다고 하면 곧바로 새누리당 경선 일정과 만나게 된다. 여론의 초점이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맞춰지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8월 말쯤이 일단 안 원장의 정치 선언 시기로 유력해 보인다.

만일 이 시점도 지나친다면 8월25일~9월23일 진행되는 민주당 경선 일정과 마주치게 된다. 9월 말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출마 선언을 늦출수록 검증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사이 지지층의 피로도가 높아져 상대적으로 지지율은 지금의 하락세를 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느긋한 문재인, "올라갈 일만 있다"

안 원장이 책은 출간했지만 뚜렷한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사이 문 고문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문 고문은 8월25일 시작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면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민주당 경선에 현재 상황으로는 문 고문이 가장 앞서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 고문의 지지율은 확장성 면에서는 안 원장을 훨씬 추월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안 원장이 보다 이른 시일 내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으로 쫓기고 있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문고문 일단 유리한 고지

여기에다 문 고문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룰과 관련해서도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을 수용했다. 문 고문은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 정세균 고문 등이 주장한 결선투표제 도입을 받아들였다. 이는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거부한 박근혜 전 위원장과도 대비되는 행동이다.

여당 내부에서 박 전 위원장을 불통의 이미지로 공격한 것도 이 부분을 고리로 한 것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을 반대하던 문 고문도 박 전 위원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문(非文ㆍ비문재인) 진영 주자들 사이에서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문 위원장은 바로 역공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비록 위험 부담은 있다 하더라도 당 안팎의 전문가들은 커다란 돌발적인 변수가 생기지 않을 경우 문 고문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 가장 근접해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히려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면서 더 드라마틱 하게 후보 자리를 따낼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문 고문에 대한 여론의 조명이 더욱 집중화할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8월 말 이후 한달 내내 국민적 관심의 중심에 서 있을 문 고문이 향후 민주당 지지층의 적극적인 후원을 등에 업은 상태로 10월에 안 원장과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오늘 둘이서 대결을 할 경우 근소하게 안 원장이 앞서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8,9월의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시기를 거치면 결과는 장담키 어렵다. 문 고문의 지지율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안 원장은 책을 출간하면서 정치 참여 선언에 대해 이제 반(半) 걸음만 남긴 상태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겨냥한 독자 출마냐,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유지한 채 이번 대선은 쉬어가느냐로 좁혀졌다.

안 원장은 저서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단거리 경주에서는 번번이 지지만 장거리 경주에서는 1등을 차지하게 하는 강한 힘이 내면에 있다'고 적었다. 그의 출마 여부 결정이 미뤄지면서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같은 은유적 표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실질적 결과로 보여줄 때다. 그 열쇠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는 9월 말까지 적어도 지금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1위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3위에게 역전을 허용하게 된다면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게 된다. 안 원장에게는 마지막 도박의 장(場)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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