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영호(왼쪽) 군총참모장이 지난 4월 15일 열린 군사퍼레이드 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가운데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군 인사 문제 발단, ‘경제’내세운 최룡해 손들어줘


군부 힘 빼기 위한 조치, 北 소식통 “리영호 향후 중용될 것”

북한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고 있다. 북한 군부의 실세인 리영호(70) 총참모장이 전격 경질됐는가 하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초고속으로‘공화국 원수’로 추대된 것이 상징적이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급격한 변화는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뿐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상당한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갈등이 자칫 외부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리영호의 갑작스런 실각은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해석되기도 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리영호의 실각과 김정은의 위상 강화는 북한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모멘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간한국 1월9일자 북한 관련 보도 지면.
무엇보다 리영호의 해임은 뜻밖의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군부의 최고 실세인데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에 핵심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리영호의 해임을 두고 여러 설(說 )이 난무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리영호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의 군 인사 ㆍ통제권에 맞서다가 해임됐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반면 리영호 책임(원인)론에 근거해 리영호의 비리가 발각됐다거나 김정은을 기망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물러났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에 연고자가 있다는 한 탈북자는 “올해 초 김정은이 105탱크사단을 방문했을 때 그 부대 영양실조 군인을 보이지 않게 사전 조치했다가 이를 알게 된 김정은이 리영호를 크게 꾸짖은 후 북한 군인들 사이에 그의 해임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주요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군의 특권을 제한할 필요에 따라 핵심 실세인 리영호를 제거했다는 설, 김정은과 마찰을 빚어 현직에서 물러났다는 얘기, 지난 4월 ‘광명성 3호’발사 실패 책임을 지게 했다는 관측 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최룡해의 부상과 김정은의 고모부인 당 행정부장의 막후 역할을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는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국내외 분석과는 전혀 다른 소식을 알려왔다. 한마디로 선군(先軍)보다 선경(先經)에 비중을 두는‘계획된 수순’으로 가는 과정에 돌발 변수가 생겨 리영호가 물러났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군부의 힘을 줄이고 ‘경제’에 방점을 두면서 미국과의 관계 설정 등 북한 체제 및 대외관계 전반을 핸들링하고 있는 세력이 그러한 밑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에 리영호의 해임을 통해 군부의 힘을 빼고 당ㆍ정의 우월함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주간한국>은 김정일 사망 직후인 4개월여 전, “’경제통’최룡해 뜨고 막후로”라는 제하의 기사(1월9일 자, 2406호)에서 국방위 부위원장과 ‘경제통’인 최룡해 당 비서가 김정은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중심축이 될 것이며, 부위원장은 막후에서 전체를 조율하고 최룡해 비서가 전면에 나서 북한을 변화시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부위원장이 당과 군에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해 취약한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면서 ‘먹고 사는’(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장성택
실제 지난 4월 당 대표자대회를 전후한 북한의 변신, 특히 김정은 체제로의 가속화는 <주간한국>의 분석대로 진행됐다. 즉 이른바 ‘ 사람들’이 대거 당과 군에 포진했고, 대내외 적으로 ‘경제’에 올인하는 행보를 취했다.

지난 4월 북한 당 대표자회에서 최룡해는 단숨에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총정치국은 군 간부들에 대한 인사와 생활을 통제하는 핵심조직으로 ‘군부 안의 당’으로 불린다. 이로써 최룡해는 당과 군의 주요 보직을 맡아 김정은 원수의 최측근 실세로 떠올랐다. 또한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장에는 부위원장의 직계로 알려진 김원홍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 임명됐고, 우리의 경찰청장과 같은 인민보안부장에도 장 부위원장의 측근인 이명수 상장이 유임됐다. 군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리영호 참모총장 역시 장 부위원장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당과 군이 명실상부하게 장 부위원장의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사람인 리영호의 실각은 표면상 의외의 사건이지만 중요한 함의를 내포한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리영호가 실각한 직접적인 계기는 ‘군(軍) 인사’ 문제였다고 한다. 군 원로들에 대한 예우 및 인사는 리영호가 총대를 매고 해결했는데 그 외 군 간부 인사와 관련해 리영호와 최룡해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군을 대표하는 리영호와 군 간부 인사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최룡해 사이에 이해가 갈렸다는 설명이다.

당시 리영호는 군 전반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최룡해는 ‘경제’를 앞세워 군 인사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즉 그동안 군의 관장하에 있던 경제, ‘돈줄’의 상당 부분을 당ㆍ정이 주도해야 한다는 게 최룡해의 입장이었다는 것. 두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 이 결국 최룡해의 손을 들어주면서 리영호가 물러나게 됐다는 게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 과정에는 김정은의 고모이자 의 부인인 김경희 당비서의 역할도 한몫 했다고 한다. 김경희는 당경공업부장을 지내며 군수물자 등 보급물품을 관장, 군 및 민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데 그가 의 입장에 서면서 리영호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는 후문이다.

소식통은 “한국에선 리영호가 해임된 것을 두고 ‘숙청’이라고 했는데 이는 북한체제의 변화, 과 리영호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류”라면서 “리영호는 언젠가 다시 중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최룡해 편을 든 데는 지난 4월 ‘광명성 3호’발사 실패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당시 광명성 3호 발사는 군부가 밀어붙인 것으로 성공하면 북한 군부가 힘을 얻는 반면 미국과의 대화 및 식량 지원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됐다. 반대로 광명성 3호가 실패하면 군부가 책임을 지게 되고 미국과의 대화 채널이 가동될 것으로 전망됐다. 측의 입장에선 후자 쪽에 무게를 둘만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광명성 3호 실패가 ‘의도된 실패’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북한이 리영호 실각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앞으로 핵이나 미사일 등 군사적인 모험보다는 ‘먹고 사는’ 경제 문제에 더 치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미 대화의 진전이 점쳐지면서 경색된 남북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올 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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