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6일 부인 리설주(왼쪽),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함께 능라인민유원지에서 돌고래 묘기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북한이 서북도서와 가까운 황해남도 최전방에 공격 헬기와 정찰 헬기, 그리고 병력을 이동시키는 기동 헬기까지 배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북한의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되는 등 격변기에 북한군이 서북도서를 기습 강점하거나 서부전선에서 국지적 도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과 단둥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최전방에 군을 재배치한 것은 리영호 실각의 연장에서 북한군이 '먹고 사는'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전언이다. 즉 북한군을 크게 전투부대와 후방부대로 구분해 후방부대 인력이 '경제' 분야에 대거 투입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 소식통은 그같은 조치가 표면적으로는 리영호에 이어 총참모장에 오른 현영철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배후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국가전략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말해 북한이 군을 재배치하는 배경은 북한 체제가 '선군(先軍)에서 선당(先黨)'으로 이행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한 북한의 대변화는 지난 7월 15일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경질되고 김정은이 공화국 원수로 취임하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리영호의 해임 배경에 대해선 다향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부위원장, 총정치국장 등 민생경제를 중시하는 당ㆍ정파가 리영호 등의 군부파를 제압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한 소식통들은 등의 당정파가 군부를 제압할 수 있었던 데는 북한 최대 현안인 '경제' 문제에 공감하는 군과 주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 중추적 역할을 부위원장이 추진했고, 향후 당정파는 '경제'에 올인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장성택
그와 관련 이 '경제통'인 를 군 총정치국장에 발탁한 것은 상징적인 예다. 는 1980년대 노동당의 핵심 외곽조직인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에서 과 인연을 맺은 이래 부침을 하면서 동지적 관계를 이어왔다. 군 경력이 전무한 그가 2010년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대장 계급장을 단데 이어 지난 4월 당 대표자회에서 차수로 승진하면서 최고 요직인 군 총정치국장에 파격적으로 오른 것은 의 힘이 작용한 덕이다.

가 총정치국장을 맡게 된 것은 리영호로 대표되는 군부의 힘을 빼기 위한 의 심모원려적 조치였지만 가 김일성대 경제학과를 나온 '경제통'이란 점이 감안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향후 이 그려가는 북한 경제의 밑그림에 가 큰 힘을 보탤 것이라는 전망이 따른다.

앞서 거론된 현영철 신임 총참모장도 주목할 인물이다. 단둥을 중심으로 10년 이상 북한과 무역을 하면서 권력층과도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소식통은 "현영철이 총참모장에 오른 것은 철저하게 의 작품으로 앞으로 군이 경제 역군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영철은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 북한과 중국의 국경수비를 담당하는 8군단장 출신으로 예전부터 '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영철이 2002년 2월에 중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2010년 9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비서, 현 총정치국장 등과 함께 대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데는 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이 현영철을 중용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군인이면서 '경제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식통은 현영철이 8군단장을 하면서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 간 무역 및 국경지대 거래까지 총괄하는 등 '경제'에 전문성을 갖췄다고 전했다.

최룡해
북한이 '경제'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눈여겨 볼 또 다른 인물은 전 내각 총리이자 현 경공업부장이다. 부장은 1990년대 당 경제정책검열부와 경공업부에서 김경희를 보좌한 바 있고 2002년 경제시찰단으로 과 함께 남한을 다녀가기도 했다. 2003년 내각총리에 올라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주도했지만 군부와 당내 보수세력의 반발로 2007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그가 2010년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된 뒤 다시 2년 만에 부장에 오른 것은 -김경희의 합작품으로 김정은 체제의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 부장이 실물경제에 밝은 만큼 7ㆍ1 조치의 부활 등 당 중심의 민생경제 살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해왔다.

특히 박 부장은 총리 시절인 2004년 7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산하의 조선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을 대신해 '고려민족경제위원회' 를 전면에 내세우고 산하 기관인 '임가공복무총국'이 실질적인 대남경협을 담당케 한 적이 있다. 2006년 이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당에 복귀한 데는 남북경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측면이 있어 당시 장 행정부장과 박 총리 간에는 남북경협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현재 부위원장이 당ㆍ정의 키맨으로 자리잡고 부장이 북한의 경제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만큼 경색된 남북경협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 경제와 관련해 김경희 당 비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당ㆍ정 및 북한 경제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갖고 있다. 북한 주민 및 군과 밀접한 경공업 분야에서 김경희가 당 차원의 큰 그림(기획)을 그리면 경공업부장은 세부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한다는 게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리영호 실각을 전후한 북한은 김정은을 정점으로 -김경희- 트로이카가 당정의 중심에 서고, 군의 현영철 총참모장, 경제 분야에 부장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경제'에 방점을 둔 북한이 어떻게 진화하고 경색된 남북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냐 하는 것 등, 북한의 총체적 변화가 김정은 외 이들 5인방의 판단과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현영철 AP=연합뉴스

박봉주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