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같은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건 스스로에게도 지루한 일이다. 이윤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배우 이범수의 아내로 본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갖는 궁금증도 대개 "남편이 연예인이면 어때요" "남편이 나오는 드라마를 꼭 챙겨보나요?" 이런 식이었다.

최근 스포츠한국과 만난 그는 영락없는 '내조의 여왕'이자 '딸바보'였다. 한편으론 색다른 매력과 다방면에 재능을 지닌 커리어우먼이기도 했다. 30대를 바라보는 이윤진. 앞으로의 그를 기대하게 만드는 다양한 수식어를 붙여봤다.

# 방송인

이윤진은 최근 SBS '놀라운대회 스타킹' 촬영을 마쳤다. 3개월에 걸친 프로젝트로 '기적의 목청킹(King)'에 이은 '영어킹(King)'의 멘토로 나섰다. 그가 생경할 법한 인터뷰에 나선 것도 '영어킹' 때문이었다.

"100일의 촬영이 끝나니까 시원섭섭하더라고요. 제 마음이 허해진걸 눈치챘는지 남편이 자기 경험을 들면서 인터뷰가 감정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해줬죠. 나는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남편의 용기 덕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윤진은 '영어킹'에서 네 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영어킹'은 요즘 20대 청년들에게 혈안인 토익 점수 높이기와 거리가 있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어를 맞춤으로 가르쳐주자는 목적을 안고 있다.

"마술사도 있었고 여자 중학생 친구도 있었어요. 국제 마술쇼에 출전하게 됐는데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국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싶은 케이스였어요. '영어킹'은 한 명이었지만, 그 결과를 떠나 모든 친구들이 저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또 다른 뭔가를 얻었다는 사실에 뿌듯해지더라고요."

# 영어선생님

지금의 이윤진을 있게 한 결정적 계기는 '스타의 영어선생님'이란 프로필 때문이었다. 가수 비가 해외 진출을 앞두고 그에게 영어를 배웠다. 남편 이범수도 사제지간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외국에서 10년 살다가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한국에 왔어요. 방윤주 아나운서처럼 되자는 꿈을 안고 춘천MBC에 입사하게 됐죠. 그러다 한 작가 분이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단기 영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는데 면접 한번 보라는 거에요. 당시에 박진영과 전화로 영어인터뷰를 했는데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어요.(웃음)"

스타의 영어강사라는 남 부러운(?) 일을 해냈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다. '토익계의 마녀' '독설강사' 등으로 유명한 유수연 영어강사의 카리스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유수연 강사처럼 카리스마 있는 교육법은 못 깨우칠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 CEO

그는 최근 가방 브랜드 비엘타(Vielta)를 국내에 론칭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의외다"는 반응이었다. 남편의 유명세에 힘입어 사업까지 확장했다는 일부 편견 어린 시선도 나왔다. 하지만 이윤진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엄마가 광고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고 계세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려서부터 나에게 친숙한 존재였죠. 비엘타는 이미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엄마가 취미 겸 쇼룸으로 운영해오기도 했고요. 제가 엄마를 도와 비엘타의 또 다른 얼굴이 될 거란 생각은 예전부터 했기 때문에 주변의 반응이 오히려 신기했죠.(웃음)"

아나운서, 사업가, 영어강사, 방송인, 엄마, 아내. 20대의 절반을 각양각색의 타이틀로 채운 이윤진은 프로필만 봐도 '욕심 많은 여성'이란 느낌이 강하다. 꿈을 이뤘고 포부를 높였다. 일과 사랑 모두 챙겼다.

"사실 부모님은 늘 편하게 살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제가 그렇질 못한 가봐요. 무엇이든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주의거든요. 신중하게 작품 고르는 남편이랑 완전 반대 성향이죠. 늘 도전할 때마다 후회를 해요. '괜히 한다고 했다' '다음엔 쉬엄쉬엄 해야지',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전 늘 바빠서 허덕이고 있더라고요.(웃음)"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아친다는데 이윤진에게는 일이 한꺼번에 몰리곤 했다. 책을 써도 두 권을 동시에 집필한 적도 있고, 크고 작은 국제회의에서 통번역을 맡은 일도 겹치기 다반사였다. "뭔가 하나를 끝내고 나면 훈장이 붙는 것 같다"며 "그 보람에 중독돼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며 웃었다.

# 아내·엄마

그가 더욱 대단한 건 모든 일에 욕심을 부리면서 가정에도 충실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매일 자기 전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는 이윤진. 바쁜 와중에도 '야식거리'로 닭가슴살을 굽는 일을 빼놓은 적이 없다. "배우들의 고충, 연예계의 생활, 아무것도 모르는 저한테 많은 고민을 털어놓는 남편이 그저 고맙다"는 마음 때문이다.

육아에 대한 걱정거리도 그를 다시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사업가로의 성장, 영어전문 방송인으로서의 포부에 감탄하다가 "영어 유치원이 좋다는데 등록비가 비싸서 못 보낼 것 같다"는 푸념에 헛웃음을 짓게 했다.

"(이)소을이가 클수록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요. 지금은 어려서 모르지만 아빠가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혜택을 얻는 게 많거든요. 팬들이 인형이며 옷이며 선물을 보내주는데 이 모든 행복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면 어쩌나, 그런 고민이 커지더라고요. 엄마 아빠 없이도 '이소을' 이름 석자로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강민정기자 el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