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책이라곤 동의보감(東醫寶鑑)뿐이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북경 유리창(琉璃廠)에 있는 서점에서 동의보감을 발견했다. 당시 조선 사신은 세계적인 교역 중심지 북경을 방문할 때마다 세계 최고급 지식을 모은 유리창에 방문하곤 했다. 담헌 홍대용은 연행록 연기(燕記)에 "청나라 의원들이 동의보감을 몹시 진귀하게 여겼다"고 기록했다.

동의보감은 1610년 8월 6일 완성돼 광해군 5년(1613년)에 간행된 의학 서적이다. 조선 선조는 1596년 어의 허준(1546∼1615년)을 불러 "요즈음 중국과 우리나라 의학서를 살펴보니 모두 조잡한 것을 모아놔 처방으로 쓰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여러 의서 처방을 모아 책 한 권으로 편찬하라"고 지시했다.

허준은 유의(儒醫) 정작, 태의(太醫)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동의보감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정유재란(1597~1598년)을 거치고 나서부터 허준은 혼자 동의보감 편찬에 나섰고 1610년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일본에서 '신선의 경전'으로 불렸던 동의보감은 내경편(4권), 외형편(4권), 잡병편(11권), 탕액편(3권), 침구편(1권)과 목록(2권)으로 구성됐다.

한민족 전통 의학과 중국 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은 동양에서 첫 손에 꼽히는 의학서다. 허준은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 의학을 참고했지만 독자적인 체계에 따라 정리했고 조선 풍토와 실정에 맞는 처방과 민간 요법까지 제시했다. 또 조선에서 생산된 약재를 한글로 표기해 의료 대중화에 앞장섰다는 특징도 있다. 보물 1,805호인 동의보감은 2009년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동의보감은 다른 의학서와 달리 도교 사상에 따른 체계에 맞춰 제작됐다. 치료보다 예방(양생)을 앞세웠다는 사실은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유교식 체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보다 조선에서 홀대를 받기도 했다. 동의보감 서문에 적힌 편찬 기준은 ▲수양(修養)을 우선한 다음 약물로 치료하라 ▲처방이 너무 많으니 요점을 추려라 ▲조선산 약 이름을 명기해 백성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라 등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