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합동연설회 나선 새누리 대선주자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경선 룰 변경을 거부하면서 불거진 사당화(私黨化) 논란으로 인해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등이 불참해 맥 빠진 경선을 치른다는 지적을 받다가 최근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저서 출간과 TV 예능프로 출연 등으로 인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여기에 5ㆍ16쿠데타에 대한 미화 발언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이미지에 타격을 받더니 급기야 2일에는 4ㆍ11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한 박 전 위원장에게 모든 화살이 쏠리는 형국이다.

8월20일 당 대선 후보 선출을 앞두고 있는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대형 악재가 안팎에서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악조건을 맞고 있는 셈이다. 4ㆍ11 총선 결과가 대선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고비였다면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제기된 지금의 악재를 맞이한 상황이 두 번째 고비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 바로 발 밑에서 터진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은 4ㆍ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인 현기환 전 의원이 비례대표 23번으로 당선된 으로부터 공천헌금 명목으로 3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요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에 대한 제보를 접수해 자체 정황 조사를 거친 뒤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 측은 부산지검에 사건을 배당했다.

지난 2일 대전^충남북 대선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이학재 비서실장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
'친박 핵심인사' 충격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현 의원은 4ㆍ11 총선을 앞두고 부산 중ㆍ동구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뒤 낙천하자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3월 중순 당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던 현 전 의원에게 3억원을, 3월말 홍준표 전 대표에게 2,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 전 의원은 친박계 핵심 인사로 현재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현 의원의 예비후보 시절 수행비서였던 정모씨가 선관위 측에 제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 의원이 예비후보 시절 정씨에게 4급 보좌관 채용을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안다"며 "앞서 정씨는 현 의원의 다른 혐의에 대해 선관위에 제보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자 이번에 공천헌금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의원에 대한 음해 차원의 제보인 만큼 정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조만간 현 의원과 현 전 의원, 홍 전 대표 등을 소환해 사실 관계 등을 추궁할 방침이지만 이들 인사는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어떻게 선관위가 한 제보자의 말만 믿고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있다.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지만 문제는 선관위가 이들 사안에 대해 상당 부분 내사를 거친 뒤 검찰에 넘겼다는 점에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보자의 진술만 믿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지 않는다"며 "선관위가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 등을 조사한 뒤 검찰에 넘긴다"고 말했다.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도 100쪽이 넘을 정도여서 어느 정도 정황 증거를 확보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기환 전의원
실제 검찰 수사 결과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들은 정치자금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 된다. 뿐만 아니라 대선을 4개월 여 앞둔 상황 임을 감안하면 박 전 위원장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특히 당시 새누리당 공천은 '밀실 공천'이란 지적을 받을 정도로 박 전 위원장에 의해 임명된 공천심사위원회가 거의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박 전 위원장이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야당·비박 주자 집중 포화

민주통합당은 총선 공천헌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조선시대 매관매직에 버금가는 조직적 부패 사건이자 현대판 국회의원 매관매직 사건"이라며 "박 전 비대위원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박용진 대변인은 "새누리당의 공천 장사는 박 전 위원장의 최측근에 의해 이뤄졌고 공천위는 사실상 박 전 위원장의 주도로 구성됐다"며 "박 전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당시 이 일을 몰랐을 리 없다"고 박 전 위원장을 정조준했다.

현영희 의원
박 대변인은 이어 "검찰은 박 전 위원장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수사해야 한다"며 "박 전 위원장도 당내 경선 후보 사퇴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들이 유죄로 판명날 경우 박 전 위원장이 아예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공격적 의도가 깔려 있다.

김문수 김태호 임태희 안상수 후보 등 당내 비박 주자들도 모처럼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할 호기를 맞았다. 이번 일을 통해 대립각을 분명히 세우면서 당내 반(反) 박근혜 진영의 표를 흡수하겠단 심산이다.

먼저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번 일을 두고 '박근혜 책임론'을 거론하며 맹공격했다. 김 지사는 "이번 공천 비리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책임져야 하고 당이 먼저 수사해 깨끗하게 밝히고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당이 사당화됐다는 얘기"라고 꼬집었고, 김태호 의원은 "박근혜 대세론이 허망한 모래성인지 알아야 한다"고 공격했다. 다만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자제했다.

이들 주자 4명은 이와 함께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선 후보가 참여하는 긴급 연석회의 개최를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전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당연히 검찰에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될 문제"라며 "(당사자들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어긋나니까 검찰에서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평소와 달리 어두운 편이었다. 그도 역시 이번 사건의 파장을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개혁공천' 명분 물거품

검찰 수사결과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개혁공천'을 내세웠던 박 전 위원장의 국민적 이미지는 상당한 훼손이 불가피하다. 만일 현 전 의원에게 그치지 않고 다른 공천심사위원에게도 불똥이 튀어 같은 혐의를 받는 인사가 추가된다면 그때는 결말을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성이 커진다. 원칙과 신뢰란 이미지를 앞세우는 박 전 위원장에겐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20일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는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올림픽으로 잠시 일정을 유보했던 민주당 후보 경선이 본격 시작되면서 이들은 쉬지 않고 박 전 위원장에게 공격의 화살을 쏘아댈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장외의 안철수 원장도 이 즈음이면 정치 참여 선언을 하고 링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번 공천헌금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 박 전 대표가 치명상을 입는다면 안 원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치 참여 선언과 함께 박 전 표의 아픈 곳을 집중 공략할 것이 유력하다.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도 물러날 곳이 없다. 일단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 결과를 지켜보되, 신속한 선 긋기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면서 안 원장이나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주자들을 향해서는 더욱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이는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강(强) 대 강(强)' 전략이다.

박 전 위원장 캠프에서는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분식회계 구명을 위해 움직였던 안 원장의 이중적 행태를 집중 비난했다. 또 국민은행 사외이사 부분과 재벌2ㆍ3세 및 벤처기업인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에 참여했던 안 원장의 행태에 대해서도 공격 포인트를 잡고 있다.

또 민주당 문재인 고문과 손학규 고문 등 후보가 유력시 되는 주자에 대해서도 서서히 공격의 포문을 열기 위한 워밍업을 하고 있다. 야권 전체를 상대로 한 전방위 공격이다.

그러면서 박 전 위원장의 개인적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 둘 해명성 발언을 통해 대국민 설득전에 나설 태세다.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던 5ㆍ16 쿠데타에 대해서는 국민적 분위기를 약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변화된 답안지를 새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어 유신정권의 공과라던가 정수장학회 등 개인적으로 집중타를 맞을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것은 빠르게 인정하되, 허위사실 유포 등 네거티브 공세는 법적 대응 등을 통해 강경하게 맞서는 식의 강공작전을 준비 중이다.

등을 보이는 순간 치명상을 입는 다는 것은 누구보다 박 전 위원장 캠프는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5ㆍ16 쿠데타를 집중적으로 따지거나 유신정권의 그늘 만을 부각하는 진영은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과거지향적 세력으로 각인시키고, 독신으로 살아온 박 전 위원장의 개인적 부분을 물고 늘어지면 국가 경영을 논하지 못하는 대권 부적격자로 치부하는 게 방법이다.

여기서 박 전 위원장은 상대 후보 공격은 캠프 쪽 역할로 국한시키면서 자신은 보다 보다 중도ㆍ진보적인 정책 공약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관점의 미래지도자 이미지 부각을 이번 고비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로 보고 이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다.

박 후보와 야권 전체의 '1대 다(多)' 전쟁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에 의해 예정보다 일찍 개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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