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족들의 아지트인 재스퍼
그동안 캐나다 로키는 밴프, 레이크 루이스 호수 등이 '매혹'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광활한 로키의 아름다움은 몇몇 관광명소의 풍광에 머물지 않는다. 로키에 기댄 고요한 마을 재스퍼에서는 야생 속에서 밤 하늘의 별을 보고, 골목길에서 엘크와 마주치는 이채로운 체험들이 현실이 된다.

붉은 단풍을 트레이드 마크로 장식한 열차가 재스퍼에 다가서면 풍경부터 달라진다. 계절이 여름을 넘어서도 로키의 봉우리들은 완연한 눈의 자취를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밴쿠버에서 출발한 비아레일 열차는 로키의 북쪽 산줄기를 따라 알버타주 재스퍼까지 18시간을 달린다. 밴쿠버에서 바다를 등진 기차가 로키의 산맥을 거슬러 오르는 것 자체가 생경스러운 일이다.

열차 침대칸에 누워 슬며시 눈을 뜨면 차창은 캔버스가 되고 자연이 만들어낸 풍광들은 누워서 갤러리를 감상하듯 예상 밖 그림들로 바쁘게 채워진다. 빠른 슬라이드로 전개되던 전나무 숲에 지칠 때쯤 눈을 감았다 뜨면 만년설에 뒤덮힌 봉우리가 아득하게 차창에 새겨진다.

세계유산 로키의 최북단 국립공원

재스퍼는 세계 자연유산인 로키가 품은 최북단 국립공원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로키의 국립공원들에 비하면 재스퍼 도심의 분위기는 아련하고 몽환적이다. 재스퍼의 건물들은 대부분 몸이 낮다.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의 내로라하는 호텔들이 높게 치솟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3층이면 고층이고 이 일대에서 최고급으로 여겨지는 숙소 역시 롯지(오두막) 형태로 운영된다. 몸을 낮게 드리운 건물들 너머로는 강성한 로키의 풍광이 더욱 도드라진다. 해질 무렵이면 바에서 흘러나오는 담소나 불빛들은 봉우리의 눈빛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소담스럽다. 빙하수로 만들었다는 맥주 한잔에도 로키의 진한 흙 향기는 실려 있다.

재스퍼를 오가는 비아레일 열차
이런 재스퍼에서는 캠핑을 하며 별을 본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다크 스카이' 체험은 고요하고 외딴 재스퍼의 로키를 음미하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피라미드, 페트리샤, 보베르, 아네트 등 재스퍼 인근에는 호수들이 참 많다. '옥'이라는 뜻을 지닌 재스퍼에서 호수들은 보석같은 존재다. 피라미드 호숫가 주변을 거닐며 성운이 그려내는 흔적과 별 아래 눈덮인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은 먹먹해진다.

재스퍼의 골목에 나서면 엘크 무리들이 천연덕스럽게 서성거리고, 오두막 정문 앞에서 가녀린 몸매의 사슴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현지 가이드는 "밤 거리를 다닐 때 주의해야 된다"며 단단히 당부한다. 몸조심을 하라는 것인지, 엘크들이 놀라지 않게 하라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투박한 뿔의 엘크들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선한 눈망울을 지니고 있다.

야생동물과의 느닷없는 조우

재스퍼에서는 인근 휘슬러 산을 트램웨이로 오르거나 강과 호수가 만들어낸 말린 협곡 하이킹에 나설 수도 있다. 50m 깊이의 골짜기가 이어진 말린 협곡은 폭포와 설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탐스럽다. 재스퍼 파크 로지에서 보베르 호수를 바라보며 '에프터눈 티' 한잔을 즐기는 것 역시 오후를 한층 품위 있게 만든다. 신기한 것은 어느 호수, 협곡, 오두막에 들어서든 코요테, 사슴, 엘크 등 로키의 야생동물들과 조용히 조우한다는 것이다. 재스퍼 로키의 묘미는 바로 이런 느닷없음과 마주치는데 있다.

재스퍼는 북미 최대의 드라이브 코스인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종착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재스퍼에서 남쪽 로키로 향하는 방법은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93번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알버타주의 주도인 애드먼튼을 경유하는 것이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로키의 우람한 절경이 동행이 되고, 애드먼튼을 경유하는 길은 다양한 페스티벌과 북미최대의 쇼핑타운이 기다린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캐나다 남부 로키의 대명사인 밴프로 향하는 길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온천과 설퍼산 전망대로 유명한 밴프나 빅토리아 빙하 아래 레이크 루이스 호수를 방문하는 것은 로키 여행의 완벽한 덤이다.

상공에서 바라본 로키
로키의 비경은 이렇듯 어느 곳에서든 쉼표가 없다. 북적거리는 관광지에서 시야를 돌리고, 외딴 장소를 찾아도 감동은 산봉우리의 행렬처럼 아득하게 이어진다.

여행메모

가는길=재스퍼는 알버타의 주도인 애드먼튼에서 이동하는게 가깝다. 에어캐나다 등이 밴쿠버를 경유해 애드먼튼까지 운항중이다. 밴쿠버에서 비아레일을 이용해 재스퍼까지 닿을 수도 있다. 도시간은 투어버스로 이동한뒤 현지에서는 렌트카를 빌리는게 편리하다.

숙소, 레스토랑=보베르 호숫가에 위치한 페어먼트 재스퍼 파크 로지는 로키의 3대 숙소중 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재스퍼 시내에서는 '샤또 재스퍼'나 '베스트웨스턴 인& 스위트' 등의 숙소가 묵을만하다. 알버타, 로키 일대에서는 스테이크가 주 메뉴다. 'AAA' 등급의 질좋은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샤토 재스퍼' 호텔의 식당은 저렴한 가격 대비 스테이크, 아침 식사 등이 맛있는 편이다. 재스퍼 도심의 '브루잉 컴퍼니'에서는 빙하수로 만든 다양한 맥주의 시음이 가능하다.

기타정보=별자리 보기 등 재스퍼에서의 다양한 체험은 재스퍼 국립공원 홈페이지(www.pc.gc.ca/jasper)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알버타주 관광청(www.travelalberta.com)이나 캐나다 관광청(www.canada.travel)을 통해서도 자세한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늦여름에도 해가지면 날씨는 제법 쌀쌀한 편이다.

로키 최북단의 국립공원인 재스퍼

골목을 서성이는 야생동물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