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文鮮明ㆍ92) 총재가 3일 별세했다. 통일교와 그 행적에 대한 평가는 갈리고 있지만, 문 총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에 거대한 종교적 움직임을 일으킨 지도자라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문 총재는 지난 2009년 발행한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라는 회고록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이름 석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이렇듯 문 총재는 자신이 오로지 '평화'를 지향해 살아왔지만 세상은 극단적인 평가로 재단해왔다며 굴곡 많은 삶을 술회했다.

1920년 평북 정주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문 총재는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친 뒤 서울 경성상공실무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고등공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1991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문 총재가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고 있다.
귀국 후 토목회사 전기기사로 일하며 교회에 다니던 문 총재는 해방 이후 남쪽과 북쪽에서 6차례나 구속돼 수감 생활을 했다. '사회 문란'이 문 총재에게 적용됐던 혐의다.

문 총재는 1954년 5월 서울 성북구 북학동 판잣집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과 함께 통일교를 열었고 창립 40년 만인 1994년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

2년 전부터 통일교로 명칭이 바뀐 이 종교는 오늘날 전세계 194개국에 300만 신도를 거느린 거대 집단으로 발돋움했다.

일찌감치 세계로 눈 돌린 문선명

문 총재는 해외 선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57년에는 일본, 1972년에는 미국에 진출했다. 1976년에는 워싱턴 DC 모뉴먼트 광장에서 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집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고, 세계적인 권위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듬해 문 총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문 총재 시신이 안치된 통일교박물관(천정궁)이 보이고 있다.
통일교는 합동 결혼식으로도 유명하다. 통일교는 1961년 '순결한 가정'을 기치로 36쌍의 합동 결혼식을 시작으로 1992년 8월에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3만쌍의 국제 합동 결혼식을 열어 전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소월(素月) 김정식과 동향인 문 총재는 북한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1991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그 결과 문 총재는 북한에 '교회와 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설립을 이끌어내는 등 대북 사업의 물꼬도 텄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 문 총재의 7남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과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워싱턴타임스' 주동문 회장 등 3명이 조문을 위해 북한에 갔다. 이에 앞서 김정일 위원장은 문 총재가 구순(九旬)을 앞둔 2009년에 산삼을 보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교육 문화 사업에도 큰 관심

문 총재는 교육 문화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선문대, 선화예술중ㆍ고 등 학교도 8개나 설립했다. 또 리틀엔젤스, 유니버설 발레단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재단 등 문화재단과 세계일보, 미국 UPI, 워싱턴타임스 등 언론기관, 일화, 용평리조트 등 기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50여개의 단체를 세웠다.

상복 입은 문형진씨
문 총재는 종교 단체로는 이례적으로 기업 활동까지 병행하는 등 영역을 크게 넓혔다. 60년 가까이 통일교와 통일그룹을 이끌어온 문 총재의 재산은 수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이단'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국내 기독교계는 문 총재가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을 메시아라고 암시하는 점 등을 들어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사적으로 문 총재의 생활은 엄격하고 절제됐었다. 그는 평생 하루 3시간 정도의 토막잠만 잔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스스로 개발한 '수수체조'라는 기체조를 통해 꾸준히 건강을 유지해왔다. 문 총재는 매일 아침 '수수체조'를 20분씩 했다고 한다.

2008년 7월 문 총재와 부인 한학자씨, 손자, 손녀 등 일가족 14명이 탄 헬기가 경기 가평 장락산 중턱에 불시착한 뒤 폭발하는 큰 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문 총재는 40세이던 1960년에 23세 연하의 한씨와 재혼했고 슬하에 7남 6녀를 두는 다복을 누렸다. 그러나 1984년에는 차남(흥진)을 교통사고로 잃은 데 이어 1999년에는 6남(영진), 2008년에는 장남(효진)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참척(慘慽)도 겪었다

3남 문현진씨
장례는 13일장으로

문 총재의 장례는 13일장(葬)으로 치러진다.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天宙聖和式)'이라는 명칭의 장례식(성화위원장 문형진)은 오는 15일 오전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진행된다. 장례 기간 문 총재의 시신은 유리관에 안치돼 있다.

성화(聖和)는 인간이 부끄럼 없이 살다가 성스럽게 영계에 간다는 뜻으로 죽음에 대한 통일교식 해석이다. 통일교는 "문 총재가 생전에 수련, 금식 등 중요한 행사를 13일 동안 많이 했다는 점과 해외 신자들이 조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3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청심평화월드센터는 지하 3층, 지상 4층, 연건평 8만2,800㎡의 규모로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8배나 되는 이곳에서는 지난 3월 24일 문 총재 주례로 2,500쌍의 합동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단지에는 천주청평수련원, 청심국제병원,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청심국제중고교 등이 있다.

●문선명 총재는

4남 문국진씨
출생: 1920년 1월 6일 평북 정주(8남매 중 차남)

사망: 2012년 9월 3일 경기 가평

가족관계: 부인 한학자씨와 7남 6녀

학교: 경성상공실무학교-와세다 고등공학교 전기과 수학

발자취: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

1960년 한학자씨와 결혼

1976년 워싱턴에서 30만명 참가한 행사 개최

1982년 미국에서 '워싱턴타임스' 창간

1989년 세계일보, 전교학신문 창간

1990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면담

1991년 김일성 북한 주석과 면담, 대북 사업 개시

1994년 교단 이름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

2001년 가평에 통일교 단지 조성 시작

2008년 막내 아들 형진을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

2012년 폐렴 합병증으로 별세

7남 형진씨가 교단 이끌어갈듯
● 후계구도 어떻게?

문선명 총재는 세상을 떠났지만 앞으로도 교단과 기업은 큰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재의 4남인 국진(42)씨와 7남 형진(33)씨가 각각 통일그룹(기업)과 통일교(종교)를 나눠 맡고 있는 만큼 사실상 후계구도는 완료된 셈이다.

문 총재는 구순을 맞은 2010년 6월 통일그룹을 문국진 통일교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에게, 교단은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에게 넘겨줬다. 통일교 총재직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인 한학자씨가 물려받을 예정이다.

아버지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문국진 회장은 한국 일본 등에서 이미 조직을 장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이끌고 있는 통일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13개로 음료 전문업체인 일화를 필두로 프로축구 성남 일화, 강원 용평리조프, 충남 보령의 비체팰리스, 일성해양산업, 선문학원, 리틀엔젤스 예술단, 유니버설문화재단, 신원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문 총재의 자녀 중 유일하게 전문 종교인의 길을 걷고 있는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 동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다.

한때 불교에도 심취했던 까닭에 불교계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문 회장은 2007년 12월 서울 청파동 통일교 본부교회 당회당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문 총재가 생전에 굵직한 '교통정리'는 마쳐놓은 만큼, 통일교와 통일그룹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교단과 그룹 내에 문 총재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문 총재의 장남과 차남 사후(死後)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하던 3남 문현진(43) 통일교세계재단(UCI) 이사장은 한때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동생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비운을 겪었다.

최근 잇달았던 가족 간 소송도 불씨라면 불씨다. 2010년 10월 서울 여의도 통일주차장 대지(4만6,465㎡)에 지상 69층과 53층 건물을 짓는 파크원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문현진 이사장과 문국진 이사장 간에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됐다.

또 문현진 이사장은 어머니 한씨가 대표로 있는 (재)세계통일가정연합선교원을 상대로 수백억원대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가 일부 패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북한 "심심한 애도"조의 조문단 파견은 안할듯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5일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별세에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과 AFP통신 등이 일제히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1위원장은 "세계평화연합 총재 문선명 선생이 병환으로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여 한학자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이어 "문선명 선생은 서거했지만,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울인 선생의 노력은 길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평북 출신인 문 총재는 1991년 12월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이후 나진ㆍ선봉지구 투자, 금강산관광지구 합작 개발, 평화자동차총회사 설립 등 다양한 대북사업을 진행해왔다.

김 1위원장의 조전은 문 총재 별세 당일인 3일 중국을 통해 방북했다가 이날 귀국한 통일교 계열 평화자동차의 박상권 사장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측은 조문단 파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박 사장에 따르면 북측은 현재의 단절된 남북관계를 언급하면서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