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발끈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60여 국은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올림픽에 불참했다. 반쪽 대회를 치른 소련은 동유럽 국가와 함께 1984년 LA에서 올림픽을 외면했다. 으르렁거리던 미국과 소련은 1988년 9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픽에 출전해 냉전이 끝났음을 알렸다. 소련은 금메달 55개를 휩쓸며 종합 1위에 올랐고, 동독(금 37)은 미국(금 36)을 제치고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동독과 소련 선수단은 서울올림픽에서 웃었지만 조국에 돌아가선 웃지 못했다. 동서 화합의 장이었던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동독과 소련은 각각 1990년과 1991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올림픽을 통해 국력을 과시했던 동독과 소련은 각 종목 국가대표에게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자 국가 지원은 눈에 띄게 줄었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은 금메달 12개를 수확하며 종합 4위에 올랐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민은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메달을 목에 걸 때마다 환호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자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고 경제성장률과 무역수지가 나빠졌다. 올림픽을 준비하고자 투자가 많았던 만큼 올림픽 이후 투자가 줄었기에 경제 성장이 더디고 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구호처럼 서울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이름을 날렸다. 외국인 가운데 한국을 몰라도 서울을 아는 이가 꽤 많을 정도였다.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공항을 넓히고 도로와 지하철 건설을 서둘렀다. 반정부 시위를 걱정해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도로에 시민이 모이지 못하게 막는 촌극도 눈에 띄었다. 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세계는 한국에 대한 인상으로 전쟁과 폐허 대신 한강의 기적을 떠올렸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