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한 15세 소년은 춤을 췄다. 그룹 유피의 '뿌요뿌요'에 열광하고 H.O.T.의 멤버가 되길 꿈꾼 적도 있던 그는 학교 공연 등의 무대에 올랐다.

미디 작업으로 터보의 '사이버 러버' '트위스트 킹' 등 당시 히트곡의 빈 박자(가사가 없는 멜로디 부분)만 떼다 만든 리믹스 버전은 그의 음악인생을 연 첫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15년 후 그는 비스트의 '픽션(Fiction)', 티아라의 '롤리폴리(Roly Poly)', 포미닛의 '핫이슈(Hot Issue)'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세계적으로 열풍인 K-POP을 만드는 중심에 선 그는 작곡가이자 신인 걸그룹 이엑스아이디(EXID)를 기획한 AB엔터테인먼트 대표 신사동호랭이다.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도입한 레인보우브릿지 에이전시에 힘을 보태고 있는 그는 베트남 태국 등과 MOU체결을 통해 국내에서 양성하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해외 아티스트도 발굴한다. K-POP이 해외시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궁극적인 일에 앞장선 셈이다. K-POP의 정의나 실체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K-POP의 경쟁력이 음악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K-POP이 관심을 받는 데는 시대의 트렌드, 가꿔놓은 비쥬얼, 프랑스 패션쇼 런웨이에나 올라올 법한 의상,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모든 게 합쳐진 덕분이죠. 유튜브란 채널도 중요한 역할을 했죠. 매킨토시를 기반으로 한 노트북을 쓰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음악을 들을 순 없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남는 건 음악 그 자체다. K-POP 열풍의 본거지인 일본에서 거리를 걷다 만나는 건 노래지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들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좋은 노래'라는 경쟁력이 K-POP 열풍을 만든 건 아니라는 신사동호랭이의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픽션'의 예를 들었다.

"처음부터 '픽션'을 노래로만 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니면 6명의 멤버들이 가만히 서서 '픽션'을 부른다고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매력이 없겠어요. 멋진 슈트,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 표정, 어두침침한 무대 분위기, 모든 게 어우러진 결과가 '픽션'을 히트시켰고 나아가 지금의 K-POP 열풍을 완성한 거죠."

신사동호랭이는 K-POP을 '인기'라고 표현할 때마다 '관심'으로 정정하곤 했다. 작곡가이자 기획자의 입장에서 K-POP의 인기를 인정하면서도 어느 정도 부풀려진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K-POP이 뜬 건 확실해요. 해외에서 길을 걷다 보면 아이돌그룹의 노래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요즘 K-POP이 관심 받고 있는 현상을 홍보하는 예시들을 보면 왜곡도 있어요. 만약 A그룹이 도쿄돔에서 3일을 공연했다면 총 15만명이 공연을 봤다고 계산하지만 실제로는 본 사람들이 또 보는 식일 테죠. 5만 명에 가깝다고 봐야 할 거예요."

연애를 할 때도 냉정하다는 그는 K-POP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관대하지 않았다. K-POP이 해외진출대비 성공사례가 적은 현실을 꼬집으며 모든 걸 갖춘 콘텐츠만이 성공을 거둔다는 점을 역설했다.

"어느 순간 아이돌그룹의 기준이 세계무대로 맞춰져 있어요. 내수시장은 신경을 안 쓰죠. 마인드에는 문제가 있지만 돈을 벌 수는 있어요. 금방 어설픈 실력과 거품 같은 인기가 들통나겠지만요. 우리나라에서 탄탄한 시장을 만든 후에 올바른 매니지먼트와 마케팅을 거쳐 해외로 나가야 인정 받아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정신으로 접근해야 K-POP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봐요."

최근 신인 아이돌그룹이 대거 양산되고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늘면서 K-POP이 불균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가요관계자들의 공통된 걱정거리다. 신사동호랭이 역시 이런 맥락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K-POP의 뜨는 코드를 한 가지만 꼽으라면 '교감'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가 일단 중요해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들은 솔직히 다 잘 안 됐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리스닝(listening)'보다 노래방에서 부르길 좋아하잖아요. 응원문구를 만들어 노래하는 걸 즐기고요.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가사도 멜로디가 들어갔다면 이렇게 까지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았을 거예요. 보통 사람들의 말투로 가사를 옮기니 따라 하게 되고 열풍을 만드는 거죠."

내수시장 중에서도 '지방'을 신경 쓴다는 신사동호랭이.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성장기 때문일까? '롤리폴리'를 만들었을 때는 시골 할아버지부터 서울 초등학교 학생까지 모두가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떠올렸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시골 마을을 도는 사물놀이패를 따라 다녔었어요. 아버지께서 장구를 치셨거든요. '아빠가 이렇게 치면 옆에서 '허이!'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에 따라 기합을 넣고 흥을 돋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죠. 그때의 감각이 지금 곡 작업하는데도 녹아있어요."

신사동호랭이는 K-POP이 만들어지는 이러한 과정에 가수 자체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회사에서 가져다 준 노래를, 누군가가 가이드로 녹음해 온 곡을 받은 채 K-POP 열풍의 선두에 설 수는 없다는 것. 그는 K-POP이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를 K-POP의 주체가 'K-아이돌'이냐 'K-아티스트'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가수 싸이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K-POP의 길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를 보면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뮤직비디오를 주도하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작사ㆍ곡에 참여하고요. 지망생도 기획자도 본질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왔어요.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실력을 비롯해 주인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한다는 거죠. K-POP의 길을 더 길게 내다보고자 한다면, 우리가 'K-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정기자 eldol@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