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주간지 주간한국이 창간 48주년을 맞았다.

주간한국 제작진은 1964년 9월 27일 발행된 창간호 표지 제목을 놓고 고민했다. 쏟아지는 단편적인 뉴스를 정리해서 새롭게 기획하고 편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고민일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마땅히 자랑할 게 없었다. 고민 끝에 나온 창간호 제목은 이랬다.

'자랑할 것 없는 나라-세계 제일은 가을 하늘.'

주간한국이 48돌을 맞는 동안 나라 안팎이 많이 바뀌었다. 자랑할 것 없는 나라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고 한국 기업은 조선, 반도체, 휴대전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국민도 이젠 세계 제일로 알았던 가을 하늘을 뒤로한 채 외국에 나가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곤 한다.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김성우 한국일보 전 주필이 부장을 맡았고, 이명원, 조경희(전 정무장관), 홍계표, 송정숙(전 보사부 장관) 등이 주간한국에서 일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제가 <전쟁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을 처음 연재한 곳도 <주간한국>입니다"라면서 "당시에는 사상계와 주간한국을 들고 다녀야 지성인 소리를 들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주간한국은 창간 당시 타블로이드 종합 주간 신문이었다. 창간호를 준비할 당시 목표는 독자 3만명 확보였다. 인기 몰이에 나선 주간한국은 매진을 거듭하더니 1968년엔 40만부 이상 판매됐다.

고(故)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이 윤전실에서 "기계(윤전기)에서 불 난다. 그만 좀 돌려라"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주간한국 기자였던 송정숙 전 보사부 장관은 "주간한국이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고 회상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다양하게 다뤘던 주간한국은 이례적으로 연예계 소식에도 비중을 두었다. 한국 연예기자 1호로 손꼽힌 정홍택은 "영화계, 연극계라는 말을 쓰고 있을 때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다"면서 "일본은 예능계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하고 차별할 필요가 있어서 연예계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연예계라는 단어는 일제 발자취를 지우려던 주간한국의 고민 끝에 생긴 단어다.

강산이 네 번 이상 바뀌는 동안 판형도 바뀌었다. 시사주간지하면 잡지를 떠올리기 마련. 그러나 이 땅에 시사주간지로 처음 등장한 주간한국은 잡지가 아닌 타블로이드판 신문이었다.

32쪽짜리 주간한국 가격은 10원. 1986년부터 주간지 시대를 열면서 5ㆍ7배판으로 판형을 바꿨고, 2005년에는 변형 국배판(275×205㎜)으로, 2008년엔 4?6배판 문화 전문 잡지로 변신했다.

시사주간지 맏형 주간한국은 2008년 창간 44주년을 맞아 21세기 문화시대 리더를 자처하며 문화 매거진을 표방했다. '문화'라는 창을 통해 시대를 새롭게 조망하고 소통의 매개로서 여론을 형성, 사회적 통합을 이루며 '신문화시대'를 열어간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정치의 변혁과 자본주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시사·경제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자 주간한국은 지난해 창간 47주년을 맞아 품위 있는 시사 뉴스와 실용적인 경제 뉴스를 다루는 시사주간지로 변신했다.

48돌을 맞은 올해 주간한국은 심도 깊은 시사 뉴스와 사회의 기반을 이루며 독자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뉴스를 발굴해 매주 독자를 찾아가고 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