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꽃밭은 약 9만㎡에 걸쳐 펼쳐진다.
옥정호(玉井湖)만큼 개성적인 호수도 드물다. 첩첩산중 사이로 사행천(蛇行川)처럼 구불구불 기어가는 자태가 호수라기보다는 폭 넓은 협곡을 보는 것 같다. 운암호 또는 섬진호라고도 일컬어지는 옥정호는 1926년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자그마한 물막이 제방을 쌓아 탄생했다. 그 후 1965년 다목적 섬진강댐을 다시 세우면서 만수면적 26.5㎢의 제법 큰 호수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섬진강변에 옹기종기 자리했던 마을들은 대부분 물에 잠겼지만 수몰되지 않고 섬으로나마 살아남은 땅도 있었다. 붕어섬이라고도 부르는 외안날이 바로 그곳이다. 외안날은 본디 높은 산꼭대기여서 물에 잠기지 않고 호수 위로 붕긋이 고개를 내밀고 남은 까닭에 육지 속 섬이 된 것이다.

외안날의 진면목을 한눈에 살펴보려면 국사봉으로 올라간다. 넓은 호수를 병풍인 양 휘감으며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가 그림 같지만 무엇보다 호수 위에 뜬 작은 섬 외안날이야말로 선경이다. 형용할 수 없는 자태로 멋을 부린 기하학적 모양새가 앙증맞은데다 녹색 들판과 울창한 숲이 섬을 뒤덮어 한결 고혹적이다. 너럭바위에 앉아 저 비경을 굽어보며 한잔 걸치다가 단잠에 빠지면 신선도 부럽지 않으리라.

옥정호는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특히 옥정호의 서쪽 끝자락 추령천변에 있는 구절초 군락지는 수채화처럼 차분하고 담담하게 가을을 노래한다. 우리 땅의 산과 들이 오색영롱한 빛깔로 우리 곁을 찾아올 때 옥정호 구절초 군락지는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자태로 바람결에 하늘거린다.

가보고 싶은 축제 20선에 선정

구절초 테마공원의 장수풍뎅이 모형
구절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땅 속의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번식한다. 구절초(九節草)라는 이름은 5월 단오에는 줄기가 다섯 마디였다가 음력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가 된다 해서 붙었다고 한다. 음력 9월 9일 꽃과 줄기를 함께 잘라 부인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한약재로 이용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구절초는 생리불순, 생리통, 불임증, 해열, 기침, 감기, 고혈압 치료 등에 효능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딸을 출가시킨 친정어머니들은 예로부터 음력 9월이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채집하여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딸이 해산을 하고 친정에 오면 달여 먹였다고 한다. 구절초를 신선이 어머니들에게 준 약초라는 뜻의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구절초가 군락을 이룬 산내면 매죽리 야산에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구절초축제를 여는데 그 사연이 애잔하다. 2004년 행정자치부에서 전국 1,500여개 면의 소득수준을 조사한 결과 산내면이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이에 따라 정읍시와 산내면, 그리고 주민들은 소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으며 축제 개최가 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리하여 2005년 제1회 구절초축제가 열렸지만 겨우 4만 명이 모여드는 데 그쳤다. 이듬해 축제를 치르지 않고 심기일전한 주민들은 2007년 제2회 축제를 열어 10만 명을 모았고 2008년에는 30만 명이 찾아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35만여 명이 찾아온 2009년에는 '대한민국 가보고 싶은 축제 20선'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송림 사이로 펼쳐진 비밀의 정원

구절초 꽃밭의 어머니상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의 총면적은 약 22만㎡으로 이 가운데 7회를 맞이한 올해의 구절초축제는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9일 동안 열린다. 축제가 끝나도 10월 말까지는 구절초 향연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구절초 꽃동산은 주로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펼쳐져 있다. 송림 따라 드리운 산책길은 1㎞ 남짓하며 사진전 행사장 등 테마공원을 둘러친 이벤트 코스까지 합해도 3㎞ 남짓한 거리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걷다가 공원 안에 마련된 원두막이나 벤치에서 다리쉼을 하더라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산책길로 들어서면 구절초의 은은한 향기가 나그네를 감싸 안아 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구절초 향기는 사람만 유혹하는 게 아니다. 벌과 나비들도 뜻밖에 만난 횡재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부산하게 날아다닌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구절초의 향연에 젖어드노라면 흡사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선 것 같은 환상마저 든다. 특히 추령천이 피워 올린 새벽녘 물안개가 송림을 파고들어 구절초 꽃밭 위로 스며들거나, 늦은 오후의 햇살이 숲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을 때면 더더욱 그러하다.

# 찾아가는 길

송림 사이로 구절초가 피었다
태인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칠보-산내 방면 30번 국도를 따르다가 산내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호남선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 정읍으로 온 뒤에 산내 방면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산내면에는 섬진강 상류와 옥정호 일원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이용하여 매운탕과 붕어찜을 내는 집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20년 전통의 산내매운탕(063-538-4067)이 유명하다. 얼큰하고 시원하면서 구수한 매운탕도 인기 있지만 이 집에서 첫손 꼽히는 별미는 붕어찜이다. 제철 붕어를 싱싱할 때 손질한 뒤에 대형 냉동고에서 급랭하여 사시사철 기름지고 살이 단단한 붕어 맛을 즐길 수 있다. 큼직한 월척 붕어를 기름에 한차례 튀겨 잔가시를 제거해주고 육질에 탄력을 주고 난 다음, 가을에 말려놓았던 무시래기에 갖은 양념을 하고 튀긴 붕어를 넣어 30~40분 찐다. 그러고 나서 양념장이 자박자박하도록 냄비에서 조리고 고명을 얹어 손님상에 낸다. 짙은 양념맛과 함께 담백하고 쫄깃한 붕어의 살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국사봉에서 굽어본 붕어섬 외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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