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안철수 '호남쟁투'경쟁적 방문 뜨거운 구애 지지율 오차범위내 접전젊은층은 안… 중장년은 문고강도 '호남 공약' 준비 관건은 박근혜와의 경쟁력결정만 되면 한쪽으로 몰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24일 서울 서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여사를 예방해 포옹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간의 호남 민심 껴안기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 유권자들을 우군(友軍)으로 만들지 못하면 대선 본선 승리는커녕 후보 단일화 경선 시 상대에게 크게 밀릴 것이란 전략적 판단에서다.

이른바 '야권 대주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러브콜이다. 두 후보간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호남지역에서 시작되고 있다. '호남적자론'을 주장하는 문재인과 '호남사위론'을 강조하는 안철수의 호남쟁투다.

호남은 아직 선택을 주저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두 후보는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딱히 어느 후보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두 후보 모두 부산ㆍ경남(PK)지역 출신이다. 호남 입장에서는 두 후보에게 별반 빚을 진 것도, 큰 인연을 가진 것도 없다. 안 후보는 처가가 전남 여수라는 정도의 인연이 있고, 문 후보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보ㆍ개혁적 성향을 계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신 격이란 점 정도다.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해도 상관이 없고, 누구를 내친다 해도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관건은 역시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맞춰진다.

문재인 대선후보가 지난달 28일 광주 우산동 말바우시장을 방문,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에게 사인을 해준 뒤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안 후보는 전반적인 지지율 면에서 문 후보보다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문 후보는 호남을 텃밭으로 삼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라는 강점이 있다. 대체로 젊은층에서는 참신성을 무기로 삼고 있는 안 후보 쪽에, 중ㆍ장년층에서는 민주당이란 조직을 기반으로 한 문 후보에게 점수를 주고 있는 편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둘 간의 치열한 한판 승부에 호남 유권자들은 정확히 중간 지점에 서서 어느 후보의 팔을 들어줄까 고민하고 있다.

文, 安의 턱 밑까지 추격

한국일보가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조사한 결과 안 후보가 41.0%, 문 후보가 40.8%로 두 후보간 격차는 0.2%포인트에 불과했다. 모름 무응답은 9.5%, 둘 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8.7%였다. 이는 불과 20일 전인 지난달 10일 조사에서 5.6%포인트로 안 후보가 앞섰던 것과 비교해보면 문 후보가 안 후보의 턱밑까지 쫓아간 것임을 알 수 있다. 호남 지역에서의 두 후보 지지율은 안 후보가 47.8%, 문 후보가 40.0%로 안 후보가 조금 앞섰다. 그러나 두 후보의 출신지인 부산ㆍ울산ㆍ경남에서는 문 후보(40.0%)가 안 후보(38.5%)를 미세한 차이로 앞섰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 한 뒤 1층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류효진기자
전체적으로 20대에서 40대까지는 안 후보 쪽이 우세했고 50대와 60세 이상에서는 문 후보가 우위를 점했다.

미디어리서치의 조사 결과 추이도 비슷했다. 지난달 21,22일 호남지역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문 후보를 18.1%포인트 차이로 따돌렸지만,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일 조사에서는 둘 간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4.4%포인트로 줄었다.

하지만 2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오히려 문 후보가 42.5%의 지지율로 안 후보(38.7%)를 오차범위 내에서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에서도 문 후보가 44.2%로 41.6%에 그친 안 후보를 역시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조사 시점과 조사 기관에 따라 결과가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무래도 다운계약서 작성 논란과 논문 표절 의혹 등의 검증 공세에 따라 안 후보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문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턱밑까지 맹추격하는 양상이다. 추석연휴를 전후해 안 후보 지지자 중 적잖은 사람들이 문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분위기라면 당장 둘 간의 후보 단일화 경선이 이뤄질 경우 누구도 결과를 장담키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급해진 쪽은 안 후보다. 문 후보가 먼저 호남 구애에 들어서자 뒤질세라 호남을 찾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안철수 대선후보가 3일태풍 피해를 입은 전남 여수 돌산읍 송도 가두리 양식장을 방문, 망가진 어구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움직인 쪽은 문 후보였다. 그는 지난달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데 이어 27일부터 1박2일간 광주ㆍ전남 지역을 돌며 호남민심 잡기에 선수를 쳤다.

문 후보는 여기서 '호남의 아들'을 선언한 뒤 "참여정부가 (열린우리당 분당 등으로) 호남에 상처를 줬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호남 주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려 애썼다.

문 후보는 이어 광주 5ㆍ18 국립묘역을 찾아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5월마다 부산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광주로 참배를 왔다"고 부산과 광주의 민주화 투쟁 경력을 부각했다. 부산의 민주화 운동이 80년 광주의 그날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이 전무한 안 후보를 견제한 것이다.

安, 여수 처가부터 방문

이를 보고만 있을 안 후보가 아니다. 문 후보가 감성적 접근과 함께 당 조직력을 바탕으로 호남 민심을 파고들자 그는 직접 호남지역을 누비면서 지역 유권자들과의 접촉 면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안 후보는 먼저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다분히 호남 유권자들을 의식한 발언이다.

여기서 이 여사는 안 후보에게 야권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안 후보는 이에 별반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안 후보는 이 여사 예방에 이어 3일에는 전국 투어의 첫 방문지로 호남을 택했다. 그 중에서도 처가가 있는 전남 여수부터 찾았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벌써 두번째 방문이다. 연고가 전혀 없는 문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이 지역과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문 후보가 호남에서 1박2일을 보낸 것을 염두에 둔 듯 안 후보는 하루를 더 늘려 2박3일을 머물렀다. 여수 처가에서 순천과 목포를 들러 광주광역시와 전북 전주를 차례로 방문하는 강행군으로 호남의 적자가 자신임을 알리려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광주에서는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이자 항쟁 당시 광주 시민군의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방문해 광주 시민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두 후보를 양손에 올려놓고 내려다 보는 호남 유권자 입장에서는 박근혜 후보에게 누가 경쟁력이 있느냐를 가장 우선 순위에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낙후한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호남 공약을 누가 현실성 있게 내놓느냐 하는 점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정치적 민도(民度)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현 가능성 없는 어설픈 약속으로는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차기 정부에서 실행에 옮길 만하면서도 호남에 절대적 이익이 돌아올 수 있는 정책을 누가 내놓느냐에 따라 눈길이 쏠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두 후보 캠프에서는 10년 전 노무현 후보가 충청도의 수도 이전 공약을 통해 충청권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던 점을 감안해 그만한 수준의 강도 높은 대(對) 호남 공약을 준비 중이다.

집단 몰아주기의 호남민심

호남의 투표 경향을 보면 일관된 것이 있다. 누가 나서서 유도하지 않아도 지역 유권자들이 알아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당을 이길만한 후보에게 집단적인 몰표를 보낸다는 것이다.

목포 출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한 1987년 13대 대선 이래 호남은 철저히 반(反) 새누리당 정서를 유지해 왔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에 치러진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호남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노무현 후보에게 당내 경선에서부터 힘을 실어줘 그가 당선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유는 상대당인 이회창 후보를 꺾을 가능성이 이인제 후보보다 높다는 판단에서다. 당시에도 호남은 정몽준 후보와 노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 노 후보가 우위를 보이자 한번에 모두가 돌아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호남 출신 후보가 없는 상태다. 지금은 안 후보와 문 후보를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10월 중순과 하순을 거치면서 어느 한쪽으로 힘의 기울기가 꺾이는 것이 분명해지면 단번에 그 쪽으로 모든 지지가 쏠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레 문 후보 쪽의 우세 가능성을 점친다. 아무래도 민주당이란 조직이 있는 점이 단신으로 뛰는 안 후보보다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에서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 대결 조사 결과에서 지금처럼 안 후보 쪽이 더 나은 것으로 유지되면 그때는 더 볼 것도 없이 문 후보를 외면할 것이 자명하다.

만일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어느 한쪽에 몰표를 주는 호남의 투표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두 후보 중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은 쪽으로 표심이 실릴 것이란 분석에서다. 적어도 투표에 관련해서는 새누리당을 꺾을 수 있는 후보를 향한 '호남동일체' 의식이 단단히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일보-한국리서치의 이번 조사에서 안 후보의 출마 방식을 묻는 질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41.0%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민주당 입당 뒤 출마하라는 의견이 26.5%, 신당 창당 뒤 출마가 13.2%였다.

적잖은 유권자들은 안 후보의 독자노선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성 정치권과 결탁하지 않고 제3의 길을 걸어달라는 지지층의 바람이 섞여 있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