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의문사 해결 국방부 '꼼수'국감 앞두고 보고서 제출 격발실험 결과 제쳐놓고심리상태 재조사에 집중 "고인 두 번 죽여" 비난여론

최중성(맨 오른쪽) 씨를 비롯한 미국 LA 교포들은 국군의 날인 10월 1일 김훈 중위 순직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에 순직처리를 촉구했다.
한 해 80∼90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다. 4일에 1명 꼴로 죽는 셈이다. 여기에 훈련 중 사망하는 이들까지 더하면 1년간 군(軍) 사망자는 140∼150명에 이른다. 다름아닌 대한민국 군의 현주소다.

이들 중 80∼90명 병사들의 죽음은 대부분 '자살'로 결론난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타살의 징후가 있더라도 결국 '자살'로 귀결되는 게 우리 군의 현실이다. 이들 20대의 젊은 죽음은 억울하고 한스럽기도 한데 '자살'이란 불명예는 대못질과 다름없다. 때문에 사인(死因)이 불분명한 병사들의 죽음을 재평가하고 국방의무를 수행하다 숨진 만큼 선진국의 예처럼 '순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현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사망사건(579건) 중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것은 48건이다. 군이 이들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향후 군 사망자에 대한 명예와 인권, 그리고 군의 신뢰 및 위상과 직결된다.

그 시금석으로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이자 진상불능 48건 중 첫번째 대상인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 거론돼 왔다.

김훈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국방부는 충분한 조사 없이 사망 직후부터 '자살'로 결론짓고 지금까지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김훈 중위의 유족과 해당분야 전문가들은 과학적 증거와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타살'주장을 해왔다.

양측의 입장이 갈린 가운데 '진실'규명을 위해 설립된 국회 국방위원회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대법원 판결 등은 김훈 중위의 사인을 '타살(징후)', 또는 '진위불능'으로 결론내렸다. 국방부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합의해 3월22일 실시한 총기실험결과에서도 권익위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에따라 권익위는 8월6일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 권고안'을 육군본부에 보냈다. 관계 법령(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50조)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30일 이내에 권익위에 그 사유를 서면으로 답변하거나 이의신청을 하게 돼 있지만 30일이 훨씬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도, 이의신청도 하지 않았다. 대신 8월20일 국방부(조사본부)에 김훈 중위 사망과 '업무 관련성'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는 육군본부가 권익위의 권고안을 자체 심사하지 않았다는 문제와 개정된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7월 1일 시행)이 그동안 국방부가 다른 국가기관의 결정을 무시해온 전례를 합리적으로 조정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육군본부의 조치는 '저의'를 의심케 했다.

실제 육군본부는 훈령 개정 이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순직처리 권고안을 낸 9건에 대해 모두 자체 심사를 한 반면, 권익위의 김훈 중위 순직처리 권고안에 대해서만 국방부에 재조사를 의뢰했다.

최근 국방부의 태도는 그 '저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훈 중위의 사망원인을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내리려 하는 것. 본지(9월24일자, 제2443호)의 기사 당시 국방부는 실무자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최근 국정감사를 앞두고 제출한 보고자료에는 김훈 중위에 대해 정신질환 자살자로 만들기 위한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가 민주통합당 김광진ㆍ진성준 의원에게 제출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건 재조사 추진경과'보고자료 및 대면보고에 따르면 국방부(조사본부)는 김훈 중위의 정신 및 심리상태를 재조사해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의 자살인지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즉 김 중위의 사인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김 중위 사망 직후인 1998년 3월말 국방부 1차 조사에서 "사고자가 자살직전까지 열심히 근무한 것과 유서가 없는 점""김 중위가 우울했다는 어떠한 확고한 증거도 없다"등을 적시해 정신질환 가능성을 배제한 것과 배치된다. 또한 국방부가 권익위와 함께 자ㆍ타살 유무를 밝히기 위해 실시한 격발실험 결과는 제쳐놓고 '정신질환이 자살의 원인'이라는 결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대해 진성준 의원 측은 "국방부가 권익위의 권고와 상관없이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확정하면서도 순직처리를 할 명분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인을 번복하지 않는 것은 초동수사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조사관계자들의 처벌과 전면적인 재수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말했다.

박용옥 예비역 중장(전 국방부 차관)은 한 기고문에서 "김훈 중위를 두 번 죽여서는 안된다"면서 국방부가 김 중위의 사인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움직임에 비판을 가했다.

국방부의 입장이 확고한 이상 김훈 중위를 비롯한 48명의 진상불능 대상자는 육군 전사망 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사인이 가려지게 됐다. 전사망 심의위원회의는 군위원 4명, 민간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사인에 대한 견해가 4 대 4로 동수일 경우 최종 결정권자인 심의위원장이 육군 인사사령관의 영향을 받게 돼 있어 김훈 중위 측에 불리한 구조다.

육군에 따르면 김훈 중위 사건은 34번째 순서로 배정됐다. 권익위가 순직처리 권고안을 낸 8월6일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김훈 중위 사건은 11월 말 쯤 사인이 결론지어진다.

김 중위 유족과 권익위는 '사인'에 대한 판단을 군이 주도하는 만큼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중위의 부친인 김척 예비역 중장(70ㆍ육사21기)은 "억울한 게 많지만 절차가 그렇다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야 한다"면서 "심사위원 구성부터 심사표, 심사기준 등이 공정해야 하고, 군이 제출하는 자료들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익위 관계자도 "'공정성'이 생명이다. 이게 담보되지 않으면 분란이 지속되고 군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A 교민들도 "김훈 중위 순직처리를" 서명운동

김훈 중위 사건은 해외 교민들에게도 관심사다. 특히 군과, 군인에 대한 명예와 예우가 각별한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은 김훈 중위 사건을 예의주시하면서 직접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한인 동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LA의 재향군인 요원들은 국군의 날인 10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정의롭고, 올바르게 처리해줄 것을 촉구하는 한편, 김훈 중위를 법에 따라 순직처리해 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김봉건 회장(명예 미 31사단장, 6.25참전, 육사7기)을 비롯해 14년간 김훈중위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미주지역 여론 형성에 기여해온 최중성 공동회장, LA 육군동지 김복윤 회장 등 노병들은 한국 언론에 보도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처사에 규탄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김훈 중위 사망을 자살로 허위 보고한 김모 대령(당시 JSA 중대장) 등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LA 총영사관에 제출했다.

또한 이들은 LA한인축제가 열린 10월 7~10일 교민들과 가두에서 김훈 중위 사건을 알리고 순직처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한편, LA 교민들은 국정감사를 위해 이달 18,19일 LA를 방문하는 여야 국회의원(6명)을 만나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교포들의 여론을 전하고 순직처리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