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팔경 중 제5경인 선녀폭포
육십령을 지난 백두대간은 지리산에 이르기 전, 장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라는 가지를 친다.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팔공산-성수산-마이산-부귀산을 이어 달리다가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진다. 호남정맥은 내장산-무등산-제암산-조계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에 이르고, 금남정맥은 왕사봉--계룡산을 지나 부여 부소산에서 끝난다. 금남정맥은 금강 남쪽의 정맥이라고 해서 일컫는 이름이다.

금남정맥의 허리에 위치하면서 진안고원 마이산의 기세를 계룡산으로 이어주는 (878미터)은 충청남도 논산시와 금산군 및 전라북도 완주군에 걸쳐 솟은 명산으로 '남한의 소금강' '호남의 소금강' '작은 설악' 등의 별칭을 얻을 만큼 산세가 빼어나다. 충남과 전북 양쪽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은 주변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이 솟구쳐서 위용을 뽐낸다.

전북 쪽 은 설악산 및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남한의 3대 암산'으로 꼽힐 만큼 우람한 기암괴봉들이 멋들어진 암석미를 뽐내는 반면, 충남 쪽 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미가 빼어난 것이 특징이다. 같은 산이면서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인상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한마디로 '두 얼굴을 가진 산'이라고나 할까?

충남 의 골짜기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비경 지대는 수락계곡이다. '물이 떨어진다'는 뜻인 수락(水落)이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폭포수가 줄지어 있어 가경을 이룬다. 선녀폭포, 꼬깔폭포, 수락폭포, 금강폭포, 비선폭포(은폭포) 등 이름 붙은 폭포 외에도 작은 폭포수들이 곳곳에 숨은 '폭포의 왕국'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인적이 거의 없는 오지로 방치되어 오다가 1990년대 중반에 진입로가 다듬어지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철따라 색다른 매력 풍기지만 가을 단풍이 으뜸

대둔산
수락계곡은 봄의 진달래와 철쭉, 여름철의 시원한 계류, 겨울 설경 등이 철따라 색다른 매력을 뿜어내지만 가을 단풍이 연출하는 황홀경이 단연 으뜸이다. 여름철 피서객이 물러나고 나면 수락계곡은 고요한 정적에 빠진다. 가을철로 접어들면 이곳을 찾는 이는 별로 없다. 가을 단풍이 무척 곱다는 것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그러니 10월 하순 무렵을 전후하여 절정을 이루는 수락계곡의 단풍을 호젓하고도 아늑하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락계곡의 아름다움은 수락팔경으로 요약된다. 군지계곡, 수락폭포, 마천대, 승전탑, 선녀폭포, 낙조대, 석천암, 마애불이 차례로 수락팔경의 제1경~제8경으로 꼽힌다.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쯤 걸으면 왼쪽으로 수락팔경 중 제4경인 승전탑이 보인다. 1950년 10월부터 1955년 1월까지 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한 경찰관과 민간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86년 6월에 세운 기념탑이다.

승전탑 입구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면서 수락계곡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난다. 여기서 단풍 숲을 헤치고 25분쯤 오르면 제5경 선녀폭포와 세 개의 철다리를 지나 제2경 수락폭포에 닿는다. 예전에는 화랑폭포라고 불리던 곳으로 수풀 사이로 틀어박힌 암벽을 타고 떨어지는 10여 미터의 물줄기가 아기자기하다. 가을철이어서 수량은 미미하지만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져 운치를 돋운다.

기암절벽이 에워싼 막다른 협곡, 군지계곡

수락폭포를 지나면 제1경 군지계곡이 펼쳐진다. 수락계곡의 상류 지역인 군지계곡은 비가 오지 않는 한, 물이 별로 없다. 기암절벽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깊고 막다른 협곡으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므로 온몸이 오싹해질 만큼 으스스하다. 흡사 고층 빌딩 사이의 골목길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서는 하늘이 한 뼘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도 숲이 가리고 있어서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수락리 보호수인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수락계곡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군지계곡에는 가슴 아픈 일화가 전해진다. 동학혁명 때 관군에게 쫓긴 동학군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전멸한 것이다. 도주할 길이라고는 절벽을 기어오르는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바지랑대로 하늘 재기'나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래서 '군지옥골'이라고 불리던 이 협곡은 군지골 또는 군지계곡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낙석 위험이 큰 탓에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들어설 수 없다. 예전에는 군지골에서 사다리처럼 가파른 220층계를 오른 뒤 1시간쯤 등산하여 정상인 마천대에 이르렀지만 그 길도 폐쇄되었다. 군지골에 있는 금강폭포와 비선폭포도 이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등산에 뜻이 있다면 수락폭포 옆 층계와 산길을 따라 2시간쯤 올라 정상인 마천대로 향한다.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고 해서 이름 붙인 마천대(摩天臺)에 오르면 놀뫼벌(논산 벌판)과 계룡산, 서대산, 천등산과 운장산 등이 사방으로 펼쳐져 장쾌하기 그지없다.

# 찾아가는 길

계룡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지선을 벗어난 뒤에 왕대 교차로-왕대로-제1산단로-대둔로-한덕 삼거리-수락로(68번 도로)-수락계곡길을 거친다.

주차장에서 승전탑으로 가는 길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호남선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 논산으로 온 뒤에 수락리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수락리 버스 종점의 보리밥식당(041-733-9855)은 순두부를 비롯해 보리밥, 비지, 콩국수, 된장찌개, 김치찌개, 삼계탕, 백숙, 도토리묵, 동동주 등의 토속 음식을 내는 신토불이 맛집이다. 특히 순두부백반은 맵고 얼큰하면서 달착지근한 서울의 순두부찌개와는 달리,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아 담백하고 고소하면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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