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1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서 열린 조희팔의 장례식. 원 안 사진은 관 속에 있는 조희팔 얼굴. 주간한국 자료사진
4조원대 불법다단계 사업을 벌이다 거액을 챙겨 중국으로 달아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55)이 머지않아 국내로 송환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5월21일 이른바 '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의 주범인 조씨가 2011년 12월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5만여 명의 피해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앞서 5월16일 마침 중국 공안부로부터 조씨가 운영하던 다단계 업체 운영위원장 최모(55)씨와 사업단장 강모(44)씨의 신병을 넘겨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해자들은 조씨가 곧 검거될 것으로 낙관했다.

조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조씨가 아직 중국에서 살아있을 것"이라며 조씨의 위장사망설이 제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을 위장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검찰은 "조씨가 중국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조씨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에서 조씨를 직접 봤다는 증언까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죽었거나 혹은 나쁘거나

경찰은 "조씨가 지난해 12월19일 0시15분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시에 있는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사망 전날인 12월18일 중국 식당에서 지인 5명과 함께 식사를 한 뒤 인근 호텔 지하에서 2시간가량 술을 마셨다. 그리고 호텔방으로 올라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려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조씨의 부인과 자녀가 지난해 12월19일 중국으로 일제히 출국했다는 점과 가족이 머문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중국 현지에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조씨의 응급진료 기록과 사망진단서, 시신 화장증, 담당 의사와의 면담, 장례식 동영상 등을 미뤄 조씨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의 사망 발표 이후에도 조씨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그를 '기소중지' 처분상태로 놔둔 것이다. 검찰은 통상 피의자가 숨질 경우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조씨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찰은 왜 조씨가 숨졌다고 보지 않았던 것일까?

검찰 관계자는 "중국 공안으로부터 아직 조씨 신병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했다"며 "피해자가 많은 만큼 제보도 잦아 다각도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여러 소문들을 주목하고 있다. "장례식으로 사망을 위장한 뒤 얼굴을 성형해 옌타이를 떠나 돌아다닌다"거나 "산둥성 옌타이와 청두 유흥주점에서 조희팔을 목격했다" 등 여러 제보가 검찰에 들어오고 있다.

검찰은 이러한 제보들 중 일부는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하고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조씨의 행적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조희팔의 소재가 확인되는 대로 중국 공안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넘겨받을 계획이다.

조희팔 커넥션 드러날까

얼마 전에는 소문으로 떠돌던 경찰-조희팔 커넥션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9월7일 조씨 등과 유착돼 향응을 수수하고 직무를 유기한 대구경찰청 소속 정모(37) 경사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중국으로 도피중인 강모(52)씨를 추적중이다.

정 경사는 지난 2009년 5월15일부터 20일까지 연가를 낸 후 중국 연태시에서 조씨와 공범 3명 등을 만나 함께 골프접대와 주류 등 수십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육아휴직 기간 중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조희팔 등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 경사는 2008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대구경찰청 수사2계에 근무하면서 조희팔 등과 관련된 유사수신 사기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다. 이후 인터폴 적색수배를 하는 등 조희팔 유사수신 사기사건의 수사 담당자였다.

정 경사는 또 지난 2006년 지인의 소개로 조희팔 사기사건의 핵심관계자인 강씨를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알게 된 이후 계속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내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과 검·경찰 주변에서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조씨의 도피행각에 경찰 뿐 아니라 검찰 고위 인사도 관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씨가 중국으로 밀항선을 탈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 검찰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인사는 저축은행 사건에도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으나 아직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을 앞두고 조씨의 사망이 위장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두고도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 끊임없이 위장사망설이 제기됐음에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검찰이 경찰의 결론을 수용하지 않고 생존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가 속내를 뒤늦게 드러낸 것을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온다.

사정기관 주변과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조희팔 사기 사건은 여러가지 풍문이 아닌 공개적인 비밀이 온갖 난무하는 희대의 게이트"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권의 실세 연루설, 경찰 수뇌부의 금품 수수설, 검찰 개입설, 밀항 권유설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다분하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은다.

조씨 생존설에 무게가 실리면서 일부에서는 "대선을 전후한 미묘한 시점에 조씨 사건이 정치권에 파장을 몰고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추측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현 정권이 끝난 직후 MB정부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씨 사건이 불거질 경우 전형적인 물 타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희팔 측과의 자금거래 흐름이 포착돼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현재 중국에 도피중인 강씨가 검거되면 자금추적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금의 실체와 유입경로가 드러날 경우 소문으로 떠돌던 의혹들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돈 어떻게 모았나
건강용품 다단계 차려 순식간에 축재

조씨는 2004년 측근들과 함께 10여 개의 건강용품 다단계 업체를 차린 뒤 대구를 중심으로 영업하다 전국 각지로 사업지역을 확대했다. 조씨는 먼저 가입한 회원 돈으로 새 회원의 이자를 주는 식으로 순식간에 사업규모를 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자 지급이 어려워지자 2008년 충남 태안군을 거쳐 중국으로 밀항했다. 하지만 피해자들 은 "조씨가 막대한 자금을 모은 뒤 이 돈을 빼돌리다 꼬리가 잡히자 밀항선을 탄 것"이라 보고 있다.

피해자 사이에선 조씨의 밀항과 잠적에 경찰 고위층이 연루돼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총경급 간부가 사건에 직접 연루돼 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씨가 살아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검찰이 조씨를 검거할 경우 그 파장은 매우 클 전망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