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보 포구의 일몰
북큐슈 여행은 눈과 몸이 즐겁다. 일몰이 아득한 포구를 지나면 도자기, 료칸이 어우러진 고장이 이방인을 반긴다. 곳곳에 숨은 온천들은 북큐슈 여행을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매개들이다.

북큐슈 서쪽 끝의 사세보는 '동양의 나폴리'인 한국 통영을 연상시킨다. 해변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이 늘어서 있고 항구의 풍경은 고요하다. 항구 앞, 해질 무렵의 카페에는 노란 네온싸인 등이 불을 밝힌다. 사세보의 바다가 사무치는 것은 항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진가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면서 체감하게 된다. 사세보 앞 바다는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큐주쿠시마다. 무수한 섬들 사이로 배를 타고 나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일몰을 보고 난 뒤 마주친 포구의 은은한 풍경이 덧칠해져 감동은 무르익는다.

조망 포인트는 큐주쿠시마 곳곳에 숨어 있다. 유미하리 전망대에 오르면 전망대 옆에 위치한 유미하리오카 호텔에 꼭 묵어볼 일이다. 호텔 방이 널찍하고 호사스러운 것은 분명 아니다. 십자가가 덩그러니 달린 그리스풍의 이 호텔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호텔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때문이다. 창문을 열면 사세보시의 아름다운 야경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물길을 가르며 항구앞으로 나서는 배들의 움직임도 또렷하다. 새벽이면 사세보시 너머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해질녘이면 요트 위에서 봤던 숨막히는 일몰이 다른 각도에서 감동을 전해준다.

도자기, 료칸, 오징어가 명물인 사가현

사세보시를 벗어나 중부 사가현으로 접어들면 소박하고 잔잔한 북큐슈 여행의 묘미가 묻어난다. 현해탄 너머 한국과 접해있는 사가현은 도자기로 유명하다. 일찍이 조선시대 도자기문화가 이곳에 내려와 뿌리를 내렸다. 각 지방단위에서 도자기를 보존하고 알리는 문화는 '원조'인 한국보다 차라리 나을 성 싶다. 깨지고 부서져 나간 골동품도 살뜰하게 보관하고 있다.

유후인의 골목풍경
사가현에서 그윽한 하룻밤을 묵으려면 요요카쿠 료칸 등 이곳의 전통 료칸을 두드려볼 일이다. "드르륵" 나무 문이 열리면 길게 뻗은 복도가 나타나고 아담한 일본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일본 료칸의 모습이다. 료칸의 여주인인 오카미상은 료칸의 나무 벽만큼이나 은은하고 기품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이들 오카미상들이 한국말을 제법 한다는 것이다. 한류열풍 때문인데 배용준 등 원조 한류스타에 대한 이들의 숭배는 오빠부대를 뛰어 넘는다.

사가현 북쪽 카라츠는 현해탄과 접한 해안선에 5km 가량 펼쳐진 소나무숲인 니지노 마츠바라로 유명한 곳이다. 차로 휙 지나치기보다 카가미야마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거나 걸어서 둘러보면 좋다. 카라츠가 더욱 맛깔나는 데에는 이곳 명물인 오징어회가 한 몫을 한다. 오징어만두 뿐 아니라 남겨진 다리로 즉석 튀김 등을 연이어 내오는데 깔끔한 오징어의 신선도가 혀끝에서 느껴진다.

사가현 여행의 피로는 피부미용에 좋은 '일본 3대 온천'으로 알려진 우레시노 온천에서 푼다. 이곳에는 소담스런 골목이 열을 맞춘 아담한 거리가 조성돼 있다. 골목 모퉁이에서 족욕을 즐긴 뒤 저녁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낯선 선술집의 문을 두드린다. 이곳 특산물인 온천물두부를 안주 삼아 뜨끈한 정종한잔을 기울여 본다.

아늑한 온천마을 유후인에서의 산책

큐슈하면 온천, 북큐슈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대표 관광지로 오이타현 유후인을 꼽아도 손색이 없겠다. 벳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온천마을인 유후인은 상업화 된 벳푸와 달리 고요하고 환경 친화적인 관광지로 꾸며진 곳이다. 낮은 담벼락의 아기자기한 온천과 갤러리, 카페, 공예품점 등이 마을길을 따라 예쁘게 채색돼 있다. 긴린코 호수는 아침이면 마을 전체를 안개로 뒤덮어 '안개 마을'로 만든다. 유후인은 일본에서 연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로 뽑힌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형 관광버스들이 한 두시간 휙 둘러보고 가는 일도 빈번하지만 아담한 숙소에서 하루 머물며 온천욕을 하고 하천길 따라 산책하는 여유로움이 이곳에서는 더 어울린다.

유미하리 전망대에서 본 큐주쿠시마
유후인 인근의 온천 명소 벳푸에는 공동탕만 170여개소가 있는데 지옥온천, 가마솥 온천 등 다양한 테마 온천들은 눈과 몸을 즐겁게 한다. 벳푸의 상징인 온천 연기 자욱한 아침 풍경을 감상하며 노천탕에서 노곤함을 달래면 북큐슈 여행의 잔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여행메모

가는길=북큐슈 여행은 후쿠오카 공항을 기점으로 이동하는 게 편리하다.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 직항편이 운행중이다. JR열차노선도 다양하게 연결돼 있다. 후쿠오카로 입국한 뒤 오이타 공항에서 나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먹을것=사가현 카라쯔에서는 오징어회를 시식하고 우레시노 온천에서는 이곳 녹차로 만든 녹차죽과 온천물두부를 먹어본다. 오이타는 쇠고기 요리로도 명성 높은 곳이다.

숙소=사세보의 유미하리노오카 호텔은 일몰 등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하기에 좋다. 사가현에서는 해밀턴 우레시노 호텔이 고풍스럽고 아늑하다. 벳푸의 스기노이 호텔은 벳푸 최대 규모의 특급온천 호텔. 계단식 노천탕'에 누워 시간대에 따라 야경 및 다양한 경치를 감상하는 짜릿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가현의 자기 가마

사가현의 요요카쿠 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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