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 25일 합당기자회견을 하려고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충청권 구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인제 대표가 이끄는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이 25일 전격 합당함으로써 박 후보는 중원 공략에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새누리당의 흡수 합당 성격이지만 정치적 의미는 단순히 여당이 의석수 4석을 추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선진당의 지지 기반인 충청권에 대한 밀착 접근이자,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던 보수 진영의 대통합 신호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양당의 합당으로 광역단체장인 염홍철 대전시장을 비롯해 10명의 지방단체장과 37명의 광역의원, 83명의 기초의원이 새누리당에 몸을 싣게 됐다.

이들이 지역을 누비며 박 후보 선거 운동을 돕게 됐기 때문에 박 후보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인제 대표는 합당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총력 지원의 뜻을 밝혔다.

별도의 당직 없이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박 후보의 충청권 득표를 책임지는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열린 '선진화시민행동,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경석 목사, 박 후보, 김진홍 목사.
충청권은 박 후보에게 더욱 각별하다. 세종시 수정안 처리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며 원안을 관철시켜 이미 '세종시 지킴이'란 별칭도 얻었다. 또 충북 옥천은 박 후보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다.

여기에 박 후보가 당 대표로 있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괴한의 피습을 받아 병실에 누워있을 때에도 "대전은요?"라며 대전시장 선거 판세에 관심을 기울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충청권에서 박 후보의 지지율은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간발의 차이로 앞서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간 충청권에 그렇게 공을 들여왔지만 아직도 충청 민심이 박 후보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 것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는 사실 충청권과 별다른 인연도 없다. 그런데도 박 후보의 지지율에 근접하고 있으니 박 후보 입장에서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야속한 감정을 가질 만도 하다

이에 박 후보는 선진당과의 합당으로 이 지역의 민심을 사로잡을 전기를 마련했다. 자신의 고향인 대구ㆍ경북(TK)지역에다 충청권을 얹을 수 있는 지역 연합 형태로 선거전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선진당과의 합당은 또 보수연합이란 정치적 의미도 있다. 아직 이회창 전 대표가 합류 의사를 밝히고 있진 않지만 이 지역 출신인 김종필(JP)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리, 심대평 전 대표 등에게 박 후보가 손을 내밀 공산이 크다.

이들 보수 진영의 유력 인사이자 충청권 맹주들이 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 준다면 선진당과의 합당은 보수대통합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물론 박 후보 입장에서는 중도ㆍ진보 진영을 뜻하는 산토끼를 잡으러 다녀야 할 상황에서 갑자기 집토끼 단속으로 회귀하느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대선은 50여일이나 남았다. 일단 집토끼 단속을 단단히 해 놓고 산토끼를 향해 가는 게 순리라는 분석이 더 많다.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은 박 후보로서는 TK와 충청권의 연대, 보수대연합의 출발점이란 중요한 두 가지 정치적 의미로 담겨 있다.

충청 민심이 승부를 가른다

역대 대선에서 승부처는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 등 수도권이었지만 그 향배의 바로미터는 충청권이었다. 1992년 14대 대선 이후 4번의 대선 모두 충청권의 승자가 대권을 거머쥐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및 3김씨가 맞붙었던 13대 대선에서는 지역 맹주인 김종필(JP) 전 총리가 출마하는 바람에 충청 민심은 JP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충청 표심은 철저히 자기 지역의 이익에 따라 흔들렸다.

14대 대선에서 JP가 민자당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 김영삼(YS) 후보가 김대중(DJ) 민주당 후보를 대전 충남 충북에서 모두 이겼다. JP의 입김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15대 대선에서는 JP가 DJ와 연대해 DJP연합으로 나서면서 충청 민심은 다시 호남+충청 지역 연대 쪽으로 바뀌었다. 3개 지역 모두 DJ가 충남 출신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눌렀다.

16대 대선에서도 충청권 수도이전 공약을 앞세운 노무현 후보가 3개 지역에서 역시 이회창 후보를 압도했다. 17대 대선에서는 이 지역에서 딱히 특별한 이슈가 적었던 관계로 선두를 달리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세론을 이어가면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4번 모두 충청권 승자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현재 충청 지역 지지율 조사를 보면 박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리드를 지키는 가운데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바짝 쫓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상 거의 혼전 양상이다.

10월2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를 보면 대전ㆍ충남지역에서 세 후보 대결의 경우 박 후보가 34.7%로 1위, 안 후보가 26.6%, 문 후보가 24.3%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전국적인 지지율 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양자 대결의 경우 박 후보가 안 후보에게는 45.3%대 43.7%, 문 후보에게는 44.8%대 43.4%로 오차범위 내에서 약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야권 후보 단일화 조사에서는 문 후보(41,1%)가 안 후보(37.8%)보다 조금 우위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전국 조사에 비해 박 후보에게 충청 민심이 약간은 우호적인 경향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한달 전 조사에 비해 박 후보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떨어진 수치다.

9월9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세 후보 대결 시 박 후보는 48.8%로 압도적 1위를 달렸고 이어 안 후보(27.1%) 문 후보(18.8%) 순이었다.

양자 대결에서도 박 후보는 안 후보에게 50.3%대 43.5%, 문 후보에게는 57.2%대 36.4%로 크게 앞서고 있었다. 두 조사 결과만 보면 박 후보가 충청 지역을 우호지로 분류하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나올 만 하다. 박 후보가 이인제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선진당과의 합당을 예상보다 조기에 이끌어낸 이유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박 후보의 보수 진영 껴안기

박 후보는 건전 보수를 자처한 선진당과의 합당으로 지역 연대에 이은 이념적 결합도 꾀하고 있다. 이른바 집토끼로 비유되는 보수 진영에 대한 구애 전략이다.

그간 박 후보는 중도ㆍ진보 성향 유권자들을 의식해 상대적으로 좌클릭하는 정책에 무게를 실어왔다. 경제민주화가 그렇고 복지 강화 부분도 집토끼보다는 산토끼를 의식한 공약이다.

그러다보니 득표 전략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보수 진영의 일부는 무소속 안 후보 지지 쪽으로 쏠리고 박 후보 쪽으로 어느 정도 넘어올 것으로 예상됐던 중도ㆍ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반응은 좀체 바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박 후보 캠프에서는 아직 대선이 50여일 남은 점을 감안해 일단 집토끼 단속에 총력을 기울인 뒤 다시 산으로 나가자는 쪽으로 방향을 조정한 것 같다.

박 후보는 선진당과의 합당에 앞서 24일 보수 성향의 단체인 선진화시민행동(대표 서경석 목사)이 주최한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 참석했다.

박 후보는 여기서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수많은 우리 장병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무조건 비난만 하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책임을 졌던 사람들이 명확히 밝히면 될 것인데 국민적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맹공을 폈다. 이례적으로 문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다분히 '오른쪽' 성향 유권자들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행사에 함께 참석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박 후보를 적극 돕겠다는 뜻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 캠프에서 NLL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물론 정수장학회 등 박 후보의 역사 인식과 관련한 공세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이 문제를 부각하는 의도도 있지만 지지층 결집도 자연스레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NLL 문제를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의 취임 이후 강화된 측면이 있다. 김 본부장은 취임 직후 "선거는 남의 표를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표를 최대한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집토끼 단속론을 편 바 있다.

실제 그는 안 후보를 겨냥해 "그의 복지 확충 재원 문제는 능력대로 내고 필요한 만큼 쓰자는 건데 이는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내건 슬로건"이라며 색깔론에 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박 후보가 다시 '우클릭'에 완전히 힘을 싣는다는 건 아니다.

일단 지역적으로는 TK와 충청을 연결하면서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고 지난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에게 전승을 안겨준 강원 지역을 단단히 다져놓은 뒤 수도권과 부산ㆍ경남(PK)지역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념적으로도 같은 편에 대한 공조를 굳건히 한 뒤 중도ㆍ진보 성향 유권자의 일부를 포섭한다는 전략이다.

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그간 60% 득표전략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면서 "선거는 1표만 이겨도 승리하는 것인 만큼 일단 오른쪽을 완전히 다져 이념적ㆍ지역적 중원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움직임에 맞선 박 후보의 승부수가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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