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금품수수 의혹에 휘말린 유진그룹유경선 회장과 동생 연루 검·경 갈등 희생양 가능성주가 연일 추락 등 재기 노력 물거품 우려

현직 검찰간부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11일 서울 공덕동 유진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증거물품을 담은 상자를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조영호기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최근 유진그룹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속담이다. 검찰 간부 금품수수 의혹을 둘러싼 검찰ㆍ경찰 간 수사권 갈등이 깊어지면서 그 불똥이 유진그룹에까지 튀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검사에게 대가성 뇌물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검찰, 경찰이라는 두 고래 사이에서 이중수사를 받으며 실제 죄질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무분별한 M&A(인수ㆍ합병)의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다가 최근 부활을 선언한 유진그룹으로서는 이번 악재로 그 기세가 꺾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M&A로 사업확장 성공

창립 당시 식음료기업으로 시작한 유진그룹은 군납건빵에서 나온 이윤을 이용, 유진종합개발(1979년), 유진기업(1984년)을 세우며 레미콘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유진그룹은 1991년 설립한 유진자원으로 석산 개발을 추진하고 1996년에는 인천에 모래 부두를 만들어 모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2년 유진기업 내 건설사업본부가 설치된 것을 감안하면 골재ㆍ시멘트ㆍ레미콘ㆍ건설로 이어지는 일관 사업구조를 완성한 셈이다.

식음료사업에서 건설사업으로 중심을 이동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중견기업 꼬리표를 떼지 못하던 유진그룹은 1997년 체제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덩치 키우기를 시도했다.

유경선 회장
우선 유진그룹은 1997년 부천ㆍ김포지역 케이블방송(SO)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드림씨티방송을 설립, 미디어 분야에 진출했다. 이후 초고속인터넷사업은 물론 쌍방향 디지털케이블방송까지 영역을 넓히며 미디어사업을 영위했던 유진그룹은 2006년 드림씨티방송을 매각하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유진그룹이 M&A 시장에서 위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멘트를 인수한 2004년이었다. 첫 M&A였음에도 자신보다 더욱 큰 규모의 회사를 인수하며 재계의 시선을 끈 것이다. 2006년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삼환그룹, 두산그룹 등과 함께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며 '유진'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도 했다.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실패를 경험한 유진그룹은 전열을 가다듬고 M&A에 집중, 큰 성과를 낸다.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 로젠택배, 한국통운, 한국GW물류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기존의 금융, 물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2007년 최대 매물이었던 하이마트까지 인수하며 M&A 시장에서 유진그룹의 위상은 정점에 달하게 된다. 연이은 M&A의 성공으로 건설ㆍ금융ㆍ물류ㆍ가전유통사업을 어우르게 된 유진그룹은 재계 순위도 30위권으로 껑충 도약하게 됐다.

유동성 위기 넘기고 실탄 장전

유진그룹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능력 이상의 M&A를 연달아 진행한 결과, 덩치는 커졌지만 소화불량에 걸리게 된 것이다. 하이마트 인수를 위해 전환사채 3,000억원을 포함해 총 1조4,000억원을 차입한 유진그룹은 부채비율이 93%에서 195%까지 치솟으며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였다. 계속되는 자금난을 겪던 유진그룹은 한국GW물류를 1년 만에 되팔고 금융사업의 중심인 유진투자증권의 매각까지 검토하는 등 궁지에 몰렸다.

결국 올해 유진그룹은 최대 계열사인 하이마트를 매각했다. 한때 성공적인 M&A의 표본으로 불리던 하이마트를 다시 매물로 내놓으면서 그룹의 대외적 위상이 땅에 떨어지게 된 셈이다.

다행인 것은 하이마트 매각이 유진그룹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4년 만에 하이마트를 되팔면서 유진그룹이 얻은 경제적 실익은 상당하다. 하이마트 인수가격은 1조9,500억원이었지만 실제로 유진그룹이 부담한 자금은 2,100억원에 불과했다. 하이마트 주식 739만8,000주를 롯데쇼핑에 매각한 가격이 약 6,556억원이니 대충 계산해봐도 4,4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것이다. 여기에 장성(160억원)과 광양(855억원) 시멘트공장들의 매각대금과 CJ헬로비전 주식(349억원)을 처분한 것까지 합하면 거의 8,000억원의 실탄을 확보하게 됐다.

현재 유진그룹에서는 8,000억원 상당의 자금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주력인 건설사업이 불황을 맞아 내리막을 걷고 있는 데다 전체 계열사 중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10개사에 불과한 터라 해당 자금을 미래먹거리를 위한 M&A 종잣돈으로 쓰이리라 점쳐진다. 승자의 저주를 가져올 수 있는 대형 매물이 아닌 알짜 중소ㆍ중견기업을 인수,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룹 전체 위기 일발

문제는 일가가 지니고 있는 오너리스크다. 현직 검찰 간부의 금품수수 의혹에 휘말린 유 회장과 동생 유순태 EM미디어 사장은 지난 12일 특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동시소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해당 검사에게 돈을 건넨 경위와 대가성 여부 등에 대해 집중 추궁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진그룹 측은 검사에게 건넨 6억원에 대해 유 사장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건넨 것일 뿐 회사와는 상관없는 돈이라고 해명한 바 있지만 이미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어 그룹 전체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유 회장은 하이마트 인수 당시 이면계약에 따른 배임증재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는 등 이미 오너리스크의 주범이 됐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극에 다다른 검ㆍ경 갈등의 전장이 된 이번 사건이니만큼 그 파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을 반영하듯 유 회장 형제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이 알려지며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유진기업의 주가는 낙폭을 거듭하고 있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 이제 막 부활의 날개를 막 펼치려 했던 유진그룹으로서는 또다시 촉발된 오너리스크가 야속할 따름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