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 아티스트로 거듭나다

최백호의 19집 <다시 길 위에서>는 놀라운 음악적 진보와 열정을 담아낸 음반이다. 최백호의 변신은 '한국형 월드뮤직'음반 작업을 제안한 이주엽대표의 탁월한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2집에 실린 그의 노래 '방랑자'가 좋은 반응을 얻자 확신을 얻은 이대표는 "고급하고 호소력 짙은 최백호의 목소리를 빌려 트로트나 7080 옛 노래가 대부분인 성인 가요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번 앨범에서 기존 곡은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 최백호의 1976년 데뷔 앨범 수록곡 '뛰어'하나다. 영화 '열애'의 OST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발표 당시에도 특유의 열정적인 분위기로 히트했던 노래다. 이번 버전 역시 박주원의 편곡과 기타연주 그리고 말로의 화려한 스캣이 더해져 독특한 질감으로 재탄생했다. 격정적인 리메이크 곡 '뛰어'로 내달린 가빠진 숨은 '만추'와 타이틀곡 '길 위에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로 이어지며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지나간 세월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노랫말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이 노래들은 최백호의 절제되고 떨림이 되살아난 창법으로 더욱 근사하게 채색되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 인트로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길 위에서'는 마치 최백호의 자전적 독백처럼 쓸쓸한 음색이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나이테가 지긋한 대중의 무한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함축적 노랫말, 고급스러운 편곡은 대중가요의 품격을 높였고 그의 변신이 가치 있음을 증명한다. 늦가을의 서정을 담은 '만추'는 라틴 리듬 위로 펼쳐지는 스트링 리프와 담담하게 던져지는 보컬이 최백호 특유의 고독과 맞닿아 있다. 변신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은 볼레로 리듬의 '바람을 따라', 탱고 리듬의 '굿바이', 화려한 스윙 리듬의 '집시'일 것이다. 특히 말로가 작곡한 '목련'은 변신의 완결 판 같다.

탱고와 클래식, 재즈를 뒤섞어 한편의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목련'은 이 앨범의 백미다. 재즈가수 말로가 작곡한 '목련'은 사실 대중가요 작법을 파괴하는 난해한 곡이다. 실제로 최백호는 이 노래의 생소한 느낌에 적응하느라 녹음에만 6개월이 걸렸고 5번이나 다시 녹음했다고 한다. "'목련'은 녹음할 때 고생했던 곡이라 가장 애착이 갑니다.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경쾌한 스트링 사운드 사이에서 리듬을 타면서 불러야 하는데, 참 힘들더라고요. 멜로디도, 박자도 어찌나 까다로운지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이번 앨범이 최백호의 음악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원동력은 말로와 박주원 외에도 음반 프로듀서를 맡은 표창훈을 비롯해 김종익, 최광신, 유해인 등 젊은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한 새로운 시도에 있다. 또한 조윤성(피아노ㆍ편곡) 민경인(피아노) 전제덕(하모니카) 라벤타나(재즈탱고 밴드) 등 최고 수준의 재즈 연주자들이 노가수의 변신에 힘을 보탰다. 노랫말은 작사가이기도 한 이주엽대표가 대부분 썼다. 최백호는 "예전에는 작곡자 한 명, 편곡자 한 명 하고 작업을 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과 같이 해 본건 처음이에요. 정말 공부 많이 했어요"라고 말한다.

최백호는 젊은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통해 무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동안 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가듯 쉽고 편안한 노래를 해왔는데 샵, 플랫이 잔뜩 붙고 박자도 울퉁불퉁한 곡들을 부르려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도저히 소화를 못해 포기한 곡도 하나 있어요. 음반을 다 만들어 놓고 보니 비로소 곡이 이해가 되더군요.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사람관계에는 꾸준히 접촉하고 대화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배우는 게 많으니, 정말 세상사는 것이 재미있네요."

힘겨운 환경에서 성장한 최백호의 보컬 밑바닥에는 이난영의 그것처럼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노래가 힘겹고 고통 받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가수사진을 재킷으로 사용한 평범한 디자인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앨범을 통해 최백호는 작품으로서의 평가가 가능한 아티스트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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