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단체장 당선막강한 영향력 과시

왼쪽부터 정몽준, 정몽원, 정의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이 되면서 한국 체육계의 범현대가(家) 지배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1982년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이후 꾸준히 확산돼온 범현대가의 체육계 영향력이 올해 들어 극에 달한 까닭이다.

한국 축구계는 지난 20년 동안 현대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2008년까지 4선을 하면서 절대왕정을 구축했다. 전 의원에 이어 51대 대한축구협회장직을 역임한 조중연 회장 또한 정 의원 라인으로 분류된다. 조 회장 임기 동안 정 의원은 '상왕'으로 불리며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했다.

한국 축구계에 미치는 정 의원의 영향력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축구계 내부에 잠재된 반현대가 움직임이 조 회장의 잇따른 실정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이번에 정 회장과 맞붙은 '야권의 상징'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의 약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결국 정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오르면서 현대가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축구계를 지배했던 것이 정 의원이었다면 양궁계에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있다. 8년째 대한양궁협회를 이끌어오고 있는 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3선에 성공했다. 정 부회장의 임기 동안 한국 양궁은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한국 양궁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또한 2006년,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정 부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회장도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네 차례나 대한양궁협회장을 지내며 300억원 이상을 지원한 바 있다. 현재까지도 명예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회장을 맡은 기간 동안 대표선수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아낌없는 지원만 보냈다고 전해진다. 유홍종 현대비앤지스틸 대표(6~7대), 이중우 전 현대다이모스 대표(8대) 등 정 회장과 정 부회장 사이에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인물들도 모두 현대차 계열사 대표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양궁계에 대한 현대가의 막강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 3선에 성공한 날 정몽원 한라 회장 또한 제22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정몽규 회장, 정몽준 의원과 사촌지간인 정 회장은 1994년 만도위니아아이스하키단(현 안양 한라)을 창단한 뒤 20년 가까이 팀을 운영해왔다. 지난해 11월 그룹 경영에 집중하고자 한라 구단주 자리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번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뽑히며 다시 얼음판으로 돌아오게 됐다.

정몽준 의원은 이달 열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 명단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가의 세 사람이 주요 경기단체장들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정 의원이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지니는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될 경우 국내 체육계에는 한동안 '현대'라는 이름의 그늘이 짙게 드리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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