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정부와 차기 정부 충돌 조짐찰떡궁합 과시하다 신경전각료 인선에 쏠린 관심, 최대한 분산 의도도 전·현직 대통령 갈등 재연될 가능성도 있어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지난달 29일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의 특별사면 조치와 관련한 인수위의 입장을 브리핑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윤 대변인은 이날 "특별사면 조치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현정부와 차기 정부의 관계가 심상찮다. 대선을 거치며 밀월 관계가 조성됐던 양측이 최근 들어 파열음이 새어 나오는 등 이전과는 다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러다 현정부 세력과 차기 정부 세력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면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이후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고 국정의 인수인계를 논의하던 지난해 말만 해도 양측은 찰떡 공조를 과시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 당선인도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비롯한 현정부 세력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은 터라 고마운 감정이 있었을 것이고, 이 대통령도 임기가 끝난 이후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라도 박 당선인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서 양측이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후보자 지명은 박 당선인 측과 협의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박 당선인 측에서는 이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후 이 후보자의 흠결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마저 채택되지 못하자 양측의 입장 차는 확연해졌다. 청와대는 박 당선인 측과 조율한 결과라고 거듭 주장했고, 박 당선인 측은 청와대의 단독 작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연합뉴스
현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자의 지명 문제가 말썽이 일자 박 당선인 측이 모든 책임을 청와대로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주관하긴 했겠지만 헌법재판소장 같은 중요한 자리에 대한 임명에 대해 양측이 의견 조율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이동흡 이어 설 특사로 대립

이동흡 후보자 문제에 이어 이 재임 중 마지막으로 단행한 설 특사가 양측의 신경전 거리로 곧바로 등장했다.

이 대통령이 박근혜 당선인의 강력한 반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특사를 단행하자 박 당선인 측은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명박 대통령
사면에 앞서 박 당선인은 "만약 사면이 강행되면 이는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 남용이며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전한 바 있다.

조 대변인은 또 "박 당선인은 임기 말 특사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며 "특히 국민정서에 반하는 비리사범과 부정부패자의 특별사면에 우려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과거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졌던 특별사면 관행은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고 그러한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특사 반대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 대통령을 정치적으로도 코너에 몰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아랑곳 않고 1월29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측근을 포함한 55명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 출범 시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당연히 특별사면에 대해 박 당선인 측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윤선 대변인은 "이번 특별사면에 부정부패자와 비리사범이 포함된 데 대해 박 당선인은 큰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놓고도 현정부 측은 "박 당선인이 김용준 총리 후보자 지명 문제를 놓고 야당 및 언론의 질타를 받자 여론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쏟아 냈다.

실제 이 시기에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는 아들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으며 여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연장선상에서 박 당선인의 '깜깜인사' '밀봉인사'가 도마에 올랐었다.

이와 관련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양측이) 서로 입장을 알고 하는 게임이라고 이해해주시면…"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정부조직개편안 놓고 충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설 특사가 전초전 성격이었다면 정부조직개편안 문제는 본게임 성격이 짙다.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은 4일 통상교섭 기능을 산업자원통상부로 이전하는 것과 관련, "이는 헌법과 정부조직법 골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곧바로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나서 "(김 장관의 주장은) 궤변이자 부처 이기주의로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반박했다.

인수위의 강력 경고에 따라 외교부는 "조직적인 저항이 아니며 조직보다는 정부가 우선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파문 진화에 나섰다. 또 김 장관도 바로 다음날 진 부위원장에게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양측 갈등이 확산되기 직전에 현정부 측에서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행정안전부는 작명(作名)을 두고 내부적으로 반발이 크다. 중장기 로드맵에 담길 금융감독 체계 개편도 폭발력이 큰 화약고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는 유명무실한 부처로 전락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어 내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난파선 처지가 됐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도 과학기술 분야가 미래부로 이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산학협력 기능까지 넘겨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에서 비주류 수장을 자처하는 친이계 이재오 의원은 "산학협력 기능의 주요 대상이 전문대나 지방대, 마이스터 고등학교"라며 "대학 진학률을 줄이고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의 진학률 높이기 위해선 산학협력 기능을 교육부에 두는 게 옳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인수위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박 당선인의 구상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처 이기주의'가 반발의 배경이라는 판단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현정부 측에 대해 감정이 좋을 리는 없다.

진짜 충돌은 정부 출범 이후?

이처럼 양측의 관계가 불편해진 건 사실이지만 전면전이란 충돌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 박근혜 당선인과의 향후 관계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는 해'인 현정부가 '뜨는 해'인 차기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도 박 당선인과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원할 리가 없다. 감정적으로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이 같은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김성환 외교부장관이 위헌 운운하다 하루 만에 사실상 사과성 문자메시지를 진영 부위원장에게 보낸 것도 청와대 등 권력 핵심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박 당선인도 현정부와 의견 대립을 거듭하는 게 부담이다. 더구나 조각(組閣)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어 자칫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를 이명박정부 장관들과 함께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얼굴을 붉힌 당사자들과 함께 박 당선인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어떻게든 출범 전까지는 현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정부와 차기 정부 세력간 신경전이 내부적으로는 교감 하에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와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문제로 인해 모든 관심이 각료 인선에 쏠려 있는 것을 최대한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진짜 양측의 충돌은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새 정부로서는 지난 정권이 이룬 그간의 업적 등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하긴 어렵다. 오히려 공(功)을 과(過)라고 주장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 경우 현직과 전직 간 감정 싸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그런 전례는 이전 정권에서도 흔히 있어 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5공 청산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 가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 이뤄진 북한 송금 등의 문제가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양측이 극한 대립 직전까지 갔다. 노 전 대통령은 모두가 알다시피 현정부 들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형태로든 이명박정부 시절 진행된 국가적 사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이 대통령이 역점을 둔 4대강 사업이다.

한 관계자는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을 최악의 부실 공사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을 비롯해 현정부 인사들이 몹시 불쾌해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차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을 경우 전ㆍ현직 대통령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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