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청와대 입성 소수뿐… 공천에 영향력 미칠까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만남은 자리에도 중용 안되면… '홀대 아닌 홀대' 계속땐 내부 균열 생길 수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정홍원 신임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2월25일 시작됐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장ㆍ차관 후보자들의 임용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어쨌든 25일 취임식을 시작으로 박근혜정부는 출발점을 넘어섰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임기를 시작하고 국무위원 후보들이 줄줄이 정부 종합청사에 들어갈 시기만 기다리고 있지만 이전 정부와는 좀 다른 모습들이 눈에 띈다.

청와대 보좌진 인선이 완료되지 않았고 17개 부처 차관을 비롯해 3처 17청의 수장에 대한 내정자도 발표되지 않았다. 총리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급만 발표가 됐다. 청와대 비서관도 일부는 발표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주요 공직자 인선에서 가장 윗부분만 마무리된 채로 출범하다 보니 일종의 '개문발차(開門發車)'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그간 대선에서 언론에 오르내렸던 친박 핵심들의 이름이 고위직 명단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 를 주재하며 정치,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흔히 정권 출범 시에는 대선 과정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른바 대선 공신들이 내각이나 청와대 보좌진 핵심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참여정부에서도 386을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됐고, 이명박정부에서도 이른바 '고소영' 내각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로 대선에서 음으로 양으로 활약한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는 상도동, 동교동계가 득세를 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념적으로는 보수 성향 인사이거나 지역적으로는 영남권, 그것도 대구ㆍ경북(TK) 인사들이 똘똘 뭉쳐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정권 출범을 앞두고 이들이 요직에 기용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이들 친박 핵심들도 내심 상당한 기대를 했다. 또 대선에서 이들 친박 핵심들을 따라 각종 단체를 만들어 외곽에서 선거를 지원한 범 친박 세력들도 은근히 논공행상을 바랐다. 여기에다 친이계이면서도 선거를 도운 새누리당 세력을 포함한 이념적 보수 인사들도 부푼 꿈을 가졌다.

실제 대선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접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박 대통령 캠프 주변 인사들이 더욱 열심히 뛰어다닌 측면은 있다. 이름만 올려놓고 뒤쪽에 머물러 있던 인사들도 적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대선에 적극적으로 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서 그랬고, 대선 이후 자신들에게 떨어질 결과물을 기대해서 그랬다.

그러나 대선은 끝났고 정권은 출범했지만 이들 대선 공신들에게 돌아가는 과실(果實)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작은 듯 하다. 장관 인선이나 청와대 보좌진 인사에서 대선 때 활약했던 인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렇다. 친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대선 공신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박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저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엔 제외됐지만 혹시 다음 인선이나, 국영기업체 장(長) 등 다른 노른자위에는 '부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내놓고 말은 못하고 입맛만 다시고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모든 인선이 깜깜이ㆍ밀봉인사로 이뤄지다 보니 딱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곳도 마땅찮고, 또 윗선에 함부로 자신의 인사 청탁을 했다가 될 일도 안될 수 있는 우려도 있고 해서 하늘만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 출범 후 친박들을 비롯한 대선 공신들의 한숨이 더욱 크게 내쉬어지고 있다.

내각과 청와대에 功臣 극소수

내각부터 보자. 정홍원 국무총리 이하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중 이전부터 친박계에 입적해 활약했던 원조 친박 인사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유일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등 친박계로 분류되다 이명박정부들어 친박 문을 나서 중간 지역에서 친이계를 노크하다 다시 복귀한 '복박(復朴)'인사로 분류된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당초에는 친이계로 분류됐다 나중에 합류한 케이스다.

또 정홍원 국무총리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도 대부분 캠프에 뒤늦게 합류하거나 새누리당 외곽에서 측면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원조 친박과는 거리가 있다.

청와대 보좌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 정도가 원조 친박에 해당한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새누리당 의원 출신이긴 하지만 참여정부 때 국방부장관을 지냈을 정도로 원조 친박과는 거리가 있다. 청와대 비서관에는 김선동 전 새누리당 의원과 최상화 전 새누리당 국장 정도가 원조 친박군이다.

물론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이재만 전 보좌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 정호성 전 비서관 등도 포함됐으나 오히려 친박 내부에서는 이들의 기용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친박 인사들과 박 대통령 사이를 좁혀주기는커녕 또 다른 벽을 만들곤 했다는 지적에서다.

그러다 보니 친박계 인사 중에는 청와대 비서관 자리에도 변변히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결과가 됐다. 장관 인선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 임명, 이어 청와대 비서관 자리마저 전문가 중용이란 명제 아래 원조 친박들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셈이다. "누굴 위해, 뭘 위해서 대선 때 그렇게 뛰어다녔는가"라는 볼멘 소리가 친박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친박, "하늘만 쳐다 본다"

최근 한 친박계 인사는 "답답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공직에 못 올랐으니 관변 단체라도 기대해봐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공직 인선에 이어 단행될 공공기관 등 국영기업체 간부 자리를 바라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이미 박 대통령은 지난 정권부터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운 바 있다. 만일 새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주요 국영기업 임원진에 친박 등 공신들을 대거 내려 보낼 경우 '박근혜 인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 대통령이 선뜻 대선 논공행상에 따라 친박 공신들을 이런 자리에 배치할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다.

이 같은 자리도 전문성 위주로 인선하다 보면 주특기가 있는 공신들 몇 명만 구제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경제 전문가 출신 전 의원이나, 복지나 의약, 장애인, 체육 등 관련 계통 출신 공신들 중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 받는 인사들이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심지어 친박이 아니더라도 지역별로 대구ㆍ경북(TK) 인사마저 고위 공직자 30명 중 단 3명에 불과하다. 호남은 4명이다. 박 대통령과 동향이란 이유에서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이 제기될 만도 하다.

여의도 구 정치인처럼 경제 사회 법조 분야 등의 특별한 주무기가 없는 인사들이라면 이번 정권에서는 제법 주목 받는 자리로 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친박계 전현직 의원들이나 그 밑에서 보좌해온 측근들에겐 우울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공신들이 등 돌리진 않을까?

친박계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당장 등을 돌리거나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가능성은 적다. 어차피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고 3년 후에는 20대 총선이 있다. 중간중간 크고 작은 보궐선거도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에도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친박계 인사들이 고개를 처들 개연성은 적은 편이다.

아예 비주류를 선언하고 친박 주류에 비해 비스듬히 서 있는 이재오 의원과 일부 의원들은 현정부와 딴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친박 핵심들이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울 리는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영남권 인사들이다. 이들이 새누리당 공천 없이 지역에서 환영 받을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그저 몸을 낮추고 있는 게 상수라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6,000여개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불만을 속으로 감추며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남권 출신이 아니거나 굳이 새누리당이 아니더라도 대외적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인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적 인물이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김종인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이다. 그는 2월25일 취임식장에 참석했고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데 대해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앞서 대통령직인수위가 국정목표와 국정과제 등을 발표할 때 경제민주화 언급이 빠진 것을 갖고 "박 대통령 주변에 경제민주화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뿐만이 아니다. 가려져 있지만 당 안팎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만일 박 대통령의 '홀대 아닌 홀대'가 계속되고 1기 내각과 청와대 인선에 이어 2기 내각이나 주요 공직자 인선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친박 내부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일부 이탈자가 나올 수도 있고 비주류 쪽에 몸을 실을 수도 있다. 이는 정권 차원에서도 큰 부담이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이들을 달래며 갈지, 지금처럼 '은근한 외면'으로 일관할지 장담키는 어렵다. 그러나 이 부분이 박근혜정부의 순항 여부를 지켜보면서 관심을 가져볼 만한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인 것은 분명하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