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 교체 가속도4대강·녹색산업 등… MB 역점사업 재평가

/손용석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전 정권 흔적 지우기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정부조직법개편안이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17개 부처 장ㆍ차관을 모두 임명하면서 전 정부 각료들과의 '어색한 동거'를 끝냈다. 또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임명을 완료하면서 11일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박근혜정부의 본격 개막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위원 인선을 마무리하면서 먼저 공직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명박정부 색깔을 없애는 데 역점을 두는 분위기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박 대통령과 연이 닿는 새 인물로 교체해 공직사회 기강을 다져놓아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을 치르며 친이계를 거의 사장시키다시피 했고 이번에 장ㆍ차관과 청와대 보좌진 등 공직 인선에서는 철저히 MB 맨들을 물러나게 했다. 전문성 등이 중시됐지만 적어도 전 정부와 호흡을 맞췄던 인사들은 기용하지 않았다.

당과 정부ㆍ청와대에 이어 다음은 공공기관장과 공기업 사장 등 임원진이다. 청와대는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에 임명된 공공기관장과 공기업 임원들에 대해 재신임을 묻는 절차에 착수했고 각 부처 장관들이 '공공기관장 평가'에 활용할 자료의 준비도 상당 부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해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면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12일 "박 대통령은 현직 기관장 임기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라며 "전문성과 업무 평가를 통해 임기가 도래하지 않은 낙하산 기관장들이 교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각 기관장 스스로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이 물러나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물러나 달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이야기다.

이 같은 지난 정부 사람들의 교체 움직임은 노무현ㆍ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인 2003년과 2008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2003년 당시 노 대통령은 "임기를 보장한다"고 했다가 "알아서 해달라"로 입장을 바꿨다. 2008년에는 정권이 교체됐는데도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버티면서 정권 차원의 압박이 가해졌고 이 과정에서 사찰과 뒷조사 등도 이뤄져 소소한 잡음이 일기도 했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출범 직후 공공기관장의 32%를 임기 중 교체했다.

낙하산 인사는 교체 0순위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장과 이전 정부에서 임명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었던 인사들이 가장 먼저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 정치인 출신 공공기관장들의 입지도 임기와 무관하게 좁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는데 국민께도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우선 국회의원 출신 공공기관장인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변정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윤석용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등이 올해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인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대위에서 한반도대운하특별위원장을 맡았던 박승환 한국환경공단 이사장과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고경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 등은 임기와 무관하게 'MB 측근'이란 색채가 강해 교체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또 이명박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낸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과 전 정부 대통령실장을 역임한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낸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 등도 교체 대상이란 분석이 많다. 이들 중 이 이사장과 강 원장의 임기는 각각 5월, 3월까지다.

전 정부에서 '서울시 라인'으로 통했던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이봉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원장, 그리고 4대강 사업 전도사로 불렸던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 역시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밖에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장도 인사 대상이다. 기획재정부의 '2013년 공공기관 지정 내역'에 따르면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공기관은 295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올해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은 100여명에 달한다.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최근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사퇴했다.

물갈이 인사 가속화할 듯

현행법상 대통령은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전력공사, 한국조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마사회 등 공기업 17개와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준정부기관 29개까지 총 46개 기관의 기관장과 감사 등 80여명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대병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동북아역사재단 등 18개 기타 공공기관의 기관장 및 위원 30여명과 한국은행 총재 등 기타 법률에 의해 임명할 수 있는 인원 20여명까지 합하면 공공기관 전체에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인원은 140여곳에 이른다.

또 이 같은 기관의 기관장과 감사, 이사 등의 임원진을 감안하면 줄잡아 500여명에 대해 직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인사 방침에 가장 환영하는 쪽은 당연히 친박계 인사들이다. 가뜩이나 장ㆍ차관이나 청와대 보좌진 인선에서 상대적 홀대를 받은 터에 박 대통령이 공기업 인사물갈이를 예고하자 '이번엔 친박 배려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걸고 있다.

친박계 관계자는 "대선의 논공행상을 바라는 건 아니나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동력을 확보하려면 역시 대선 때 적극 뛰었던 공신들이나,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유지한 측근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국가 정책을 집행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결국은 자기사람 심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다. 관가에서는 친박계 위주의 '코드인사'나 '보은인사'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4대강 사업 고강도 점검

박 대통령의 전 정부 흔적 지우기는 인사 교체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전 정부의 역점 사업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공과를 구분한 뒤 새 정부의 새로운 정책으로 국민에게 평가 받는 게 순서다.

새 정부는 이에 따라 전 정부의 핵심 역점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 강도 높은 점검 작업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예산낭비가 없었는지) 철저하게 검증해달라"고 지시하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조만간 출범시키는 4대강 사업 검증단에 그 동안 이 사업을 반대해왔던 환경단체 인사들도 포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4대강 사업에 반대한 민간단체들도 검증단에 포함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당초 지난 정부에서 계획했던 4대강 검증단에는 토목학회 정도만 참여하도록 했었는데, 좀 더 중립적이고 엄격한 검증을 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표면적으로 청와대는 "어떤 기획이나 의도 아래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사안별로 잘못되고 비정상인 것을 바로잡자는 차원일 뿐"이라며 "인위적인 전 정부 색깔 지우기는 아니다"라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서 결코 후한 점수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정하고 중립적이란 명제 아래 '군데군데 보완이 필요할 것'이란 진단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에서 진행됐다 자취를 감춘 한식세계화 사업과 이 전 대통령이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녹색산업 등에도 재점검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전 정부와 현 정부가 불편한 긴장 관계에 놓일 것이란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 출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통과 의례에 불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감사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나거나 결정적 실수 등이 부각될 경우 검찰 수사와 직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정부 색깔 지우기 작업이 이 같은 진척도를 보이기까지는 여러 단계적 전제조건이 있다. 국내 정치 상황이 박 대통령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개될 경우에는 딱히 전 정부 색깔을 지우는데 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로 정국을 이끌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북한 등 대외적 변수가 현안으로 닥치게 될 때에도 이 같은 작업은 그다지 필요 없다. '당면 과제를 푸는데 온 신경을 쏟아야 할 판에 엉뚱하게 전 정부 평가나 하고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적 코너에 몰리거나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전 정부와의 단절을 위한 획기적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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