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주도 정상화 방안 민간 출자사 동참 분위기 서울시도 적극 지원불평등 사업협약서 구조 개편 디폴트 위기 극복 청신호

용산개발사업이 최종 파산한 13일 용산전자상가에서 바라본 용산역세권개발사업부지의 모습. 부지 뒤편으로 사업확정 이후 6년간 재산권 행사를 제한당해 온 서부이촌동 일대가 보인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빠졌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하 용산사업)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주도로 '회생의 길'이 마련됐다.

코레일이 제안한 정상화 방안에 민간 출자사들이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다. 일부에서 '조건부 수용'을 제시하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코레일이 대승적 차원에서 제안한 회생 방안에 대체적으로 동참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용산사업 정상화를 위한 코레일의 요청 사항을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이를 추진할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기로 한 것도 '정상화'에 탄력을 주고 있다.

코레일 정창영 사장은 지난 15일, 30개 출자사 대표들과 용산사업에 대한 향후 추진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상호 기득권 양보를 전제로 한 용산사업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다. 앞선 13일, 용산사업은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PFV)사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이자 59억원을 못갚으면서 디폴트 위기에 몰렸다.

용산사업 위기의 원인들

정창영 코레일 사장. 연합뉴스
용산사업은 사업비만 30조가 넘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다. 사업이 성공한다면 초고층 14개 동을 포함 66개 건물을 지어 생산유발효과 60조8000억원, 신규 고용창출 23만7000명을 달성한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07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2016년 말까지 완공 예정이었다.

그런 용산사업은 현재 디폴트 상태에 처해 있다. 사실 용산사업은 코레일 출범 단계에서부터 위기의 불씨가 잠재했다. 여기에 사업주체들의 성실하지 못한 협약 이행과 일부 인사의 정치적 야심까지 더해지면서 파행을 거듭했다.

2004년 코레일 출범 당시 정부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진 부채 4조5000억원을 코레일에 떠넘겼다. 고속철도 개통 1년인 2005년에 6062억원의 막대한 경영적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개발이익으로 부채를 해결하라며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37만2000㎡)를 코레일에 넘겨줬다. 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었기에 이철 전 사장은 용산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리먼사태 이후 부동산 경기침체와 금융위기가 밀어닥치면서 제동이 걸렸다. 2009년 3월 용산사업 토지매매 대금이 연체됐고, 대표주관사인 삼성물산은 적자가 우려되고 부동산 침체 지속 등으로 사업성이 더욱 불확실해지자 이듬해 8월 주관사의 지위를 포기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치ㆍ사회적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투자의사결정에 따라 사업중단을 선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허준영 전 사장은 정치적ㆍ사회적 부담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중소기업인 롯데관광개발에 삼성물산의 모든 권한을 넘겨주어 사업을 연장시켰다. 이에 롯데관광개발은 금융권 인사인 박해춘 회장을 영입해 외자유치에 나섰지만 별다른 실적을 거두지 못했고, 인허가 등 행정적 절차 또한 답보상태에 머물러 사업중단 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용산사업 부실의 근본적 원인을 불안한 사업구조로 출발한데서 찾는다. 코레일이 최대 출자사임에도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지 못하게 하는 등 민간출자사에 유리하게 체결된 사업협약서 및 주주협약상의 독소조항이 코레일의 발목을 붙잡으며 개발사업의 불안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일환으로 서부이촌동 지역을 개발계획에 포함시키면서 사업리스크가 크게 증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주민민원 및 보상문제가 용산사업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했다.

취약한 자본구조도 문제다. 성공한 국내외 PF(Project Financing)사업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이 최소 10~20%임에도 불구하고 용산사업은 3.8%에 불과해 외부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한 사업구조로 출발했다.

기형적인 사업구조도 용산사업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용산사업은 민간주도의 PF사업으로 민간출자사가 사업추진을 위한 자금을 조달할 1차적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코레일이 그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 온 것이다. 실제 용산사업의 자금조달 내역을 보면 민간출자사 대신 코레일이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PFV가 조달한 전체 사업자금 4조원 중 78.4%(3조1,408억원)을 코레일이 부담하였다.

정상화 대책에 청신호

용산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였던 2007년 시장 상황을 기초로 준공전 분양률 100%를 가정하여 2조7000억원의 흑자구도를 설계한 것으로 현재의 부동산 경기침체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부정적 전망이 일반적이다.

용산사업이 현재 사업구조로 진행될 경우 사업 각 단계별로 리스크가 존재하고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사업이 중단될 경우, 그 수습을 책임질 기업은 코레일 뿐이며 그 경우 코레일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때문에 코레일은 지난해 2월 이후 용산사업을 재검토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위해 근본적인 변화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사업자금은 코레일이 대고 이익은 민간출자사가 가져가는 현재 사업구조의 개편 없이 코레일만 일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사업정상화를 위해 사업계획서 변경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민간출자사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급기야 용산사업이 디폴트 상태에 이르자 정창영 사장은 3월15일 획기적인 용산사업 정상화 방안을 제안했다. 국민의 재산을 관리하는 공기업이자 사업자금 조달자로서 '사업주체'임을 선언하고, 새로운 사업협약서를 통한 구조개편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게 요체다. 정 사장 특유의 소신과 뚝심 해법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폭탄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들춰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코레일은 그러한 실천 방안으로 합의를 전제로 올해 말까지 필요한 긴급자금 2600억원을 지원하고, 금융권에 대한 2조4000억원 상환도 성실히 이행하는 등 파산을 방지하고 사업정상화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간출자사를 포함한 용산사업 관계자들은 정창영 사장의 '정상화 방안'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 변수가 남아 있지만 코레일이 주도하게 될 용산사업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