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신들의 거주지-안나푸르나, 칸첸중가' 전현장 찾아가 직접 그려 산의 정기까지 담아내산의 기운 대비되도록 여인의 누드 배치

Nude with Pandim 227x182cm Oil on linen
신들의 거주지로 불리는 히말라야의 장엄한 산맥들이 화폭에 담겨져 그 영험한 정기를 내뿜는다. 안나푸르나ㆍ칸첸중가ㆍ마체푸츠레ㆍ판딤 등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봉들을 직접 다니며 현장에서 느낀 바를 붓이 가는대로 풀어놓은 최동열 작가의 작품들이 전하는 울림이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4월 3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최 작가의 전시 '신들의 거주지-안타푸르나, 칸찬중가'에는 2년여 동안 영산(靈山)에서 그려낸 작품 40여 점이 선보인다.

작가는 4000미터 이상 되는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을 찾아 배낭을 짊어지고 한 손에는 그림을 그릴 화구를 들고 산 속 작업실에 들어가 추위에 굳어진 손을 움직여가며 매 순간 변해가는 히말라야의 얼굴을 담아냈다.

그가 화가로서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20년 전 실크로드와 티베트, 네팔 등을 돌아다니며 불교벽화를 공부할 때 현지에서 본 히말라야의 느낌이 선명하게 각인되면서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2011년 인도에서의 작업과 그해 봄 안나푸르나 촘롱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한 후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작업을 시작했다.

"작년 봄 안나푸르나 순환트랙 중 마낭(Manang) 마을 위에 있는 프라켄 곰파(Praken Gompa·3945m)에서 짐 풀고 작업할 때였어요. 밤새 눈보라 치는 반동굴의 암자 침실에서 자고, 맑은 아침에 눈떠 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제3봉과 강가푸르나의 얼굴들을 보면서 남은 삶을 히말라야의 얼굴을 그리기로 다짐을 했죠."

Annapurna & Gangapurna glacier 130x162cm Oil on linen
주변에서는 음식과 잠자리가 편한 아랫마을에서 올려보며 그리든지, 트레킹을 하며 사진을 찍은 뒤 작업을 하라고 권하지만 그는 '현장'을 고집한다.

"산의 정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장에서 그리지 않으면 히말라야가 뿜어내는 정기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요."

그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 작품에 영감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앞에서 그려야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오래전 잃었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포근함과 파도처럼 몰려오는 원초적인 사랑에 들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한단다.

그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담아내는 히말라야는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다. 작품은 그가 살아온 드라마틱한 삶의 결집체이자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이상향이다.

그는 부유한 명문가 집안의 장손으로 기대를 모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경기중 졸업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 간 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이후 모든 걸 내던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장노동자, 바텐더, 태권도 사범 등을 전전하던 그는 70년대 말 화가인 아내를 만나면서 글 대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멕시코의 여러 도시를 돌며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그는 '한국의 고갱'이라 불리며 뉴욕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1987년에는 서울 전시로 금의환양하기도 했다. 그의 히말라야 작품들은 그러한 치열한 삶 속에서 태어났다.

전시 작품에는 공통으로 산의 풍경을 감상하는 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작가는 "산의 기운이 워낙 세서, 그와 대비되도록 여인의 누드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구도의 재미, 산과의 균형을 말하는데 관람객이 작품 속 여인과 함께 히말라야를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 속 누드 여인은 작가 스스로 말하듯 화가로의 인생을 이끈 부인이기도 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와 깊은 예술적 내공을 지닌 현재의 자신,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작가는 히말라야의 다양한 얼굴을 통해 추억과 현실이 중첩되는 이상향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공간의 신성함을 전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와 함께 미학 에세이집 <아름다움은 왜?>를 출간했다. 작가는 책에서 "예술은 과학이나 철학과 달리 언제나 자연으로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아름다움은'이란 자연 흉내 냄의 환희이다. 아름다움이 태어나려면 개인은 자연처럼 강렬하고 잔인하고 대담무쌍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에게 히말라야는 가장 위대한 '자연'이다. 그는 자연처럼 치열한 삶을 이어왔고, 매년 몇 달씩 히말라야에 머물며 그와 일치되는 환희를 만끽한다. 이번 전시는 최 작가가 히말라야에서 영혼으로 담아온 '자연의 환희'에의 초대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