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엔 달래기 '투트랙 전략'내각·청와대 잇단 실책에 보좌진 불러 호된 질책정책 이행 점검 강화… 국정 정상화 가속 페달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안전행정부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근 한달 간 대치상태를 이어가며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더니 바로 이어진 주요 공직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 사태로 국정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했다. 일부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에도 하루 만에 내정이 번복되거나 실제 업무를 보다가 1주일 여 만에 교체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박 대통령의 인선 실수와 국회의 지루한 신경전 등이 주 원인이지만 여기까지는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는 용인될 범위 안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출범 초 정부와 청와대, 여당 간의 유기적인 논의 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로 흔히 치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대처나 후속책 마련 과정에서 정부의 아마츄어 행태가 고스란히 노출되거나 단순한 실수가 반복되는 기강 해이 현상이 나타난 데 있다. 박 대통령이 화를 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은 1일 허태열 비서실장 등 보좌진을 불러 최근의 잇단 실책에 대해 단단히 꾸중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좀체 보기 힘들 정도로 격노했고 보좌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차제에 여당과의 소통 강화와 함께 공직사회 기강 다잡기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을 아우르면서 청와대와 정부 조직을 추슬러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한 국정운영의 가속 페달을 밟아 나가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청와대의 잇단 실책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인사위원회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유엔 대사 인선안을 확정한 뒤 서면브리핑을 통해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특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하는 엠바고를 언론에 요청했다. 상대국의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 절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스스로 엠바고를 깨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면브리핑을 하면 청와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자동적으로 게시되는 시스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언론 엠바고에만 신경을 쓴 까닭이다.

사전에 흔히 공개되지 않는 대통령의 외부 행사 일정도 참모들에 의해 미리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3주기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 같은 일정이 사전에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때문에 경호를 강화해야 하는 대통령 경호실이 고충을 겪어야 했고 상대적으로 관련 행사에 참석하거나 주변 시민들의 불편이 컸다. 이와 함께 정작 사전에 공개돼야 할 박 대통령의 외국 대통령 청와대 접견 일정 등은 당일 아침에나 공개되는 등 우왕좌왕 했다.

또 허태열 비서실장이 지난달 30일 잇따른 장ㆍ차관급 인사 낙마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부실한 내용과 형식 때문에 '아니함만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허 실장은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대신 읽은 사과문을 통해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단 두 문장에다 형식도 대독(代讀)이었고, 사과문 발표 시간은 17초에 불과했다. 인사 책임자가 박 대통령임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사과를 허 실장 명의를 빌려 김 대변인이 대신 읽은 '이중(二重) 대독 사과'라고 볼 수도 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국민을 졸(卒)로 보는 나쁜 사과" "진심 없는 대독 사과"라며 맹비난했다. 여당 내부에서 조차 "성의 없는 형식적 사과"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청와대의 이 같은 '본헤드플레이'(bone head playㆍ미숙한 운영 행태)가 계속되면서 동시에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취임 5주차 국정수행 지지율은 45.0%로 1주 전 조사 때에 비해 6.9%포인트 떨어졌다.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9.1%포인트 상승한 44.3%로 나타났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9.8%로 50%에 미치지 못했다.

朴, 정부와 청와대 군기잡기

그러자 박 대통령은 1일 허태열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들을 집무실로 호출해 주변 4강국 주재 대사 내정 사실을 청와대 블로그에 게재했던 것부터 크게 질책했다. 국격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박 대통령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웠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 인사 실패와 관련한 '17초 대독 사과' 논란 등을 언급하면서 참모진에게 불편한 심경을 표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아그레망 논란과 관련해서 상당히 언짢게 생각했다"며 "대통령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또 다른 부분은 정책 드라이브가 인사 실패 등 다른 이슈들 속에 파묻혀버리는 것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책들을 각 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시점인데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박 대통령이 답답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수석비서관은 "하루에 2개 부처씩 업무보고를 하면 그 가운데 중요한 이슈가 언론에 부각돼야 하는데 인사 논란 등 다른 사안들 때문에 가려져버리는 것을 박 대통령이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42개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열고 현정부의 14개 국정과제 등의 이행 실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청와대 분위기가 심각하게 흘러가는 것과 무관치 않게 정부 내부적으로 기강 잡기에 돌입한 것이다. 다분히 청와대 등 윗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부처간 협업을 저해하는 칸막이 행태, 이기주의, 직무태만 등에 대해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총리실은 먼저 건설ㆍ건축, 세무, 노동, 조달ㆍ발주, 교육 등 부조리 취약 분야와 민생 관련 부정ㆍ비리, 부당한 알선ㆍ청탁, 금품수수 등 사익 추구 행위를 공직기강 확립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했다. 특히 일벌백계 관행을 뿌리내리기 위해 비위 행위자를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거나 상급기관의 재심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등의 '온정적 처분'에 대한 사후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朴, 여당은 아우르기

박 대통령이 정부와 청와대에게는 회초리를 든 반면 새누리당에게는 유화책으로 나설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에게 여당 내부에서 잇단 쓴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에 주목해 당청 간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마지막 보루인 새누리당 친박계까지 등을 돌릴 경우 국정 동력 자체를 상실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 인사 실패와 소통 부족을 이유로 그간 여당 내부에서는 친박 비박을 가리지 않고 청와대를 향한 불만이 공개적으로 쏟아졌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여당 친박계 의원들이 앞장서서 청와대를 공격하고 나서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이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 같다"며"본격적으로 정책을 법제화해야 할 시점인 만큼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여당 기류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정현 정무수석을 통해 "모든 정책을 여당에 사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고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수석은 3일 새누리당 초선 의원 모임을 찾아가 뭇매를 맞았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최근의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몸으로 때운 셈이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모임인 초정회는 이날 월례 조찬 간담회에서 이 정무수석과 김선동 정무비서관에게 당청 간 등의 소통 부재가 정권 초 국정 난맥상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폐쇄적인 소통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다.

이 수석은 "앞으로 당정청 관계에서 상호 협조나 이해를 구할 사안은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몸을 낮춘 뒤 "당정청은 공동책임, 무한책임을 함께 져야 할 3각축이니 적극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20명의 참석 의원들은 공식적인 대화 채널 개설 주문, 국회 상임위와 정부와의 정책 사전 조율, 청와대와 여당의 쌍방향 소통 등을 촉구했다. 이에 이 수석은 "여기 오는 것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 역시 의원으로 국회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당청 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거듭 낮은 자세를 취했다.

친박계 불만에는 주요 공직 후보자 인선 실패 등에 소통 부족 등이 표면적 원인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새 정부 요직에 친박 공신들이 대부분 배제된 데 따른 서운함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의 사장이나 임원진 등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통해 친박계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할 복안도 마련해 놓고 있다.

정부 내각과 청와대는 단단히 군기를 잡으면서도 새누리당은 살살 달래가는 투트랙 전략이 박근혜정부의 초반 정국 운영의 방향타가 되고 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