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박봉주 6년 만에 총리 복귀장성택-김경희 입김 작용北 경제개혁 탄력 받을 듯경색된 남북경협 변화 예고

박봉주 내각 총리가 8일 김정일국방위원장 추대 20주년 보고대회에서 총리 취임 이후 첫 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온건ㆍ개혁‘경제통’장성택과 방한, 남북 경협ㆍ교류 기대

2000년대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를 주도했던 박봉주(74) 경공업부장이 내각 총리에 올랐다.

박 신임 총리는 지난달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당 경공업부장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데 이어 하루 만에 내각 총리에 임명됐다. 2002년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행하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6년 만의 복귀다.

박 총리의 중용은 그가 개혁 성향의 ‘경제통’인데다 북한의 대남 공세가 날로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조치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박 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전격 기용된 데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측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북한의 경제노선 및 대남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2011년 1월 13일 박봉주(왼쪽)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포유리병공장을 현지 시찰하는 모습. 주간한국 자료사진
박 총리는 북한 권력층의 출신으로 보면 비주류에 속한다. 그런 그가 총리까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오른 데는 실물경제에 밝고 남다른 성실함에다 권력욕이 없어 김정일 시대부터 신임을 얻은 때문이라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여기에 북한의 숨은 실력자이자 김정은 시대 들어 막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장성택 부위원장과의 인연도 한몫하고 있다.

박 총리는 함경북도 김책시 출신으로 평남 덕천공업대학을 졸업한 뒤 평북 룡천식료공장 지배인,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책임비서 등을 거치며 실물경제를 익혔다. 또 1993년부터 당 경공업 부부장, 경제정책검열부 부부장, 내각 화학공업상을 역임했다.

박 총리가 당 중앙에서 승승장구한 데는 1990년대 당 경제정책검열부와 경공업부에서 김경희 당 비서를 보좌한 게 크게 작용했다. 김경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동생이자 장성택 부위원장의 부인으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는 고모가 된다.

박 총리는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신임 속에 ▦임금ㆍ물가 현실화 ▦배급제 단계적 축소 ▦기업의 자율성 확대 등 시장경제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7ㆍ1조치를 시행하며 2003년 내각 총리에 올랐다. 2002년 10월에는 경제시찰단으로 장성택 부위원장과 함께 남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박 총리는 7ㆍ1조치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석탄정책 등을 둘러싸고 당 및 군부와 마찰을 빚었고, 2006년 6월에는 자금전용 혐의로 직무정지를 당했다가 2007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해임됐다.

이후 평안남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이던 2010년 8월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했고 작년 4월 경공업 부장에 올랐다.

박 총리의 복권에는 장성택-김경희 부부의 영향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복권한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이나 경공업 부장의 최고 상급자는 김경희 당 비서다. 북한 주민 및 군과 밀접한 경공업 분야에서 김경희가 당 차원의 큰 그림(기획)을 그리면 당시 박봉주 경공업부장은 세부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했다는 전언이다.

그러한 박 총리가 김정은 체제의 2년차에 경제사령탑에 오름에 따라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총리는 2000년대 자본주의 요소가 포함된 새로운 경제 조치를 이끌 정도로 개혁적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고 외국의 개혁개방 현장도 직접 둘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박봉주 총리가 실물경제에 밝은 만큼 7ㆍ1 조치의 부활 등 당 중심의 민생경제 살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해왔다.

사실 김정은 체제는 출범 후 일관되게 ‘인민생활 향상’을 당면과제로 내세워 왔다. 지난 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박 총리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할 9명의 내각 상(장관급)들로 리무영 화학공업상, 리철만 농업상 등 경공업, 농업 분야 전문가들을 임명한 것도 민생경제에 비중을 둔다는 포석이다.

박 총리의 복귀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남한과의 관계 변화이다. 박 총리는 2002년 방한한데 이어 첫 총리 시절인 2004년 7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산하의 조선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를 대신해 ‘고려민족경제위원회’를 전면에 내세우고 산하 기관인 ‘임가공복무총국’이 실질적인 대남경협을 담당케 한 적이 있다.

한편 장성택 부위원장은 2004년 10월 경부터 평양시내 모처에 칩거하면서 특수팀과 함께 북한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몰두해오다 이듬해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법은 북한의 위기를 돌파하는데 남한을 최선의 경협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2006년 장 부위원장이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당에 복귀한 데는 남북경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측면이 있어 당시 장 행정부장과 박 총리 간에는 남북경협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현재 장 부위원장이 당ㆍ정의 파워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고, 박 총리가 북한의 경제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 만큼 경색된 남북경협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박봉주를 내각총리로 재기용하고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북한의 정책노선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강경한 태도로 맞설 때는 맞서돼 장 부위원장 등 북한의 유화적인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유연한 대북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봉주 총리의 등장이 남북 간에 변화의 모멘텀을 가져 올 지는 남과 북이 안팎의 문제를 극복하고 진정성 있는 손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