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경제강국' 놓고 당-군 입장차… 南 우월적 경제 앞세워 北 리드 기회장성택의 당정파… 대화로 南 지원 노리고김영철의 군부 강경파… 무력시위 앞세워 협상박근혜 정부 '경제 무기'… 대북 상대 전략 필요

장성택
北 군부 강경파-당정파 ‘경제강국’방식 놓고 충돌

개성공단 사태 ‘경제’카드로 북한 리드해 갈 수 있어

최근 북한이 보이고 있는 행보는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군부의 갑작스러운 대남 공세가 그렇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전방과 평양의 전혀 이질적인 모습이 그러하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해 분석을 해보지만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먼저 북한 군부의 도발적 태도다. 흔히 외부 위기를 조장해 내부를 단속하거나 남한, 또는 미국을 위협해 무언가 얻어내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하지만 내부 단속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고 이를 위해 과도하게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남한이나 미국에서 얻어내려 한다는 그‘무엇’도 실체가 불투명하다.

김영철
최전방의 포격 훈련과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듯한 엄포와는 상반되는 평양의 태양절 축제 분위기는 북한을 더욱 ‘수수께끼 나라’로 만든다. 한 외국 북한통 인사는 “북한이 동시간대에 이렇게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북한 소식통들의 분석(전언)은 북한에 대한 이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국방위 부위원장 해임설, 장 부위원장과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의 갈등설 또는 배신설, 최룡해 신실세설, 북한 군부에 의해 장 부위원장이 밀려났다는 설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북한 인사에 나타난 장 부위원장의 여전한 파워와 장 부위원장에 의해 요직을 맡은 최 총정치국장과의 막역한 관계, 장 부위원장과 군부 강경파 정찰국장과의 오랜 인연 등을 고려하면 앞의 여러 ‘설(說)’들은 말 그대로 설일 뿐이다.

최근 개성공단을 놓고 북한 군부 강경파와 노동당 통일전선부 및 경제협력담당 부서 간에 충돌이 있다는 분석은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본질적인 맥락과는 거리가 있다.

북한의 당과 군의 실세들과 인연이 깊은 베이징의 북한 전문가나 평양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드는 소식통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국내 분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나흘째인 12일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공단 차량이 귀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들에 따르면 북한 수뇌부(당과 군)가 추구하는 ‘강성대국(强盛大國)’이라는 목표에는 차이가 없고, 구체적인 내용을 실천하는 절차에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즉 강성대국의 3대 핵심인 ‘사상, 군사, 경제’에서의 강성대국 중 아직 이루지 못한 ‘경제강국’ 실현을 놓고 당과 군 사이에 절차에 관해 견해차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강국 실현 절차에 당과 군 입장차

북한은 김정일 시대인 1998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한 이래 ‘사상강국’은 주체사상으로 완성됐다고 보고 있으며, ‘군사강국’은 지난 2월 3차 핵실험으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면서 달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북한이 북핵에 대해 강경 입장을 보이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을 인정받고 나아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에서 ‘경제강국’은 아직 이루지 못한 당면과제다. 당과 군은 이를 성취하는 방법론을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종래 북한은 군이 중심이 돼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무기수출, 위폐, 심지어 마약까지 거래하며 경제강국의 목표를 이루려 했다. 반면 당은 당이 중심이 돼 자체 생산, 무역 외에 남북경협 등 정상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헤 경제강국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펴왔다. 그러나 군과 당 어느 쪽도 경제강국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최근에는 그 실현 방식을 놓고 강하게 충돌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강성대국 달성이 요원한 상황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정부가 약속한 대규모 대북 지원은 당과 군 모두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직도 유효한 카드로 인식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6ㆍ15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한국판 마샬플랜’으로 불릴 수 있는 거액의 대규모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약속은 김대중 정부 시절 이행되지 않았다.

북한의 당과 군을 들뜨게 했던 김대중 정부의 지원 카드는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북측의 관심을 끌었다. 임기를 불과 2개월여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도 ‘지원 카드’ 때문이었다. 남북 양측은 10ㆍ4 선언을 통해 대북 지원 카드를 약속했지만 노 대통령 역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북한이 한국 정부를 상대할 때마다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사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이 약속한 대규모 대북지원을 실천하라는 것으로 이를 통해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전 정부가 약속한 ‘지원 카드’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결실을 얻으려 하는 반면, 군은 핵과 미사일, 군사적 도발 등을 통한 압박으로 성과를 얻어내려 한다.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대변되는 당정파가 때를 기다려 남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반해 정찰국장 등 군부 강경파는 대남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며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북한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남한의 지원을 받아내는데 ‘위협구’가 효과를 본 것을 재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폭력’(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당하고도 아예 대응조차 못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북한 군부는 다시 압박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에 일체 타협하지 않고 도발시 강력한 보복을 경고했기에 향후 북한 군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개성공단은 첫 단추 잘못 꿰”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가동 9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측 근로자들을 철수시킨다”는 담화를 발표하면서다.

이후 북한이 개성공단 업체들의 출입경을 막으면서 공단 폐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 상당수 공단 업체가 타격을 받았고 가동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도산 업체도 속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단 업체 대표들이 개성을 방문해 북측과 접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은 우회적으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북한의 강경 조치 이면에 고도의 노림수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킨 것은 최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는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한마디로 북한 군부의 힘을 보여주는 조치로 개성공단에 대한 오랜 불만을 드러낸 셈이기도 하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에 대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1999년 10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건설 등을 협의한 게 공단 조성의 시작이지만, 실제 구체화 된 것은 2000년 8월9일 김정일 위원장과 정몽헌 현대 회장이 4차 면담에서 협의를 하면서다.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현대 측에 개성공단 건설을 허락한 것은 앞서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대규모 투자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는 두 가지 점에서 강한 불만을 갖게 됐다. 하나는 군사적 요충지를 돈 때문에 남한 기업에 내준다는 점에서 현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또 하나는 개성공단 지역은 북한군 4군단 6사단 관할임에도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가 수입을 비롯해 대부분을 관장하는데 대해 큰 불만을 가졌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는 약속한 대규모 지원을 이행하지도 못했기에 군부의 현대와 아태위에 대한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양건 비서가 8일 “남조선의 보수세력은 우리가 개성공업지구를 통해 덕(달러박스)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 얻는 것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남측"이라고 말한 뒤 ”특히 군사적으로 우리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내어준 것은 참으로 막대한 양보를 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군부의 오랜 불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강수를 둔 것은 다분히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대남 위협 수위를 높여가면서 막상 남한을 공격한 것은 ‘포탄’이 아닌 ‘경제’였다. 즉 군사적 방법이 아닌 경제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게다가 김양건 비서가 담화를 발표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사태가 전적으로 군부에 의해 이뤄졌다면 강경파인 정찰국장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게 제격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 선제타격 발언과 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은 2008년 12월 당시 국방위 정책국장이던 현 정찰총국장을 개성공단에 파견해 남측 상주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소위 12·1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개성공단 사태에 온건파인 김양건 비서가 등장한 것은 북한이 군사보다 경제 조치를 먼저 취했다는 점과 김 비서가 대남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부위원장 등 당정파의 그림자도 읽힌다. 즉 개성공단 재가동을 매개로 남북대화, 또는 남북경협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김 비서의 행보가 북한의 최우선 당면과제인‘경제’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말해 박근혜 정부가 남한의 우월적인 ‘경제’를 앞세워 북한을 리드해 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영삼 정부 이래 20여년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이끌려 늘 북한에 ‘을(乙)’ 입장에 처해 왔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북측에 제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사태를 계기로 ‘경제’를 매개로 한‘갑(甲)’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 등에 따르면 북한은 김양건 비서를 개성공단에 내려보내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오히려 남한과의 경협, 대화를 바라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는 북한의 핵과 시사일 문제에 대해 명분론에 이끌려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직접 풀어보려는 행동을 취하다 늘 실패했고 희생도 많았다. 사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국도, 중국도 풀기 어려운 난제다. 미국은 이미 북핵에 관한한 ‘비핵화’ 전략에서 ‘비확산’쪽으로 방향을 바꾼 상태다. 중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제적 지위 때문에 수사적인 압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는 6자회담이나 국제기구에 맡기고 남한이 ‘갑’이 될 수 있는 ‘경제’를 무기로 북한을 상대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북한은 대남 위협을 가하면서도 남북관계의 해법이 ‘경제’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개성공단 사태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향후 대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