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갤러리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전스프레이 겹겹이 뿌려 몽한적 분위기 연출LA 거리의 벽에서 영감 받은 부조리 표현도자 조각들이 서로 얽혀 작품으로 환생하듯 상처 받은 삶에도 치유의 손길 내밀어

SP223, spray paint oncanvas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스털링 루비(41. Sterling Ruby)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루비는 지난 11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직접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자신의 개인전에 기대와 열정을 보여줬다.

루비의 예술세계는 스프레이 회화 연작과 도자기 브론즈 조각 작품인 Basin(널찍한 대야 혹은 그릇과도 같은) 연작, 그리고 골판지 콜라주 작품 등을 통해 일관되고 강렬하게 전해진다.

우선 전시장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회화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겹겹으로 중첩시켜 만들어낸 색면들이 마치 환영으로 채워진 대기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환각적인 색상과 이미지의 이면에는 미국 LA의 거친 현실이 담겨 있다.

루비는 "LA 거리의 벽들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봤다. LA의 벽들은 매일 저녁 갱들이 자기들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갱단의 문양을 그라피티로 그려넣는데 새벽이면 시 당국이 하얀 페인트로 모두 지워버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겹겹이 덮힌 스프레이 페인트 얼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매일 저녁 스프레이로 칠해진 도심이 아침이면 하얀 페인트로 지워지는 부조리한 현실이 몽환적인 화면에 담겨진 셈이다.

회화와 더불어 커다란 골판지와 데님(청바지 천)을 활용한 콜라주 작품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 콜라주 연작인 'EXHM'는 작가가 조각을 제작하며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깔았던 골판지로 만든 것이다. 이 골판지 표면에 묻어있는 발자국, 먼지 등은 다른 작품의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흔적들로 그 축적된 이미지를 작가는 '회복을 위한 매개체'또는 '새로운 집합체'로 재해석했다.

Basin Theology
루비는 다양한 색조의 패치워크와 버려진 가죽을 재활용하는 등 다양한 재료의 실험적 기법으로 현대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세상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또 도자공업 기법의 ''와 브론즈로 형상화한 조각인 'Debt Basin2'는 개인적이면서 서사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거대한 대야처럼 보이는 도자기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고 터진 도자기 조각들이 조형적으로 조합된 작품은 인간 삶의 쓰리고 아픈 편린들을 떠올린다. 한편으론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도자 조각들이 서로 얽혀 작품으로 환생한 데선 파편화된 삶에 어른거리는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나에게 도자기 작업은 심리치료이고 치유의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루비의 말처럼.

작가는 사소하게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일반의 굴절된 삶과 사회상을 포착한다. 미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심리적 반발과 인간의 부조리성, 사회적 소외에 주목하며 제도권 내의 건축적 파급과 이에 따른 인간의 제한적 혹은 습관적 행동기제도 다룬다.

이러한 루비의 저항적 작업들은 미국의 전통적인 미니멀리즘 아트와 대립적 성격을 지니며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주목하게 한다. 전시는 5월10일까지.

사진제공=© Sterling Ruby, 국제갤러리 02)735-8449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