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 인민무력부장에 장정남김격식 7개월 만에 퇴진… 군부 세대교체 가속화인선 배경에 장성택 힘 작용경제 중심 변화 주도 예고박근혜 대화 추진, 남북경협 새 장 열린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장정남(오른쪽) 신임 인민무력부장. 연합뉴스
북한이 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에 50대 소장파 장성 장정남을 임명함으로써 당과 군 모두 '경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경(先經)' 에 방점을 두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교체가 알려진 것은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인민보안부 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관람 소식을 전하며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을 언급하면서다.

인민무력부장 교체는 여러 측면에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선 전임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이 임명된 지 7개월만에 물러난 것이 그러하다. 게다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인 장정남이 임명된 점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정부 관계자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군 수뇌부에서 마지막 70대인 김격식(75)이 물러나면서 북한군의 세대교체가 가속화 될 것이라며 '세대교체'에 무게를 두었다.

일부 전문가는 장정남이 야전군 출신이라는 것을 들어 북한 군부를 야전군 중심의 '전투하는 군대'로 변화시키려는 인사로 해석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로 건설된 기계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5일 전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을 주도한 군부 내 대표적 강경파로 알려진 김격식이 물러난 것이 최근의 정세변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최근 '1호 전투근무태세'를 해제하고 무수단 중거리미사일 철수하는 등 강경국면에서 유화국면으로 정세 변화를 꾀한 것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수뇌부와도 인연이 깊은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과 단둥에서 북한과 무역을 하는 소식통의 소식을 종합하면 앞서 정부와 북한 전문가들이 분석한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베이징과 단둥의 소식통에 따르면 인민무력부장을 장정남으로 교체한 것은 북한군이 '경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군의 '사람'과 '정책'을 바꾸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것이다. 김격식 체제에서는 기존 인민무력부의 정책과 사람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통상 대장 또는 차수가 맡아왔던 인민무력부장에 상장(우리의 중장)인 장정남을 파격적으로 기용했다는 설명이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장정남이 중용된 데는 그의 '청렴성'도 한몫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인민무력부 고위 장성 중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이 적지 않고, 특히 '경제'를 담당하는 장성 중에 부패한 사람들이 많아 무명의 장정남이 발탁됐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의 배경에는 북한 체제를 '선당(先黨)' '선경(先經)' 에 중점을 두고 변화를 주도하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설에는 장정남이 장성택의 친형인 장성우(인민군 차수, 2009년 사망)에 의해 성장한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에 따르면 장정남의 기용은 일정 부분 북한군 세대교체를 위한 측면이 있지만 그보다는 북한군의 변화를 이끌고 '경제' 중심의 주요 정책 결정에 직접 관여토록 하는데 있다.

이번 장정남의 등장은 북한의 당면 과제인 경제력을 증강하는 데 군도 적극 나서기 위한 것으로 '전투' 대신 '경제'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부터 장성택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군의 변화를 추진해온 것과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북한 군부를 야전군 중심의 '전투하는 군대'로 변화시키기 위해 인민무력부장을 교체한 것이라는 분석은 현실과 맞지 않다.

또한 북한이 유화국면으로 정세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 강경파 김격식을 교체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인사는 정세 변화에 따랐다기보다 북한군 체제를 '경제'와 연계해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전략적으로 '경제'보다 '전투'가 중시될 때 김격식을 다시 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당과 군의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경제 문제로 장정남 인사도 그 범주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 매개로 북체제 변화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 "파격이다" "예상밖이다"라는 말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라는 평이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이 단행한 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관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북한은 주요 인사와 정책에서 경제에 중점을 둬왔고, 이번 장정남 발탁은 그 마무리 퍼즐의 성격을 지닌다.

'장정남 인사'의 연원은 작년 4월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약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중앙위 비서이던 최룡해는 지난해 4월11일 당 대표자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군 경력이 전무한 그가 2010년 9월 대장 계급장을 단데 이어 작년 4월 차수로 승진하면서 최고 요직인 군 총정치국장에 오른 것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총정치국은 군 간부들에 대한 인사와 생활을 통제하는 핵심조직으로 '군부 안의 당'으로 불릴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최룡해 인사의 배후에는 장성택 부위원장의 영향력이 작용했고, 이는 김정일 사후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행된 조치였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온 '경제통'으로 장 부위원장과는 1980년대부터 인연을 맺어 온 '장성택 사람'이다.

본지는 김정일 사망 직후 " '경제통'최룡해 뜨고 장성택 막후로"라는 제하의 기사(2012년 1월9일 자, 2406호)에서 장성택 부위원장과 최룡해 당 비서가 김정은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중심축이 될 것이며, 장 부위원장은 막후에서 북한 변화의 전체를 조율하고 최룡해 비서가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장 부위원장이 당과 군에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해 취약한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면서 '먹고 사는'(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작년 4월 당 대표자대회를 전후해 이른바 '장성택 사람들'이 대거 당과 군에 포진했고, 대내외적으로 '경제'에 올인하는 행보를 취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을를 비롯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장 부위원장의 직계로 알려진 김원홍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 임명됐고, 우리의 경찰청장과 같은 인민보안부장에도 장 부위원장의 측근인 이명수 상장이 유임됐다.

또한 북한 최고의 '경제통' 중 한 명인 박봉주 총리는 대표적인 '장성택 사람'으로 작년 4월 당 중앙위 부장, 당 경공업부 제1부장에 오른 뒤 올해 4월 내각총리에 임명돼 북한 경제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작년 7월15일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경질되고 후임에 현영철 대장이 임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북한군이 경제에 관여하는 영역을 줄이고 당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군 인력을 '경제' 쪽으로 재편하려는 사전 조치였다.

현영철 총참모장은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 북한과 중국의 국경수비를 담당하는 8군단장을 하면서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 간 무역 및 국경지대 거래까지 총괄하는 등 군인이면서 '경제'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승진 과정에 장성택 부위원장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장 부위원장 측은 인사를 통해 체제 안정과 경제 위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경제개선책인 6ㆍ28조치를 추진하고, 장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 북한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을 동행하고 중국을 방문해 '경제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장정만 인민무력부장 임명은 위와 같은 북한 체제 변화의 흐름에서 나온 인사로 향후 당과 군이 '경제'에 더욱 전력할 것이 예상된다.

남북관계 새 변화 징후들

북한은 인민무력부장에 장정만을 임명함으로써 일정한 군 체계를 갖추게 됐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군간부 인사를 맡고, 현영철 총참모장은 군의 인력 배치를, 장정만 인민무력부장은 군의 정책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북한 체제를 '선당(先黨)' '선경(先經)' 구조로 개편하는 책임자들로 모두 '장성택 사람'들이다. 마치 장성택 부위원장을 정점으로 북한군의 인사(최룡해)-인력(현영철)-정책(장정만)이 하나의 틀을 갖춘 모양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경제' 올인 정책은 한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군간부 인사를 통해 경제통 인사에 힘을 실어 줄 수 있고, 장정만 인민무력부장은 군을 전투력 증강보다 경제력 증강에 매진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현영철 총참모장은 군 인력을 재편해 경제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후방부대를 늘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북한군은 전투부대와 후방부대를 재편하면서 전투부대를 새롭게 편재해 남은 군 인력을 후방부대로 보내 경제분야에 투입하기도 했다. 북한의 전투부대 중 남북 휴전선 접경지대와 북중 국경지대에 배치된 부대를 제외하고 상당수 전투부대가 후방부대로 재편돼 경제일꾼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인민무력부에서도 전투 훈련 대신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 체제 및 북한군 구조가 '경제'를 매개로 변신을 하면서 남북관계, 특히 경협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북한의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장성택 부위원장과 실무 경제에 밝은 박봉주 총리 등이 오래전부터 남북경협을 중시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장 부위원장과 박 총리는 2002년 경제시찰단으로 남한을 다녀갔고, 2006년 장 부위원장이 2년만에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당에 복귀한 것이 남북경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더욱이 장정남 임명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추진해온 '선당(先黨)' 기조가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고, 군부가 예전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메시지다.

최근 남북이 개성공단 사태로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있지만 양측이 재개의 필요성, 또는 박근혜정부에서 새로운 남북경협을 추진하려고 하는 만큼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장정만 인민무력부장 임명을 통해 본 북한의 내부 사정상 '명분'이 주어지면 언제든 남북경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미 중 DMZ내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발표해 우회적으로 대화의 창구를 열어놨고, 최근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완제품 반출과 관련한 대화를 북측에 제시했다. 북한은 세계평화공원을 비난하고 남측의 대화제의를 거부했지만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고 있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6월 중국 방문을 계기로 남북 대화ㆍ경협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전해왔다. 중국이 남북한 사이에 대화의 '명분'을 끌어내거나 거중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민무력부조차 변한 만큼 남한도 대북 정책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