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통큰 대화’원해…朴 대통령 응답할까

북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최룡해의 방중은 매우 주목할 함의를 지닌다.

먼저 특사 ‘시점’이다. 최룡해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6월 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 6월 하순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대북 정책과 장차 한중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어젠다, 그리고 미중 정상이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북한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행보다.

다음은 특사 ‘목적’이다. 정부 관계자와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의 방미, 방중 외교에 대응해 소원한 북중관계를 해소하고 북미관계를 새롭게 진전시키려고 하는 ‘외교적 방문’으로 해석한다.

특히 지난해 8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과 비교해 외교적 목적에 무게를 둔다. 장성택이 ‘조(북)중 공동지도위원회 대표단’단장 자격이었던데 반해 최룡해는 김정은 국방위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이라는 점에서 북중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에 방점이 찍혔다는 것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동북아 지역 내 긴장 수위를 높여온 데 대해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하는 등 북중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나빠졌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 방중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장성택이 주로 경제 인사를 동행한 것과 달리 특사단에 군부 인사가 상당수 포함된 것도 북중 양국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황에 대해 집중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됐다. 실제 이번 방중에는 이영길 조선인민군 상장, 김수길 조선인민군 중장 등 군 주요 인사 20명이 동행했다.

‘외교’에 무게를 둔 시각은 북한이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당장 시급한 경제 지원도 받으려는 부차적 목적이 깔려 있다고 덧붙인다.

최룡해의 방중을 두고 북중 간에 북핵이 논의되고 관계 회복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는 점에서 ‘외교’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은 일부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나 ‘본질’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최룡해가 이 즈음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에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최룡해는 이번 방중에서 지난해 8월 장성택이 중국을 방문해 요구한 것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을 확인했고, 남한과 경제를 매개로 한 한반도 안정에 중국의 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은 지난해 8월 중국을 방문해 지지부진하던 나선지역 전력공급 약속과 황금평 지구에 대한 투자를 약속 받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 외에 북한에 필수적인 에너지, 논농사에 필요한 비닐 등 경제 지원을 다짐받고 돌아왔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에 소홀했다. 특히 북한 체제에서 11월까지 꼭 필요한 에너지와 비닐 공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와 주민생활이 큰 타격을 입었고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이면에는 ‘경제’로 북한을 제어하려는 중국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

최룡해가 방중 첫발부터 군복을 입고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난 것이나 군 주요 인사를 대동한 것은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결의’를 보여준 것이다. 최룡해의 방중에 앞서 북한 군 강경파인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을 총참모장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최룡해의 방중이 외교적 관점에서 중국과 군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태도에 따라 북한이 ‘위협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중국이 전과 같이 ‘경제’를 무기로 북한 체제를 흔들거나 북한이 경제를 매개로 남한, 미국 등과 손을 잡는데 방해를 한다면 핵실험을 재개하는 등 동북아 안보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최룡해가 시진핑 주석에게 전한 김정은의 친서에는 북한핵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시진핑 등 중국 수뇌부를 고민스럽게 했다는 전언이다.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룡해의 방중이 정치나 외교보다 ‘경제’에 초점이 맞춰진 게 분명하다. 소식통은 중국 고위층의 말을 빌어 북한은 남한과의 ‘통큰 대화’를 원하고 있고, 김대중정부 시절 6.15 남북정상화담(2000년)에서 약속한 대규모 북한 투자가 실현될 수 있게 중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워싱톤의 한 대북 소식통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 방안에 대해 있었다면서 기자에게 최룡해의 방중 내용에 대해 물어왔다.

북한을 둘러싼 관계국들의 일련의 동향을 보면 머지않아 남북 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베이징과 워싱톤의 북한 소식통은 6월 하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 즈음해 ‘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최룡해의 방중 기간에도 한미, 한중, 미중 간의 북한 관련 채널이 숨가쁘게 가동됐고, 남북경협이 ‘큰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2일 올해로 13주년을 맞는 6.15 공동선언 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하자며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를 개성 또는 금강산에서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다. 북측이 개성을 행사 장소 가운데 하나로 제안한 것은 개성공단을 살리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에서 장성택 측을 중심으로 한 ‘선경(先經)’ ‘선당(先黨)’ 노선이 뿌리를 내리면서 남북경협에도 청신호가 예상됐다.

현재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파국을 맞고 있지만, 이는 이전 정부와는 다른 정상궤도에서 운영되기 위한 진통의 과정, 앞서 ‘큰 변화’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최룡해의 방중에 따른 향후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을 주목하게 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