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父 "국방부, 국정조사로 심판"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당시 25세, 육사52기)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의 문’이 15년 째 굳게 닫혀 있다.

국방부의 ‘자살’ 결론과 배치되는 수많은 증거와 의혹, 국회ㆍ대법원 등 국가 4대 기관이 자살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70, 육사21기) 예비역 중장은 지난 5월 초 국방부로부터 민원(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처리결과를 통보 받고 더 이상 국방부에 기대를 접기로 했다. 대신 국방부를 진실의 문 앞으로 끌어내 심판하기로 했다.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여지껏 인정받지 못한 것이 국방부의 ‘거짓말’ 때문이라는 확신에서다.

김척씨는 김훈 중위 사건이 여전히 논란 속에 갇혀 있는 근본 원인이 사고 당일 국방부의 잘못된 처사 때문으로 보고 이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사고 당일인 98년 2월24일 군수사관들이 현장에 도착해 사인을 밝히기도 전에 국방부 출입 기자들에게 ‘자살’이라고 발표(브리핑)했다.

이것으로 김훈 중위 사인은 사실상 ‘자살’로 귀결됐다. ‘타살’의 여지는 처음부터 봉쇄된 것이다. 상명하복 체제가 엄존한 군에서 최고기관인 국방부의 결론을 하급 기관이나 담당자가 뒤집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유족이 요구한 사고 당일 행적에 대해 “사망사고 당일 관련내용에 대한 발표 및 보도자료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관련 자료는 국방부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조사중간결과보고(2008년 12월19일)에 따르면 국방부가 브리핑을 한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시 임모 조사관이 기록한 ‘사인에 대한 예단 정황’ 에는 다음과 같이 명기돼 있다.

“최초 언론보도와 관련 사망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였던 연합뉴스 이00은 당시 10여 명의 기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하였으며 ‘자살’이라고 직접 언급하였고(중략) 사망 당일 석간신문의 자살 보도는 한국군 헌병대가 현장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알린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음.”

한겨레신문 김00 기자는 “기사내용 중 ‘국방부 관계자가 자살이라고 밝혔다’라는 내용이 있다면 분명히 이야기했다는 것으로 국방부 발표 없이 내용을 추측해서 기사를 내보냈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허위”라고 진술했다.

국방부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발표 사실을 부인한 것은 군 내부적으로 더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훈 중위 사건은 초동수사에서부터 진행과정, 최종 발표에 이르까지 오류와 반복된 거짓말, 억지 주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초동 수사 부실은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덮은 ‘대못’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한국군 뿐만 아니라 미군도 부실 수사와 거짓말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드러나 반드시 짚고 가야할 문제가 되고 있다.

김훈 중위는 98년 2월24일 12시20분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241 GP에서 소속 부대 박모 일병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군수사관(CID)은 오후 3시30분에 사건현장에 도착했고, 한국군 수사관은 오후 4시40분쯤에 부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김훈 중위 사망(자살) 소식은 오후 4시43분에 연합뉴스를 통해 1보가 나갔고 이어 YTN 등 방송사와 신문에 보도됐다. 한국군 수사관이 수사를 진행하기도 전에 ‘자살’로 보도가 된 것이다. 김훈 중위 유족과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한 수사도 하기 전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자살’로 브리핑했다.

미군 또한 김훈 중위 사건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사고 당일 ‘상황보고’ 및 ‘JSA 경비 소대장 사망 관련 상황조치’ 문건에 따르면 미군 역시 군수사관(CID)이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로 상황보고를 했다. 미군이 자살로 보고를 한 때는 오후 2시20분으로, 미군 수사관은 그보다 1시간 뒤인 오후 3시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 당일 김훈 중위 사망과 관련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작전차장이 나눈 대화는 군 사망 사건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방장관을 지낸 김모 부사령관은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한 보고를 받자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다. 타살의 여지는 닫아놓고 ‘군인 사망=자살, 또는 오발’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훈 중위 사망은 ‘자살’로 결론지어졌고 당일 오후 2시40분 한국 측과 연합사 지휘부 및 관련부서에 전파됐고 합참에는 오후 2시47분에 전달됐다. 여전히 미군 및 한국군 수사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때문에 법원도 국방부의 그러한 행태를 질타했다.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고등법원은 “김훈이 사망하자마자 이 사건 사고가 미군측과 대대장 등 부대원을 통하여 자살로 성급히 판단되었고, 그에 따라 당일 언론을 통하여 김훈이 자살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부검을 담당한 군의관은 부검 직후 자살로 예단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다가 이를 삭제하는 등 사건 발생의 초기부터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 없이 김훈이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러한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20004년 2월17일)

대법원은 “만일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판결했다.(2006년 12월7일).

김척씨는 “국방부와 한미연합사 수뇌부에서 ‘자살’로 결론 내린 상황에서 뒤늦게 도착한 미군과 한국군 수사관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방부가 일단 ‘자살’ 입장에 선 순간, 이후 수사는 형식적인 짜맞추기와 증거 부인, 사실 왜곡으로 일관했다는 게 김척씨의 주장이다.

실제 국회,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권익위원회 등 국가 4대 기관이 김훈 중위의 사인을 ‘타살(추정)’, 또는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했음에도 국방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군과 함께 실시한 과학적 실험 결과(자살이 아닌)도 인정하지 않는다.

김척씨는 “군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자제하며 국방부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는데 ‘국민의 군대’이길 거부하고 국민대통합에도 역행하는 국방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직한 군대야말로 국민의 군대이고 거짓말을 하는 군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정조사는 김훈 중위 개인보다 군에 자식을 보내는 모든 국민을 위한 것으로 국민이 믿고, 힘 있는 군대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