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서 경영수업하며 '때' 기다려… 아버지와 동행해 '밀착 과외' 받기도'현장 알아야 경영 보인다' 핵심 계열사 돌며 실무 경험 박사급 연구원들과 스터디

● 동양그룹 현승담 계열사 입사 4년 만에 임원 동양네트웍스 대표
지금 재계에선 '3세 경영'이 한창이다. 현재 다수의 재벌가 3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 활약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경영수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예비 황태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주간한국>은 20~30대 젊은 재벌가 자녀들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면면을 집중 해부해 봤다.

이재현 23세 아들 입사

대기업 황태자 가운데 가장 최근 경영수업을 시작한 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들 선호(23)씨다. 지난 6월 상반기 공채에 응시해 정식 입사한 이후 다른 신입사원들과 함께 연수를 받았다. 선호씨는 이 회장이 구속된 이후 조직개편된 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한 선호씨는 수년 전부터 방학 때마다 국내에서 CJ제일제당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금년 귀국 이후에는 틈틈이 이 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아 왔다.

● GS그룹 허윤홍 GS칼텍스 주유원 경험 영업전략·경영분석팀 거쳐
선호씨는 이 회장의 외아들로 가장 유력한 후계자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후계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선호씨가 이 회장이 구속 수감되기 직전 입사하면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경영 참여라는 견해가 많다.

이 회장의 딸인 경후(28)씨는 앞서 2011년 CJ에듀케이션즈 마케팅 담당 대리로 입사해 현재는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경후씨는 현재 교육콘텐츠와 관련한 신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기선(31)씨도 지난 6월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발령받았다. 기선씨는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근무하다 휴직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이번에 재입사 형식으로 복귀했다.

기선씨는 2005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2년 만인 2007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이후 그는 여느 재벌 자제와 달리 색다른 사회 경험을 쌓기 시작한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중앙일간지 인턴기자를 지냈다.

이듬해인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정씨는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밟았다. 2011년 6월 MBA를 취득한 정씨는 3개월 후인 9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의 한국 지사에서 컨설턴터로 근무했다.

● CJ그룹 이선호 공채로 입사 기획실 근무
여기서 1년9개월 동안 근무한 정씨는 올해 6월 퇴사와 동시에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복귀했다. 재계는 실적악화 등으로 그룹이 누란의 위기에 처한 현상황에 대한 돌파구로 오너십을 강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의원의 장녀 남이(30)씨도 올해 초부터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남이씨의 경력은 오빠 기선씨와 빼닮았다. 정남이씨는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MIT에서 MBA 과정을 밟은 후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 근무했다.

아산나눔재단은 남이씨를 위해 기획팀을 신설, 팀장으로 보임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획팀은 재단의 기존 사업인 창업지원과 글로벌 인턴십 파견 등을 총괄하는 한편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SK가, 최성환 유일한 3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규호(30)씨 역시 지난해 12월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고(故) 이원만 창업주를 시작으로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열 회장에 이어 4세 경영 체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 현대중공업 정기선 육군 중위·인턴기자 경영기획팀 부장
규호씨는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지난해 말 동두천 소재 제6포병여단에서 행정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 해외 MBA를 검토했으나 바로 경영수업을 받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룹에 입사했다.

코오롱그룹은 장남승계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에 규호씨의 후계 자리는 이번 입사를 통해 사실상 확정됐다는 분석이다. 현재 규호씨의 직급은 차장이다. 그러나 현장 경험을 시작으로 밑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을 예정이다.

최신원 SKC 회장의 장남인 성환(33)씨는 젊은 SK에서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3세다. 중국의 명문 푸단대를 졸업한 성환씨는 2009년 초 회사에 처음 발을 들인 후 과장에서 차장으로 다시 부장으로 매년 승진해 왔다.

성환씨는 부친 최 회장으로부터 강도 높은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 회장이 그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현재도 그는 최 회장의 철저한 교육 안에서 경영수업에 매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관리로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두 아들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장남 형덕(36)씨와 차남 새봄(33)씨가 그 주인공. 현재 윤 회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2세 경영체제 전환이 가시화되고 있다.

먼저 장남인 형덕씨는 2008년 웅진코웨이 영업본부에 대리로 입사해 2009년 과장(신상품팀장), 2010년 차장(경영전략팀장)을 거쳐 지난 2월 부장(경영기획실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러나 올초 웅진코웨이 매각에 따라 웅진씽크빅 경영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남인 새봄씨는 2009년 웅진씽크빅 기획팀에 입사한 이후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다 2010년 9월 웅진케미칼 경영관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에선 향후 새봄씨와 형덕씨가 각각 웅진씽크빅과 웅진홀딩스로 이동해 장자 중심의 후계구도가 조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승담(33)씨는 2007년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특히 2011년 임원 대열에 오르더니 올해 동양네트웍스의 각자 대표로 선임됐다. 이후 현승담 상무보는 직접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경영 운신폭을 넓히게 됐다.

장녀 정담(37)씨는 2006년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동일 학교 대학원 MBA를 마친 현 상무는 지난 2006년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9년 상무보로 고속 승진했다.

GS그룹에선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 윤홍(34)씨가 눈에 띈다. GS가 4세다. 한영외고를 졸업한 윤홍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 학사,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이수했다.

윤홍씨는 이후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의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윤홍씨는 한때 GS칼텍스 주유소의 '주유원'으로 일했다. 충분한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른 결과다.

이후 윤홍씨는 영업전략팀과 강남 지사, 경영분석팀을 거치며 정유사업의 전반에 걸쳐 경영 수업을 받았고 GS의 핵심 자회사인 GS칼텍스에 이어 계열사인 GS건설로 자리를 옮기는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를 두루 돌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장녀 경선(29)씨는 아직 그룹 계열사에 정식 입사하지 않았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경선씨는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그러나 오리온의 마켓오 사업 등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경선씨는 지난 1월만 해도 오리온이 프리미엄 과자 '마켓오' 브랜드 관련 기자간담회 현장에 직접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경영진의 발표 내용을 면밀히 체크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끌었다.

중견기업 황태자들도 등장

중견기업 황태자들도 속속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딸 윤지(29)씨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매일유업의 유아용품 계열사인 제로투세븐에서 대리로 마케팅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학습지 '빨간펜'으로 잘 알려진 교원그룹은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의 외아들 동하(31)씨는 지난해 그룹 전략기획본부 신규사업팀에 대리로 입사해 신규사업 발굴과 비전 수립 등 핵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수산ㆍ식품 그룹인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의 장남 지홍(35)씨도 지난해 사조해표ㆍ사조대림 기획팀장(부장)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지홍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및 미국 미시간주립대 MBA를 졸업하고 외국계 컨설팅업체인 베어링포인트에 재직한 바 있다.

같은해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 태영(35)씨도 경영관리실 총괄임원(실장)으로 신규 임명됐다. 영국 메트로폴리탄대를 졸업한 태영씨는 경영컨설팅업체 엔플렛폼에서 일하며 기업체 인수합병(M&A) 업무를 주도해 왔다.

이밖에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장녀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의 두딸 박혜성(32)·혜정(28)씨도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으며,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 허영인 회장의 두 아들 진수(36)·희수(34)씨도 경영수업에 한창이다.

경영수업은 어떻게?

그렇다면 황태자들은 대체 어떤 식으로 경영수업을 받을까. 재계에 따르면 최근의 3세 경영 수업은 'OJT(On the Job Training)'식의 현장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현장을 알아야 경영이 보인다는 것이 '로열패밀리'들 사이의 정설이 된 때문이다.

또 각 그룹 내 고급 두뇌들이 총동원된다. 경영 정보 접근이 비교적 쉬운 기업 부설 경제연구소 등을 통해 중요 현안과 연구보고서를 수시로 브리핑 한다. 또 박사급 연구원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수업'을 받기도 한다.

분야별 업무 파악이 끝나면 통상 경영기획실이나 기획총괄본부로 배치된다. 전반적인 회사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핵심 사업을 추진할 기회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자리는 후계자들의 경영 능력을 체크해볼 수 있는 '시험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룹 총수인 아버지와 동행하며 직접 강도 높은 수업을 받는 경우도 많다.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그룹 경영 철학과 리더십, 노하우를 '밀착 과외' 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최고의 교육이라는 평가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