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방만·부패 경영 도마위에 공기업들 "한주만 버티자" 여전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LH공사,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 5개 기관 대표가 출석해 부채 증가 등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민주당 이윤석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12개 에너지 공기업 부채 150조원 규모… 모럴헤저드 심각
원전비리·4대강 사업 뜨거운 논란
산자위 상임위 소속 의원들 다양한 테마로 집중 공세
'철밥통' 공기업 사장들 "1주일만 버티면 1년은 간다"

올해 국감은 역대 최대 규모다. 피감기관만 630여 개로 출석 기관장과 증인의 규모로만 봐도 역대 최대다. 약 보름간 걸쳐 진행되는 이번 매머드급 국감 일정 중에서도 단연 눈 여겨 볼 대목이 있다. 매번 방만 경영과 비리로 도마 위에 오른 공기업 감사가 그것이다. 상임위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의원들이 주요 먹잇감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하는 분야 역시 공기업 감사다. 이 점에서는 여야가 다르지 않다. 올해에도 공기업 국감과 관련해서는 갖가지 사연 속에서도 많은 이슈가 쟁점화 될 것으로 보인다.

산자위 에너지 국감이 핵심

피감기관으로 가장 많은 공기업을 둔 상임위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이하 산자위)다.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이하 한수원) 등 굵직굵직한 공기업이 무더기로 소속돼 있다.

산자위 감사 중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공기업 감사는 국내 공기업 중에서도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제외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2개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감사다. 특히 올해 에너지 공기업 감사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를 담고 있어 더욱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이는 올해 국감을 두고 '에너지 국감'이라 지칭되는 이유기도 하다.

올해 에너지 공기업 감사는 10월 21일 가스안전공사를 시작으로 한 주간 뜨거운 장정에 돌입한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 사장들은 만반의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에너지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올해에도 주요 테마로 오르내릴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기준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액수가 대규모 증가함에 따라 산자위 의원들의 공세는 더욱 매서울 전망이다.

산자위 소속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제공한 국감 요청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상위28개 공기업 부채총액 353조 중 12개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150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과 비교해 올해 6월 기준으로 한국전력은 21조원에서 56조원으로 약 2.6배가량 부채가 증가했으며, 한수원은 9조 8,000억원에서 25조원 규모로 역시 약 2.6배 증가했다. 부채증가배수로 따지면 광물자원공사가 4,340억원에서 2조원 규모로 무려 6.3배나 증가해 12개 에너지 공기업 중 수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에너지 공기업들의 모럴헤저드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감 질의 과정에서 이 역시 뜨거운 논란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추 의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지난 4년간 1조 6,000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했으며, 한수원 역시 약 5970억원에 달하는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전력, 한수원, 중부발전, 남동발전 등 한전의 발전관계사들은 퇴직자들에게 300만원 상당의 해외연수비용을 지급하는가 하면 200만원 상당의 시장상품권, 심지어 순금과 가전제품 등 갖가지 호의를 베푼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150조원에 달하는 부채 규모 속에서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융숭한 대접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원전 비리, 밀양 송전탑 논란 도마 위

사회 이슈에서 비롯된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패ㆍ비리 및 불찰을 두고도 국감 현장에서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잇따른 원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한수원 내부 부패ㆍ비리 내역은 그 중 첫손에 꼽힌다. 의회 내 원전 저격수로 지칭되는 정의당 김제남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한수원 직원의 부패ㆍ비리행위가 1414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수원 직원 6명 중 1명꼴로 부패ㆍ비리행위를 저질렀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여야 의원들의 파상공세가 예상됨에 따라 한수원 조석 사장의 대응과 대안제시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한편으론 여야 간 원전 계획을 두고 확연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탓에 '전력수급 증량을 위한 원전의 계속적 개발이냐', '환경과 안전을 고려한 원전 개발 축소냐' 양 갈래 물음에 대해 조석 사장이 어떤 입장과 계획을 내놓을 지도 큰 관심사로 떠오른다.

여전히 해결을 보지 못한 밀양 송전탑 분쟁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이는 이미 정무위원회 총리실 감사 당시 정부의 '건설 중단 불가론'을 확인한 만큼 한 차례 예열 과정을 거친 상황이다. 당사자인 한국전력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산자위 국감에서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될 예정이다. 수년간 지속돼 오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한국전력의 인권유린 논란부터 공사 계획 과정까지 부산ㆍ경남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조경태 의원을 중심으로 야권 진영의 파상공세 예상된다.

산자위의 에너지 국감과 함께 이번 공기업 국감의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곳은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의 이른바 4대강 국감이다. 그 핵심이 바로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자원공사)에 대한 국감이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재원 중 8조원을 채권으로 발행하는 등 4대강으로 인해 11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은 상황에서도 여전한 방만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민주당 김관영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4대강 부채더미 위에서도 지난 4년 사이 성과급을 225%나 올리는 등 직원들에게 1,300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공 4대강 국감 초점

또한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 참여 건설사에 대한 발주처이기 때문에 발주과정에 대한 논란 역시 4대강 국감의 주요화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민주당 윤후덕 의원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이달 중으로 담합비리가 적발된 건설사들에 대한 향후 입찰 제한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국감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국감을 의식한 수자원공사의 뒤늦은 조치 아니냐'는 의심과 비아냥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국감 여파 탓에 수자원공사와 제한 대상 기업 간 분쟁의 소지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이밖에도 수자원공사는 4대강 부실공사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수자원공사는 이미 감사원으로부터 다기능 보 부실시공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국토위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로부터 수천억원 규모로 낙찰 받은 시공업체들이 시공한 4대강 보 각 공구에서 온도 균열지수를 허위로 산정하면서 부실공사로 균열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감기간 동안 이러한 부실공사와 관련한 수자원공사의 책임 역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스테디셀러 LH 국감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대한 국정 감사 이슈 역시 수두룩하다. 어쩌면 LH국감은 국내 공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결정판 격으로 볼 수 있다. LH국감을 두고 공기업 국감의 스테디셀러로 불리는 이유다. 일단 국토위 소속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LH는 지난해 기준으로 부채규모가 138조원에 달해 국내 10대 공기업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95조원으로 부채규모 2위를 기록한 한국전력과 비교해봐도 단연 압도적인 선두다. 부채 증감률만 따져도 1년 사이 5.9%나 늘었다.

매년 반복되는 사안이지만 LH의 방만경영, 특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고 있는 만큼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인력운영에 대한 질타가 국감 현장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당 문병호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LH의 현원은 6684명으로 정원 6100명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보다 약 10%가량 추가 고용된 것이다. LH에 발을 담근지 약 4개월이 지난 이재영 LH 신임사장으로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효율적인 인력운용 방안과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LH의 실질적인 실적사업을 반영하는 지표라 할 수 있는 미분양 재고 자산 지수 역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은 LH 국감을 앞두고 LH로부터 미분양 재고 자산에 관한 자료를 제출 받아 외부에 공개한 상황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LH의 미분양 재고자산은 토지 30조원, 주택 2조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32조원을 돌파했다. 미분양 주택의 경우 지난해 2조 4,000억원 규모에서 대폭 축소됐지만, 토지의 경우 27조 9,000억원에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준공 3년이 지나도록 분양이 되지 않는 장기 악성재고 토지도 2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이재영 사장 역시 취임 당시 가장 먼저 해결할 난제점으로 꼽은 사안인 터라 그 대책방안에 시선이 집중된다.

앞서 수자원공사의 4대강 발주기업에 대한 입찰 제한이 이슈로 떠오른 것처럼 LH 역시 국감을 코앞에 두고 35개 건설사에 대한 입찰제한 중징계를 내려 국감현장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상기업은 2006~2008년 사이 LH가 발주한 성남 판교신도시 등 8개 지구 아파트 공사와 관련해 담합 정도가 심한 건설사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한 것. 이중에는 진흥기업, 경남기업, 효성 등 4대강 관련사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11년 1월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사실을 통보 받은 사안이기 때문에 발주처로서 이번 LH의 조치는 국감 면피용 늑장 대응으로 비춰질 수 있다.

공기업들 '한주만 버티자'

이렇듯 국내 주요 공기업에 대한 다양한 이슈와 논란거리가 산재해 있는 이번 국감이지만, 그 충격 효과와 향후 개선 여지에 대해선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산자위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한 보좌진은 "사기업 오너들과 달리 공기업 사장들은 피감기관장 신분이기 때문에 국감에는 의무로 출석해야 한다. 하지만 피감 공기업 수장들 대부분 제발 한 주간만 잘 버티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며 "사기업의 경우 국감 이전에 각 의원실마다 찾아와 꼼꼼하게 사전 준비라도 하지만, 사장들의 임기가 정해져 있고 철밥통인 공기업들은 그런 성의도 없더라. 의원들의 호통과 비난에도 그저 일주일만 죽은 듯 꾹 참고 또 다시 1년만 버티겠다는 심산이다"고 말하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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