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면 망신 안나오면 비난 쩔쩔 매는 '재계 수장' 들총 193명 증인 채택 '역대 최다'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 출석"막말 관련 피해 대리점주에 사죄" 신동빈·정용진 등 국감증인 단골심상정의원, 이건희회장 증인 요청… 건설사 CEO들 줄줄이 소환

지난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를 대상으로 한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기업체 대표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시작됐다. 흔히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표현될 만큼 국회의원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기간이기에 자신의 기량과 전문성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해 전력한다.

국민들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각인시키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노력은 때로 과당경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업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출석요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와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각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별로 채택된 증인이나 참고인 중 기업인은 9일 기준 총 193명이었다. 2011년의 80명과 비교할 때 2.5배로 늘어났고 164명이었던 지난해보다도 30여 명이나 늘어났다. 경제민주화, 4대강담합, 동양사태, 불산사고 등 지난해 재계 관련 이슈가 많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한 숫자다. 일반증인 3명 중 2명이 기업인으로 채워진 상황이라 국정감사가 아니라 기업감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힐난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을 만도 하다.

더욱 민감한 문제는 예전처럼 개인사정을 이유로 증인 출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감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으며 체면을 구겼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법원과 국민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최근 불어온 경제민주화 바람이 부담을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국감에서는 어떤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출석, 국민 앞에서 국회의원의 호통과 질책에 고개를 숙여야 할까. <주간한국>에서는 증인으로 나설 기업인들을 상임위 별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기업인으로 꽉 찬 정무위 국감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소비자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소관부처와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관하는 핵심 상임위인 만큼 이번 국감 때 증인으로 채택한 기업인도 61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한 15일 국감에서는 19명의 기업인이 출석해 빼곡히 자리를 채우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날 국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과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이었다. 김 사장은 국내시장과 미국시장에서의 자동차 가격 차이, 백 부사장은 조달청 입찰담합의혹 때문에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야만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본래 권오현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사전에 계획된 해외출장으로 백 부사장이 대신 출석하게 됐다.

국감 사상 처음으로 수입차업계 CEO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15일 정무위 국감에는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브리타 제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정재희 포드코리아 사장과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 등이 출석해 신차 가격담합 및 수리비 과다 계상 관련 질문 공세를 받았다.

대리점주에 대한 영업팀장의 막말 녹취파일 공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사태 관련 증인도 15일 출석했다.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막말 파문에 대해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며 "피해 대리점주와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책임을 통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마저 증인 출석을 요청한 상태라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모레퍼시픽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유통업계 갑의 횡포로 비난받고 있는 배중호 국순당 사장,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근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양사태'와 관련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 김철 동양네트웍스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도 눈에 띈다.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개인투자자에게 적극 권유하는 이른바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은 17일 정무위 국감에 출석,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밖에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11월 1일 열릴 정무위 국감 때는 불법 차명거래 및 탈세혐의를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김용덕 효성캐피탈 사장도 출석할 예정이다.

이건희도 증인 채택될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에서는 20명의 기업인 증인을 채택했다. 유해화학물질 사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및 불법파견 의혹, 쌍용자동차 사태 등 다양한 쟁점에 관련된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선정됐다.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한 14일 국감의 주요 쟁점은 4년째 계속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였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김규한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희망퇴직자 복직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생산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복직 규모와 시기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가 소환됐다.

환경부에 대한 15일 국감에서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완화를 요구하는 재계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재계가 유해물질 누출 관련 처벌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화학사고를 낸 삼성전자는 해당사항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은 "깊이 반성하고 있고 가장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도 해당 문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샤시 쉐커라파카 옥시레킷벤키저 사장과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15일 국감에 불출석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등 도의적 책임을 물으려 했던 환노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칼날을 피해갔다.

환노위 국감의 가장 주목되는 사안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이다. '2012년 삼성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내부문건을 공개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삼성그룹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며 이 회장과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증인으로 공식 요청했다. 환노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의 논의결과에 따라 이 회장이 국감에 얼굴을 비출지 여부가 판가름날 예정이다.

국감 단골된 신동빈, 정용진

소관부처 및 산하기관으로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진흥원 등을 두고 있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이하 산업위)는 유통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업위의 증인 리스트 첫머리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랐다. 롯데그룹의 가맹점ㆍ대리점에 대한 횡포 및 골목상권 침해 등과 관련해 채택된 것이다. 신 회장은 내달 1일 열릴 중소기업청 대상 감사에 출석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감 불출석으로 재판에 회부, 벌금형을 받았던 신 회장이니만큼 이번에는 출석하지 않겠냐는 것이 재계의 예상이다.

신 회장과 함께 지난해 벌금형을 받았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예정에 없던 증인출석을 하게 됐다. 본래 신세계그룹에서는 최종 채택 과정에서 빠진 정 부회장 대신 허인철 이마트 사장과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사장이 출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5일 열린 중소기업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허 사장이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 의원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산업위 위원장인 민주당 강창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정 부회장 증인 채택의 건을 상정, 통과시켰다.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도 11월 1일 열리는 중소기업청 종합감사의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몇 년째 반복되는 여름철 전력난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창관 포스코에너지 사장과 유정준 SK E&S 사장, 이완경 GS EPS 사장이 증인대에 설 예정이다. 이들은 민간발전소 건설 투자 당시 비용대비 과다 이익을 챙겼다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외에도 산업위는 입점업체에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했다는 명목으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을, 중소기업으로 위장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백한기 쌍용레미콘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건설사 CEO들 줄줄이 소환

올해 국감에서 여야 간 가장 큰 충돌이 일어난 사안 중 하나는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에서 다루는 4대강 사업 의혹이었다. 전 정권의 치부에 대한 사안이니만큼 전체 국감을 통틀어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고됐다. 실제로 14일 열린 국토교통부 국감 당시 국토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작심한 듯 4대강 사업 심판론을 꺼내 들었고 여야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기업인 증인도 무더기로 채택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순병 동부건설 부회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등 주요 건설사 대표들은 공사손해보험과 관련한 계열사 몰아주기 혐의로 국토위 국감에 출석하게 됐다. 또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건설원가 부풀리기 의혹,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해외건설노동자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국토위 증인으로 채택됐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에서 채택한 기업인 국감 증인으로는 이석채 KT 회장이 눈에 띈다. 이 회장은 노조탄압 의혹과 경영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국감 당일인 31일 아프리카 혁신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부담스러운 국감을 피해 도망친 것 아니냐"는 구설을 낳고 있다.

미방위 국감의 또 하나의 쟁점으로 꼽히는 원전 부품 인증 비리와 관련해서도 기업인 여럿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하방 두산중공업 부사장, 김환구 현대중공업 부사장, 구자은 LS전선 사장 등은 원자력안전위 대상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 원전비리 개입여부에 대해 해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또한, 미방위에서는 통신사의 대리점 대상 횡포 혐의로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을, 휴대폰 단말기 가격의 적절성 여부 및 소비자 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는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과 박종석 LG전자 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에서는 기업인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소속된 여야 의원들 간에 치열하게 공방을 벌여 주목됐다. 민주당 및 정의당 의원들이 일감몰아주기, 면세점 문제 등과 관련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을 국감장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기재위가 재벌총수특권보호위원회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도 서울-춘천고속도로 공사비 부풀리기 혐의로 박창민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시국감으로 전환해야"

상임위 별로 수십 명에 달하는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소환했지만 대부분 '꾸워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야 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출석한 26명의 기업인 증인 중 14명만 질문을 받았고 나머지는 자리만 지켜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15일 열린 국감 때 증인석을 가득 메운 19명의 기업인 대부분은 5분 남짓한 질문과 대답을 했을 뿐이고 정재희 포드코리아 사장은 아예 질문을 받지도 못했다.

시간이 한정되다보니 출석한 기업인 증인들에게 소명기회는 별반 주어지지 않았다. 국감 스타로 언론지면에 등장하기를 원하는 국회의원들의 채근과 호통만 난무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연히 재계는 기업의 얼굴인 총수의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정치인들 또한 국감을 피하는 기업인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시국감을 대안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주 동안 630개에 달하는 피감기관을 감사해야만 하는 터라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국감을 아예 연중 실시하는 방안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에 따르면 현행법에 국감권에 검증ㆍ청문회의 개최 권한도 포함돼있어서 상시국감으로 변경해도 무방하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