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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그룹 총수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재 출연' 약속은 했지만…
괜히 아까운 재산만 날릴수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가중 총수의 사재 출연 당연시 여겨
기업 회생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고통 분담·최소한 성의 표시 의미
남아있는 총수 재산도 천차만별
  •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재 출연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기업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또는 법정관리에 처해질 위기이거나 그 규모가 큰 나머지 전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될 때 해당 기업의 총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행법상 기업 총수의 사재 출연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명시적으로 규정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사유재산의 줄임말인 사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우선시되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기업 총수가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야 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애착을 갖고 경영하던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도 가슴 아픈데 총수 개인이 소유한 재산까지 내놓으라는 요구가 가혹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면 총수의 사재 출연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돼왔다. 기업이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정부와 사회, 국민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던 만큼 기업 총수에게도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이 부여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재를 턴다고 파산 위기의 기업을 되살릴 만큼의 돈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기업 총수에 대한 사재 출연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직원들 및 사회 전체가 받을 고통을 분담하고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도 하라는 측면이 강하다.

사재 출연의 결과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때로는 재산을 내놓은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괜히 아까운 재산만 날려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 재산을 터는 것이 아닌 까닭에 사재 출연 이후에 남아있는 총수의 재산도 천차만별이다. <주간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해체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기업의 수장들이 사재 출연 요구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왔으며 그들에게 현재 무엇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마지막 남은 집 한 채 내놓을까

재계 최초의 사위 후계자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기업으로 일군 인물로 꼽힌다. 증권을 비롯해 시멘트, 섬유, 가전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렸던 동양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의 직격탄을 맞으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현 회장은 자금 차입과 자산 매각을 통해 동양그룹의 회생을 노려봤으나 결국 실패, 동양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동양사태란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상환에 실패, 5개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사건이다. 회생을 노리며 지속해온 돌려막기식 자금조달의 결말로 동양그룹은 결국 해체 위기를 맞게 됐고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본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줄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동양사태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현 회장이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의 보상에 나설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여부이다.

지난 18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도 현 회장의 사재 출연이 주요 쟁점으로 꼽혔다. 선의의 피해보상에 사재를 내놓을 용의가 있느냐는 정무위원들의 질문에 현 회장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밝혔다. 재산 총액에 대해서는 "주식을 반대매매 당했고 집이 가압류됐다고 신문으로 봤다"이라며 "주식을 다 내놓을 생각이지만 (피해보상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사재를 전부 내놓겠다는 것이 현 회장의 입장이지만 그 액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계열사 주식 상당수가 담보로 잡혀있는 데다 그마저도 반대매매로 처분된 까닭이다.

일단 현 회장과 그 가족이 보유했던 계열사 지분 중 가장 유의미했던 동양증권 주식은 반대매매로 모두 날아간 상태다. 동양사태가 터지며 동양증권의 주가가 급락하자 현 회장 일가가 제공했던 담보주식의 가치 또한 급하락했고 이에 채권자인 한국증권금융은 자금회수를 위해 해당 주식을 반대매매로 내놓았다.

결국 현 회장의 주식 88만5,608주와 자녀들(현정담 9만3,549주, 현승담 9만2,818주, 현경담ㆍ행담 각 1만8,349주)의 주식은 모두 장내 처분됐고 16만7,503주에 달했던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의 주식은 단 3주만 남았다. 동양인터내셔널(13.5%)과 동양레저(12.1%) 지분이 남아있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라 재산으로서의 의미는 전혀 없다.

채권단이 동양증권 주식 반대매매를 통해 대출금을 회수하며 가압류가 풀린 서울시 성북동 자택은 다행히 현 회장 소유로 남겨졌다. 해당 주택은 토지면적 1,478㎡에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공시지가는 지난 1월 국토교통부 조사 기준 주택 13억원, 토지 45억원 등 총 60억원에 달한다. 대표적 부촌인 성북동의 지리적 특성과 고가의 실내 인테리어 등을 감안하면 100억원은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랑 남은 집 한 채이지만 그동안 "집을 팔아서라도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수시로 말해온 현 회장이니만큼 향후 출연 여부가 주목된다.

현 회장 일가 재산과 관련,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 직전 이 부회장이 동양증권 대여금고에서 인출해간 6억원도 눈길을 끈다. 국정감사 당시 현 회장은 이 부회장이 찾아간 물품이 "결혼 때 한복에 썼던 노리개, 비녀, 마고자 단추, 돌 반지 등"이라고 했었으나 "결국 현금 6억원을 인출해갔다"고 시인한 바 있다.

사재 출연으로 회생 발판 마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재계 30위권의 웅진그룹을 일궈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IMF외환위기 당시 알짜 계열사였던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 유동성을 확보한 윤 회장은 해당 자금을 정수기와 식품 사업에 투자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7년 인수ㆍ합병한 극동건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심각한 부진에 빠지기 시작,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웅진폴리실리콘을 세우며 진출한 태양광 사업이나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진출한 금융업도 업황 악화에 시달리며 그룹 전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됐고 결국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법정관리 신청 초기만 해도 윤 회장은 "집과 주식 말고는 재산이 없다"며 사재 출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법정관리 신청 직전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 부인과 계열사 임직원의 주식매각, 계열사에 차입금 조기 상환 등을 한 정황이 드러나며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며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사재 출연의 결과일까. 윤 회장은 예상보다 빠른 내년 초에 재기할 전망이다.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법원이 주도한 계열사 매각이 3차례 연속 성공하며 회생채무를 모두 갚고 올해 안에 회생절차를 조기졸업할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의 회생절차는 늦어도 내년 초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우선 웅진코웨이 지분 30.9%의 매각대금인 1조2,000억원으로 회생채무 상당부분을 해결했다. 이후 법원은 윤 회장이 제출한 회생계획안에 따라 6,741억원의 남은 채무를 웅진식품(57.9%)과 웅진케미칼(56.2%)을 팔아 갚고 나머지는 10년에 걸쳐 분할상환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당초 500억원, 2200억원을 예상했던 웅진식품, 웅진케미칼은 흥행몰이에 성공하며 각각 1,000억원, 4,300억원에 매각되는 잭팟을 터뜨렸다. 여기에 윤 회장이 대출금 상계 방식으로 증여한 윤형덕ㆍ새봄씨의 지분 매각대금까지 감안하면 회생채무 전액을 올해 안에 변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순조로운 윤 회장의 재기 배경에 그의 사재 출연 결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웅진씽크빅까지 매각하기를 원하는 채권단에게 윤 회장은 사재 출연을 약속하며 모기업을 살리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고 실제로 웅진코웨이 지분 매각 대금 등 500억원대의 재산을 내놓았다. 윤 회장의 이러한 모습은 채권단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고 그룹의 모회사인 웅진씽크빅을 발판으로 재기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만들어줬다.

회생계획안이 종결되면 윤 회장 일가에게도 지분매각대금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웅진코웨이와 웅진식품 매각을 통해 각각 980억원, 200억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윤 회장 일가가 웅진홀딩스를 기점으로 웅진씽크빅과 북센 등을 보유한 교육마케팅출판그룹으로 재출발하는데 실탄으로 쓰일 예정이다.

윤 회장의 재산과 관련, 서울시 한남동에 위치한 자택을 매각한 점이 주목된다. 토지면적 1,104㎡에 지난 1월 기준 공시지가로 44억8,000만원을 기록, 시가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윤 회장 자택은 지난 6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게 팔렸다. 해당 자금은 웅진홀딩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남은 재산 얼마 안 돼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국내 대표적인 '샐러리맨의 신화'로 꼽히는 인물이다. 쌍용양회에 입사, 30년 가까이 조직생활을 하던 강 회장은 2001년 자신이 최고재무책임자로 있던 쌍용중공업을 사재를 털어 인수하며 STX그룹을 일으켰다. 이후 강 회장은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1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2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4년) 등을 잇달아 인수ㆍ합병하며 STX그룹의 외형을 급격하게 키웠다. 그룹 설립 10년 만에 재계 12위의 그룹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위축되고 조선업까지 그 여파가 밀려오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현금을 쌓아두지 않고 공격적 인수ㆍ합병으로 사세를 불리는 데 집중한 강 회장의 성공방정식이 무너진 것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계열사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결국 경영난을 못 이긴 강 회장은 지난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며 채권단이 강 회장에게 요구한 것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계열사들의 경영권과 사재 출연이었다. 결국 강 회장은 지난 9월 STX조선해양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최근 STX중공업에서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STX엔진의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게 됐지만 그룹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상 거의 잃은 상태다.

그렇다면 경영권을 잃은 강 회장의 재산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5월 STX그룹을 살리는 조건으로 강 회장의 사재 출연을 압박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마땅한 사재가 없다면 본인이 사는 집이라도 압류를 걸어 모든 것을 확보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감독원 등 감독기관과 채권단이 강 회장의 재산에 대해 정밀 추적을 했으나 STX그룹의 지분을 빼면 아파트 한 채와 약간의 예금 외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 납부를 위해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한 것도 강 회장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강 회장은 지난 8월 보유하고 있던 ㈜STX주식 92만3,222주를 장내 매도했다. 매도대금 약 43억원은 국세 납부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23일 종가기준으로 계산해볼 때 강 회장에게 남은 ㈜STX주식 409만주는 약 100억원의 가치를 지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담보로 잡힌 상태다. 그밖에 비상장사인 STX건설 주식 80만1,000주는 법정관리 중임을 감안할 때 거의 가치가 없고, 포스텍 주식 839만3,348주도 장부가로 따져볼 때 40억원 정도의 가치밖에 지니지 못한다.

강 회장 사재와 관련, 보유 중인 아파트도 눈에 띈다. 강 회장이 거주 중인 서울시 서초동의 트라움하우스는 8년째 국내 아파트 공시지가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월 기준 54억4,000만원 수준이지만 실제 판매가는 100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06년 아파트 매입 당시 받았던 담보대출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라 현금화할 수 있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개인 회사 남아 안도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1991년 설립한 팬택을 20년 넘게 이끌며 국내 굴지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일궈낸 인물이다. 설립 초기 무선호출기 제조를 주력으로 했던 팬택은 1997년부터 CDMA 방식의 휴대폰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2001년과 2005년 각각 현대큐리텔, SK텔레텍을 인수ㆍ합병하며 삼성전자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호사다마랄까. 박 부회장에게도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를 견디지 못한 팬택이 2007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이다. 2011년 말 간신히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지난해 726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또다시 자금난에 부딪혔다. 박 부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53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받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내달부터 800여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결정한 박 부회장은 실적 악화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권을 내려놨다.

박 부회장은 사재 출연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워크아웃 직전 4,000억원 가치로 평가되던 자신의 지분을 모두 반납했기 때문이다. 이후 박 부회장은 팬택에 대한 지분이 전혀 없이 채권단이 부여한 경영권을 맡고 있었다. 워크아웃 졸업 이후 다시 경영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연봉을 자진해서 삭감한 것도 호평을 받는 부분이다.

사재 출연한 공도 없이 결과적으로 경영권을 내놓게 됐지만 박 부회장이 지니고 있는 재산은 여전히 상당하다. 개인 회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팬택씨앤아이와 피앤에스네트웍스 등 2개사다.

팬택씨앤아이는 박 부회장이, 피앤에스네트웍스는 박 부회장(40.0%)과 아들인 박성훈ㆍ성준씨(각 30.0%)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시스템통합 기업인 팬택씨앤아이는 라츠(휴대폰부품유통)와 티에스글로벌(휴대폰부품제조)을, 화물운송중계업체인 피앤에스네트웍스는 토스(인적자원용역제공)를 자회사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박 부회장 일가 소유의 회사는 5개사인 셈이다.

해당 회사들의 지난해 매출을 합하면 4,600억원이 넘는다. 작지만 알짜회사들인 것이다. 그동안 박 부회장과 맺은 관계를 염두할 때,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팬택발 물량이 갑자기 줄어들지도 않을 전망이다. 각 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도 매년 70억원에 달할 정도로 쏠쏠하다. 사재 출연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경영권을 잃었지만 박 부회장의 마음이 여전히 든든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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