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황홀함에 가려진 죽음의 그림자


 
■ 제목 : 롤라 (Rolla)
■ 작가 : 헨리 제르벡스
 (Henri Gervex)
■ 종류 : 패브릭 유화 
(Oil on fabric)
■ 크기 : 173cm x 220cm
■ 제작 : 1878년
■ 소장 : 프랑스 보르도 
미술관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까?’ 라는 가상을 누구나 한번쯤 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극히 비현실적인 상상이라도 나름대로 진지한 답을 찾는 사이에 의외로 각자의 독특한 성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범신론자 스피노자와 같이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의연한 희망을 가지거나 어차피 마지막인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회의주의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경험했던 것, 혹은 그러지 못한 것 중에 가장 정열적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지 않을까?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알프레드 드 뮤쎄의 시 ‘롤라’는 롤라라는 이름의 주인공 남성이 자살을 결심하고 그의 인생 마지막 날을 고급 창녀와 함께 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제목인 헨리 제르벡스의 작품 ‘롤라’는 바로 1883년 완성된 뮤쎄의 시를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창가에 기대어 서서 곤히 잠든 여인 매리온을 바라보고 있는 롤라의 그늘에 가려진 얼굴 표정은 죽음을 앞에 둔 복잡하고 묘한 심리감을 배가 시키고 있다. 급하게 벗은 듯한 여인의 고급 드레스와 시트를 구긴 채 단정치 못한 차림으로 잠든 금발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 등은 어색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화면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된 인상화 화법과 같은 색채는 창녀와의 하룻밤이라는 저속한 주제를 떠나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향락적 모습이 문학과 미술 영역의 주제로 유행하듯 번져갔던 현실에도 불구하고 작품 ‘롤라’는 살롱전 전시가 거부되는 스캔들을 일으켰다. 제르벡스는 신화적 설정 아래 우아하고 신비한 작품을 주로 그려 ‘롤라’에서와 같이 지나친 선정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드물었다.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선정적 구조 대신 롤라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했던 황홀함과 죽음을 준비하는 가녀린 떨림으로 뒤섞인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힐 때 바로 작품 ‘롤라’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순간이 될 것이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09-30 16:10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