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일화와 전설 속의 매월당 다시보기



■ 김시습 평전
(심경호 지음/돌베개 펴냄)

‘김시습 평전’은 조선 시대 최고의 천재이면서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던 기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에 대한 ‘본격적인’평전이다. ‘본격적인’이라는 말은 그 동안 김시습에 관한 연구가 숱하게 있었다는 뜻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전이라고 할 만한 수준의 저작물은 없었다는 뜻이다. 좀 많이 나가면 ‘최초’라는 이름까지 붙일 수도 있다.

김시습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생애를 이처럼 면밀하게 추적한 책은 여지껏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전은 일대기의 나열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한 인물의 내면에 육박해 그 정신세계까지 생동감 있게 포착해야 한다. 그 인물이 살았던 시기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대한 실증적 연구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때로는 현대를 사는 저자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면서 끊임없이 그 인물과 대화할 필요도 있다.

이 책은 이 같은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하는 데 꽤 정성을 쏟았다.

“세종의 명으로 지신사 박이창이 그를 시험한 것은 과연 다섯살 때인가? 어려서부터 천재라고 칭송됐던 그가 과연 생원시에서조차 낙방했던 것일까? 단종 폐위사실을 듣고 삼각산 중흥사에서 뛰쳐나와 승려의 행각으로 떠돌았다면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는 왜 잠잠히 있었단 말인가? 자기보다 나이가 열 다섯살이나 많고 고관으로서 인망을 얻고 있던 서거정을 거리에서 만나 “강중아!”하고 이름을 불렀다는 일화는 사실일까?”

지은이는 이러한 세세한 사실 관계까지 철저하게 따져가면서 일화와 전설에 갇혀 있던 김시습을 꺼냈다. 김시습이 남긴 시문집과 저술, 그가 교유하였던 인물들의 문집과 저술까지 빠짐없이 찾아내 김시습의 삶의 모습을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김시습의 천재성과 탁월함, 인간적인 매력 뿐 아니라 고뇌와 흔들림까지 놓치지 않았다.

700여쪽에 이르는 두툼함 탓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장은 “국내 평전 출판의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감히 ‘평전’이라 이름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라며 “대중적인 책 읽기에 부담스런 분량으로 내 놓은 편집자의 무능을 이렇게라도 변명한다”고 말했다.

편집장 스스로 ‘변명’이라고 표현했지만, 김시습의 삶의 궤적 뿐 아니라 정신적 고뇌까지 세밀하고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입력시간 : 2003-10-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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