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음반이 주류, 틈새시장으로 자리매김

희귀 가요명반 리바이벌 열풍
60~70년대 음반이 주류, 틈새시장으로 자리매김

최근 수십만원에서 수백 만원까지 거래되던 1960~80년대 희귀 가요 음반들이 봇물 터지듯 재발매되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리바이벌 발매 퍼레이드는 올해 들어 더욱 가속이 붙었다.

가요 음반 콜렉터들 사이에서는 가히 ‘꿈의 소장품’으로 불리던 신중현 사단의 여성 록커 김정미의 73년 비정규 음반 가 복각 CD에 이어 한정판 LP로 재발매됐다. 또 젊은 골수 팬들로부터 재발매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이상은의 6집 <공무도하가>가 한정판 CD로 재발매되면서 ‘리바이벌 음반 붐’을 부추기고 있다. 재발매 음반시장은 이제 새로운 틈새 시장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예전에도 간혹 SP 복각 시리즈와 <신중현과 엽전들> 등 일부 희귀 음반들이 재발매되긴 했지만, 그 내용이나 숫자는 붐을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의 재발매 음반들을 놓고 음반 시장의 불황 타개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라 일컫는 관계자들도 있다. 그만큼 최근 재발매 음반들의 면면은 메가톤 급이다.

오디오 애호가인 홍준모씨는 “요즘 재발매되는 리바이벌 음반들은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나 같이 예전엔 구경이라도 한번 했으면 했던 명반들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가요 명반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반겼다.

동시에 90년대 중반이후 CD의 등쌀에 밀려 외면을 받아오던 LP음반이 되살아 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IMF이후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복고 문화의 거센 기류를 탄 것이지만 몇 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는 LP음반 수집가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수집가들은 주로 청계천이나 회현동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데, 청계천에서 중고음반점 ‘아성 음악사’를 운영하는 최병헌씨는 “대략 5년 전쯤부터 일본 사람들이 신중현 등 국내 가요 음반을 고가로 구입을 하면서 귀한 가요 LP 음반의 가격이 급등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때 조금 귀하다 싶으면 100만원이 넘었던 판이 부지기수”라며 “요즘은 돈이 된다 싶어 그런지 너나 없이 구하러 다녀 귀한 가요 음반은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희귀본은 수백만원 호가

인터넷의 확산도 LP음반 수집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수많은 음악 사이트와 동호회, 가수들의 팬 클럽을 기반으로 한 마니아 층이 두터워졌고 정보 교환은 더욱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관심은 있으면서도 시간 및 정보 부족으로 체념했던 LP음반 관심층이 급격히 애호가층으로 변했다. 또 댄스 음악 일변도의 주류 음반 시장에 염증을 느낀 중장년 팬들이 60~70년대 음악으로 몰렸다.

그 결과, 한때 이삿짐을 줄인다며 쓰레기 취급을 당했던 LP 음반이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리바이벌 재발매 음반 붐은 급격하게 늘어난 가요 LP 음반 붐과 두터운 수요층을 감지한 소규모 음반사들이 뒤늦게나마 대응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음반”으로 여겨지던 이 음반들이 오리지널 LP 재킷을 그대로 재현한 복각 CD로 모습을 드러내자 가요 팬들은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최근 재발매된 음반들은 대부분 ‘희귀본 중의 희귀본’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50만원을 호가하며 중고 가요 음반의 고가화에 앞장섰던 김정미의 <바람>, <봄비>의 오리지널 노래가 담겨 있는 덩키스의 데뷔 음반, 김추자의 데뷔음반,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첫 버전이 수록된 더 맨, 사이키델릭 라이브 공연의 진수로 알려진 퀘션스의 <인아가다다비다> 등은 작년 여름부터 발매를 시작해 꾸준하게 재발매되고 있는 소위 <신중현 명반>시리즈의 면면이다. 이 음반들이 바로 리바이벌 열풍의 도화선이다.

또한 백두산의 리드 기타 출신인 김도균의 솔로 데뷔 음반, 헤비 메탈의 드림팀으로 불리는 아시아나, 더 클럽 등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음악성이 돋보이는 일련의 한국 록 음반시리즈도 현재 주목받는 재발매 시리즈에 속한다.


김정미등 재발매 동시에 매진

압권은 3월에 LP로 재발매된 김정미의 . 3만원에 가까운 고가로 발매된 1,000장 한정 재발매 LP가 발매되자마자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상은 10집 ‘신비체험’과 3~7집이 각각 2,000장 한정판 CD로 재발매됐는데, 비교적 최근 음반임에도 중고 시장에서 5~8만원 선에 거래된다. 그 중에서 ‘재발매 희망음반’ 1순위로 꼽힐 정도로 구하기 어려웠던 6집 ‘공무도하가’(1995)는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절판됐다 최근 CD로 복원된 부활의 1, 2집과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삽입곡 ‘그대 영혼에’ 등을 부른 무명 록 밴드 U&Me 블루의 1, 2집 및 라이브 앨범, 스위트 피의 <달에서의 9년>, 삐삐밴드 1집 <문화 대혁명>도 팬들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재발매된 케이스다.

하지만 김정미, 김도균, 아시아나, 이정화, 더 맨, 더 클럽, U&Me 블루 등 재발매 음반들의 면면은 대부분 대중들에게 생소한 가수들의 것이다. 이 음반의 공통점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미약하지만 수준 높은 음악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가요시장도 일본, 유럽, 미국과 같이 수준 높은 음악 마니아층의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재발매 음반 시장의 한계도 있다. 이 시장은 현재 대략 3,000장 내의 수요층을 보장 받고 있다. 최근 김건모, gㆍoㆍd, 조성모 등 신세대 층의 지명도가 높은 일부 가수들을 제외하고 조용필의 신보조차 판매량이 1만장을 넘기 힘들 만큼 불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재발매 음반들은 음반사들에게 매력적인 틈새시장임에 분명하다.

광화문 교보 핫트랙스 음반 매장의 가요 담당자 김영현씨는 “재발매된 음반들 중 신중현, 김정미, 이상은 음반이 하루에 10여장 안팎으로 꾸준히 팔려나간다”고 전한다. 일부는 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재발매 요구가 가장 거센 앨범은 역시 서태지가 미국에서 발매한 와 김민기의 71년 독집 음반, ‘아름다운 것들’을 담은 방의경의 독집 음반, ‘저하늘에 구름따라’의 김의철 독집 음반, 양병집의 첫 독집 음반 <넋두리>, 현경과 영애 등 70년대의 전설적인 포크 음반들이다. 는 98년 은퇴를 선언하고 은둔 생활 중에 서태지가 발표했던 앨범이고, 70년대 통기타 열풍을 몰고 왔던 포크 음반들 중 저항적인 노랫말 때문에 군사정권에 의해 금지의 멍에를 쓴 음반들이 대부분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지나간 명반의 재발매는 가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면서 “그러나 오래된 음반의 경우 제작자가 이미 사업을 정리했거나 저작권 문제가 얽혀 있어 재발매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리바이벌 음반들의 경우 대부분 오리지널 마스터의 분실로 인해 LP 음반을 음원으로 해 복각하는 바람에 일부는 음질이 조악해 리콜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01 17:22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