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부럽잖은 야생의 장미향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찔레
향수 부럽잖은 야생의 장미향

날짜를 헤아리면 아직 봄인데, 문밖을 나서면 여름이 느껴진다. 연하고 보드랍던 잎새들도 어느새 초록 물결로 그 때깔을 바꾸고 있다. 이 강한 햇살을 받아 본격적인 광합성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찔레는 이 즈음 꽃을 피운다. 순결한 순백의 꽃빛과 더없이 청량한 향기를 온 대지에 내어 놓으며. 이 산야에 찔레는 지천이지만 특별히 산 가장자리엔 산이 머금은 맑은 물들이 흘러나오는 계류를 만나곤 하는데, 물가를 향하여 늘어진 가지와 송이송이 달려 어우러진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그 고운 꽃에 어떻게 찔레란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아무도, 어떤 기록도 정확히 말해주진 않지만 가시가 가득한 줄기, 꽃이 예뻐 손을 뻗어 탐이라도 내자면 영락없이 찔리게 되므로 ‘찌르네’하다가 찔레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긴 이 나무의 족보를 따져보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장미는 여러 종류의 야생장미들을 기본종으로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원예품종이고, 세계에는 많은 야생의 들장미들이 있지만 찔레는 우리나라의 들장미라고 할 수 있으니 타인의 손길을 경계하는 가시는 당연한지 모르겠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벌과 나비가 화장을 한 성형미인 같은 화려한 장미보다는 찔레를 더욱 많이 찾아 오니, 본질을 꿰뚫는 안목은 자연의 일부인 곤충이 앞서는가 보다. 지방에 따라서는 찔룩나무 또는 새비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찔레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낙엽성 작은 키 나무로 키는 보통 2m까지 자란다. 덩굴성 식물은 아니지만 긴 줄기는 활처럼 늘어지고 이 줄기에는 5~9장의 작은 잎들이 하나의 깃털같은 큰 잎을 만들어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장미잎을 연상하면 쉽다.

오월에 피어 나는 꽃들은 지름이 손가락 한마디쯤은 되지만 우산살처럼 여러개가 새로난 가지 끝에 달려 더욱 보기 좋다. 하얀 꽃잎은 모두 다섯장이 달리는데 꽃잎의 중앙이 입술처럼 옴폭하며 꽃잎 가운데로 샛노란 수술이 가득하다. 간혹 꽃잎에 연한 분홍빛이 돌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이들은 봄철에 돋아나는 연한 찔레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순하게 생긴 새순을 골라 껍질을 까서 씹으면 떫은 맛이 돌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짝한 맛이 함께 느껴져 군것질 거리가 궁하던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찔레꽃이 필 때 비가 세 번 오면 풍년이 든다고 농부들은 말한다. 올 봄에 이즈음 비소식이 심심치 않으니 분명이 풍년이 들 모양이다.

찔레의 향기는 워낙 좋다. 옛 사람들은 요즈음처럼 요란한 향수나 방향제 대신 향그러운 열매를 담아 두고 겨울나기도 했고, 꽃잎을 모아 향낭을 만들기도 했고, 또 베게 속에 넣어 두기도 했으며 찔레꽃을 중류시켜서 이것을 화로, 즉 꽃이슬이라고 불렀다.

더욱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는 화장품이 없던 시골의 처녀들은 말린 찔레꽃잎을 비벼 화장세수를 하곤 했다고 하는데 찔레꽃 앞에 앉은 그 처녀들의 마음이 읽혀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난다.

찔레는 한방에서 이용하는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생약명은 영실 혹은 장미자라고 하는데 반정도 익은 열매를 따서 말려 쓴다. 이뇨, 해독 등에 효과가 있어 신장염, 각기, 수종, 변비 월경불순, 오줌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처방한다. 대게는 물에 넣고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쓰지만 열매를 술에 3개월이상 담궈 울궜다가 조금씩 복용하기도 한다.

장미를 비싸게 사들여서 약 치며 정성스럽게 돌보고, 겨울에는 얼지 않게 싸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말고 이 청초한 들장미 찔레를 심으면 어떨까? 하고 권유했더니 이를 시도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디 이들이 생울타리로 혹은 정원 한쪽에 어울어져 꽃을 피우는 찔레 덕에 풍성하게 봄 마무리를 하면 정말 좋겠다.

이유미의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2 13:34


이유미의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